경주 9·12지진 2주년…‘진앙지’ 내남면 비지리 마을 표정

  • 송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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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2   |  발행일 2018-09-12 제9면   |  수정 2018-09-12
“겉으론 평온 찾았지만 자동차 소리 나도 놀라 잠 깨요”
“1천500만원 들여 집 고쳤지만
지원금은 200만원도 못 받아
상흔속 조금씩 아픔 극복 중”
경주 9·12지진 2주년…‘진앙지’ 내남면 비지리 마을 표정
9·12 경주 지진 진앙지인 내남면 비지리 박원자 할머니가 지진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마치 전쟁 같았던 경주 지진의 상처가 아물고 평온을 찾았지만 아직도 집 밖에서 자동차 소리라도 나면 깜짝 놀라 잠을 깨기도 합니다.” 12일은 경주 지진이 발생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9·12 경주 지진 진앙지로 피해가 가장 컸던 내남면 비지리 마을. 11일 기자가 찾은 비지리의 들녘은 황금물결이 출렁이고 대추가 붉게 무르익고 있었다. 이 곳이 지진 진앙지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했다.

하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박원자 할머니(87)를 만난 순간 당시의 아픈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는 2년 전 지진 발생 때 새롭게 지은 양옥의 내·외벽이 심하게 갈라져 망연자실했다. 당시 지진에 이은 여진 때마다 네명의 손녀와 집 앞 논에 설치된 비닐하우스로 몸을 피하곤 했다. 이날 채마밭에서 만난 그는 이튿날 경주 5일장에 내다 팔 부추와 고추를 다듬고 있었다. “경주 지진이 난 뒤 1천500만원을 들여 집을 고쳤어. 근데 정부지원금은 고작 100만원(주택 소파)이었고, 재해구호협회 의연금도 90만원이 전부였어.” 지진 이후 공무원과 정치하는 사람들이 집으로 몰려와 다시 집을 지어줄 것 같이 약속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은 우리 노인들 마음만 흔들어 놓고 간 것 같다고 했다.

이 마을 김명옥씨(여·52)는 “경주 지진으로 남편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9·12 지진 때 폭탄이 터진 줄 알았다며 대장암 수술을 받고 퇴원해 집에서 요양하던 남편이 지진으로 미끄러지듯 넘어졌다고 회상했다. 또 집안의 TV와 컴퓨터 모니터가 굴러 떨어졌고, 욕실 등 집 내부 벽이 갈라져 아수라장이 됐다고 했다. 지진의 아픔도 채 아물기 전인 지난해 2월 남편은 사망했다. 그는 요즘도 마을 길에 버스·트럭 등 차량이 지나가면 놀라서 밖으로 뛰쳐 나온다고 말했다. 집 벽이 갈라졌으나 정부지원금은 주택 소파로 100만원을 받았다. 그는 “남편이 지병이 있었지만 지진으로 남편의 생명을 단축시킨 것 같아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며 “지진 이후 함께 피해 복구를 위해 힘썼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비지리 권잠성 할머니(82)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고 지난해 집을 새로 지었다. 새 집에서 이제 살만해지는가 싶더니 지난달 남편을 여의는 슬픔을 겪었다. 권씨는 “집 내·외벽이 심하게 갈라졌는데도 정부지원금이 쥐꼬리여서 아들이 집을 지어주었다”고 말했다.

비지리 주민들의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지진의 상흔(傷痕)이 맺혀 있다. 하지만 ‘생채기’가 조금씩 조금씩 아물수 있도록 서로 가족처럼 의지하고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9·12 지진은 경주 남남서쪽 8㎞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 강진이었다. 부상 6명을 비롯해 공공시설 182건 57억원, 사유시설 주택 5천656건 38억원의 피해가 나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글·사진=경주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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