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 경주 지진 진앙지인 내남면 비지리 박원자 할머니가 지진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
“마치 전쟁 같았던 경주 지진의 상처가 아물고 평온을 찾았지만 아직도 집 밖에서 자동차 소리라도 나면 깜짝 놀라 잠을 깨기도 합니다.” 12일은 경주 지진이 발생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9·12 경주 지진 진앙지로 피해가 가장 컸던 내남면 비지리 마을. 11일 기자가 찾은 비지리의 들녘은 황금물결이 출렁이고 대추가 붉게 무르익고 있었다. 이 곳이 지진 진앙지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했다.
하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박원자 할머니(87)를 만난 순간 당시의 아픈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는 2년 전 지진 발생 때 새롭게 지은 양옥의 내·외벽이 심하게 갈라져 망연자실했다. 당시 지진에 이은 여진 때마다 네명의 손녀와 집 앞 논에 설치된 비닐하우스로 몸을 피하곤 했다. 이날 채마밭에서 만난 그는 이튿날 경주 5일장에 내다 팔 부추와 고추를 다듬고 있었다. “경주 지진이 난 뒤 1천500만원을 들여 집을 고쳤어. 근데 정부지원금은 고작 100만원(주택 소파)이었고, 재해구호협회 의연금도 90만원이 전부였어.” 지진 이후 공무원과 정치하는 사람들이 집으로 몰려와 다시 집을 지어줄 것 같이 약속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은 우리 노인들 마음만 흔들어 놓고 간 것 같다고 했다.
이 마을 김명옥씨(여·52)는 “경주 지진으로 남편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9·12 지진 때 폭탄이 터진 줄 알았다며 대장암 수술을 받고 퇴원해 집에서 요양하던 남편이 지진으로 미끄러지듯 넘어졌다고 회상했다. 또 집안의 TV와 컴퓨터 모니터가 굴러 떨어졌고, 욕실 등 집 내부 벽이 갈라져 아수라장이 됐다고 했다. 지진의 아픔도 채 아물기 전인 지난해 2월 남편은 사망했다. 그는 요즘도 마을 길에 버스·트럭 등 차량이 지나가면 놀라서 밖으로 뛰쳐 나온다고 말했다. 집 벽이 갈라졌으나 정부지원금은 주택 소파로 100만원을 받았다. 그는 “남편이 지병이 있었지만 지진으로 남편의 생명을 단축시킨 것 같아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며 “지진 이후 함께 피해 복구를 위해 힘썼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비지리 권잠성 할머니(82)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고 지난해 집을 새로 지었다. 새 집에서 이제 살만해지는가 싶더니 지난달 남편을 여의는 슬픔을 겪었다. 권씨는 “집 내·외벽이 심하게 갈라졌는데도 정부지원금이 쥐꼬리여서 아들이 집을 지어주었다”고 말했다.
비지리 주민들의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지진의 상흔(傷痕)이 맺혀 있다. 하지만 ‘생채기’가 조금씩 조금씩 아물수 있도록 서로 가족처럼 의지하고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9·12 지진은 경주 남남서쪽 8㎞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 강진이었다. 부상 6명을 비롯해 공공시설 182건 57억원, 사유시설 주택 5천656건 38억원의 피해가 나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글·사진=경주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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