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나로, 보름간 학생 인권침해 200건 접수…성차별 발언도 많아

  • 양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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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4 07:32  |  수정 2018-09-14 09:51  |  발행일 2018-09-14 제6면
전국으로 확산 대구發 ‘스쿨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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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 B고등학교 재학생들이 학교 복도 출입문 등에 게시한 인권침해 사실을 폭로하는 포스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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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 A중학교 재학생들이 학교 복도 출입문에 게시한 인권침해 폭로 포스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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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학생인권 대나무숲’에 게시된 ‘스쿨 미투’ 제보글.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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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스쿨미투’ 관련 청원. 이 청원은 13일 오후 6시 현재 3천247명이 동의했다.

지난 1월 선배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서지현 검사(45·사법연수원 33기)의 폭로를 기점으로 여성계에서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선언이 줄을 이었다. 법조계에서 시작된 미투선언은 영화계·문학계·연극계 등을 넘어 정치권까지 이어졌다. 최근엔 단순한 성희롱·성폭행 사실을 폭로하는 것을 넘어 ‘페이미투(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해결책 요구)’ ‘스쿨미투(학교 내 학생들의 인권침해 사실 고발)’ 등 다양한 형태로 변하고 있다.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 대구·구미지부가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제보 받기 시작한 스쿨미투는 이제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양상이다. 아수나로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보름간 지역 청소년으로부터 인권침해 피해 사실을 제보 받았다. 학생들의 제보 내용이 ‘OO중(고등)학교 △△과목 선생님’ 같은 방식으로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면서 일부 학교에서는 제보자 색출, 제보 글 게시중단 요청 등 2차 가해가 이뤄지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스쿨미투 양상과 과제를 짚어본다.

◆스쿨미투 생겨난 계기

스쿨미투는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공모사업에 선정된 아수나로 대구·구미지부가 지난 7월부터 학교 내에서 겪은 지역 청소년의 인권침해 사실을 제보받으면서 시작됐다. 아수나로는 교내 성폭력·성희롱 고발을 위해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며, 제보 접수를 통해 지역 교내폭력 및 학생인권 실태를 조사할 계획이었다.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게 된 건 지난달 11일 아수나로가 거리 캠페인을 진행하면서부터다. 지난달 15일부터 제보접수 중단까지 보름간 200여건의 인권침해 제보가 이어졌다. 제보는 익명으로 이뤄졌으며 교사들의 성차별적 발언이나 불필요한 성접촉 등이 주를 이뤘다. 제보에는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도 가세했다. 한 졸업생은 “이미 그 학교를 졸업했지만, 그 선생님은 여전히 그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선생님이 진심으로 반성하기를 바란다”며 자신의 피해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교사-학생 폭력문제 제대로 조사 어려워
외부전문가 참여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학교 폭력법 개정·인식개선 이뤄져야”



교내에서 겪은 인권침해에 대한 제보가 이어지자 청소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수많은 공감(좋아요·싫어요 등), 댓글, 공유 등이 이어졌으며 제보 수도 이에 비례해 증가했다. 제보자 대부분은 여학생이었다. 이들은 “(교사가) ‘성적이 안 좋으면 대충하다가 돈 잘 버는 남자 만나서 시집이나 가라’는 말을 자주했다”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에게 교사가)‘다리를 내려라 선생님 마음이 흔들리잖아’라고 했다” “선생님이 학생의 팔뚝살을 상습적으로 만진다.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자주 한다. 이마에 뽀뽀를 한 적도 있다” 등 제보를 이어갔다.

아수나로 활동가 쿼티(활동명)는 “학교 내 인권침해에 대한 인터뷰집을 만들 계획으로 ‘스쿨미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슈화가 된 건 청소년들이 그동안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슈화가 됐지만 학교 측에선 진상조사 이후 합당한 조치를 취하기보다 이를 덮으려고만 해 화가 많이 났다. 앞으로 학교 내 인권침해를 제보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학교내 인권문화가 전반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계속 지켜보겠다”고 했다.

◆교육당국 대응의 문제점

지난달 27일 대구 수성구 A여중 2~4층 곳곳에는 학생들이 겪은 인권침해 사실을 알리는 수많은 포스트잇이 부착됐다. 스쿨미투가 SNS 공간이 아닌 현실 공간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이를 철거하고 학생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 것을 강요했다. 대구시교육청은 발빠르게 움직였지만 대응 과정에서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정확한 진상조사가 아닌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데 그쳤고, 특히 인권침해 피해학생의 실명을 학교 측에 그대로 전달하는 우를 범했다.

A중학교 학부모 B씨는 “교육청과 학교가 학생들을 고려하지 않고 스쿨미투를 덮으려고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아이들은 기성세대의 문제해결 과정과 방법을 통해 배우게 된다. 하지만 교육청은 비공개를 약속한 설문결과를 고스란히 학교에 전달했고, 학교는 이를 토대로 가해교사와 피해학생을 대면시켜 사과하는 선에서 끝내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불의에 대항했을 때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아이들이 정의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대구시교육청은 “학교폭력 매뉴얼에 따라 학교 측에 제보자 명단을 제출했다. 학교 측의 안일한 대응에 대해서는 조치 마련을 촉구했다”고 해명했으나 이미 인권침해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게는 또 한 번의 생채기만 남겼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교육당국과 기성세대의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앞으로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매뉴얼을 만들고, 학생인권에 대한 전향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도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 인권침해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전수조사를 실시해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쿨미투의 향후 방향

전문가들은 청소년이 자발적으로 이끌어낸 스쿨미투를 기점으로 학교폭력법을 개정하는 한편, 인식 개선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교사·학생 간 폭력문제 등이 발생해도 제대로 된 조사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지난 3일 대구시교육청 앞 기자회견 이후 교육감 면담을 통해 별도의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앞으로 인권침해 없는 학교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선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에 학생과 교사 간 발생한 폭력문제도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돼 다룰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현장의 전반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반성도 나온다. 과거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반성과 함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 지역 한 중학교 교사는 “일부 동료교사를 보면 학생들에게 일상적으로 하는 발언 수위가 위험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며 “스쿨미투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도 일부 동료들은 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선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성적·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그는 “당장 변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교사 스스로 변해야 한다. 성장하고 있는 학생들의 인권 의식에 이제는 교사들이 응답해야 할 때”라고 했다.

양승진기자 promotion7@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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