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계산성당의 종소리가 아름답게 울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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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7 07:40  |  수정 2018-09-17 07:40  |  발행일 2018-09-17 제15면
[행복한 교육] 계산성당의 종소리가 아름답게 울렸으면…

태풍 솔릭이 오던 날, 나는 혼자 서울을 향했다. 조금 일찍 가서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전교조 교사들을 찾아 잠깐이라도 함께하려고 갔다. 태풍은 청와대 앞 농성장들을 꽁꽁 묶어두고 대피하고 없었다. 혼자서 청와대 문 앞에 서서 청와대를 한참 바라보았다. 지난 정부의 청와대와 대법원이 조작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어 탄압했다는 사실이 다 밝혀졌음에도 문재인의 청와대는 무엇을 염려하여 16개월이 지날 동안 전교조를 이렇게 내버려둘까 역지사지 해봤다. 답을 찾을 수 없다. 해직교사 9명이 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는 그사이 전교조를 지키려던 간부들이 해고돼 해고자만 34명이 되었다. 까짓 전교조야 법외노조로 더 버틸 수 있지만, 부당하게 해고된 교사들의 고통은 어떻게 내버려두란 말인가?

나는 잠시 청와대 정문 바로 옆에 있는 천주교 교황대사관 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39일 동안 파업으로 교섭을 마무리한 대구가톨릭병원 노동조합이 중단된 교섭재개를 요구하기 위해 신임 교황대사관을 찾아서 조합원들이 쓴 500여 통의 편지를 전하러 갔다. 그런데 상상 밖으로 수아레브 교황대사가 직접 나와서 환대를 했고, 이후 교섭은 급속도로 진전돼 타결되었다. 단 한 명도 징계를 받거나 해고되지 않았다. 30여 년 전 천주교는 파티마병원 노동조합의 파업을 반가톨릭으로 몰았고, 백골단이 투입돼 4명이 구속되고 11명이 해고되었으니 격세지감이 크다.

얼마 전 박근혜정부의 계엄령 계획으로 분노와 함께 두려움이 들었지만 이제 위수령이라는 무시무시한 군사 개입 가능성도 사라졌다. 청와대를 따라 걷는 걸음은 어떤 제지도 없었고 오히려 사복을 한 경찰은 친절했다. 세상은 이만큼 변하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덕수궁 뒷담을 따라 길을 낸다는 뉴스를 듣고 가보았지만 성공회 주교좌 대성당에서 길은 아직 막혀 있다. 그때 마침 오후 6시 삼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삼종기도를 했다.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서있는가? 무엇을 하려고 서울까지 올라와서 이러고 있는가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덕수궁 뒤 빌딩 숲을 헤치고 정동길을 찾아 걸었다. 길 중간에는 고종의 임시거처였던, 을사늑약의 현장인 중명전이 있다. 잠시 묵상을 했다. 낭만의 길이지만 아픔을 떨칠 수 없다. 나는 지금 정동길 끝에 있는 프란치스코회관으로 갔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민족대표 33인들의 전통을 다시 이어가기 위해 종교개혁을 실천하려는 5대 종단에서 모여 소속 종단의 적폐를 성찰하는 연구 결과를 들었다. 많이 부끄러웠다.

한 달 만에 정동길을 다시 걸었다. 천주교의 개혁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정동에 모여서 대구대교구의 사례를 중심으로 토론을 했다. 지금 대구지역에서 끊임없이 나쁜 뉴스를 만들어내는 곳은 안타깝게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다. 대구의 문제를 서울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문제는 천주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연결돼 있는 큰 문제이고, 한국천주교 전체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오늘 정동길이 해결과 변화의 변곡점이 된다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김유철 시인의 말이 깨달음을 준다. ‘종을 치면 종매는 문드러진다. 종매가 문드러지지 않으면 종은 울릴 수 없다. 종매는 종을 깨려고 하는 게 아니다. 종을 울리려고 하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종이 깨져서 종소리가 깨져도 종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종일 수도 있다. 금이 나서 일그러진 종소리를 낼 수도 있고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종매라면 우리는 문드러지더라도 종소리를 울리는 종매가 되려고 해야 하고, 종이라면 깨지더라도 소리를 내야 한다.

정동길 입구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들렀다. 우리 사회가 지금 여기까지 오면서 종을 울리기 위해 문드러지고 깨졌던 수많은 종매와 종을 기억한다. 나도 수많은 종매 가운데 하나다. 부러지고 싶지는 않지만 조금 더 문드러지더라도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는 종매로 살아야 한다. 계산성당의 삼종을 알리는 종소리가 대구를 아름답게 만들면 좋겠다.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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