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사랑은 눈물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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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7 07:45  |  수정 2018-09-17 07:45  |  발행일 2018-09-17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사랑은 눈물의 씨앗

영화 ‘카사블랑카’의 마지막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탈출로를 마련해준 험프리 보가트가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잉그리드 버그만의 큰 눈을 보며 안녕을 고하는 장면입니다. 스크린 속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야 하는 슬픔에 잉그리드 버그만이 흘리는 눈물은 영화를 보던 모든 남성의 마음을 무장해제시켜 버렸습니다.

보통 눈물은 대개 안구를 촉촉이 적셔주고 외부 이물질을 제거해주는 기능을 하지만, 때론 이처럼 다른 이의 감정을 휘두르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 감정에 따라 흘리는 눈물 속에는 말로 하지 않지만 자신의 속마음을 전달해주는 소통 물질이 있습니다. 향기박사는 이렇게 뇌를 자극하는 화학물질을 연구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얼마 전 독일에서 열린 학회에서 접한 최신 연구동향 중에서 바로 눈물이 우리 뇌에 보내는 신호에 대한 연구가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이번 학회에 키노트 연자로 초청되어 발표한 일본 도쿄대의 도하라 가츠시게 교수는 그간 본인이 10여년간 연구한 눈물 속에 담긴 페로몬에 관한 연구내용을 정리하여 강연하였습니다. 도하라 교수는 2010년 수컷쥐의 눈물에서 암컷쥐를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ESP1이란 물질을 처음으로 발견하였고, 이후 눈물 속에서 뇌반응을 유발하는 물질을 찾고 그 기능을 연구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회에서 도하라 교수는 수컷쥐의 눈물이 아니라 암컷쥐의 눈물을 연구하여 얻은 새로운 결과를 하나 발표하였습니다. 아직 성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암컷쥐가 흘리는 눈물은 수컷쥐의 성적흥분을 진정시킨다는 것입니다. 반면 성숙한 암컷쥐의 눈물은 수컷쥐의 성적흥분을 진정시키지 못했습니다. 즉 동물의 세계에서는 미성숙한 암컷쥐의 눈물은 발정기의 수컷에게 아직 성숙하지 않아 생식력이 없는 암컷쥐를 알아보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도하라 교수의 연구는 사람에게도 확장되어 연구가 진행되기도 하였는데, 2011년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노암 소벨 교수가 여성이 슬퍼서 흘리는 눈물은 남성의 성적 흥분을 진정시킨다는 연구결과를 ‘Science’지에 발표하여 많은 사람에게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소벨 교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자의 눈물은 남성의 성적흥분을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심장박동과 호흡도 안정시키고 남성호르몬의 분비도 낮춘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런 이유로 카사블랑카를 보던 남성들이 잉그리드 버그만의 눈물에 그만 무장해제가 되고 만거죠.

사실 대부분의 경우 남녀 간의 싸움에서 여성이 흘리는 눈물은 남성에겐 KO 펀치가 됩니다. 즉 여성 눈물 속의 물질이 남성의 전의를 상실케 하는 거죠. 흥미롭게도 중세 시대에는 미망인이 된 여성들이 양파즙을 묻힌 손수건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손수건의 양파즙 향이 미망인의 눈물샘을 수시로 자극해 눈물을 흘리게 하였는데, 사실 양파즙이 유발하는 생리적 반응의 눈물이 여성이 정말 슬퍼서 흘리는 감정의 눈물과 그 성분이 같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망인의 눈물로 인해 그 미망인에 대한 주변 남성의 성적 호기심을 낮추는 효과는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 도하라 교수의 첫 연구결과에서 보여준 수컷쥐 눈물의 효과처럼 과연 남성이 흘리는 눈물이 여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는지는 모릅니다. 만약 누군가 남성의 눈물이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면 국민가수 나훈아씨의 노래처럼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아니라 7080 가수 이유진씨의 노래처럼 ‘눈물 한 방울로 사랑은 시작되고’가 맞다는 것이겠죠?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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