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비리 복마전 염색공단

  • 민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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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0   |  발행일 2018-09-20 제30면   |  수정 2018-09-20
[취재수첩] 비리 복마전 염색공단

복마전(伏魔殿).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 즉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는 곳이라는 뜻의 고사성어다. 대구에도 복마전이란 소리가 나오는 곳이 있다. 바로 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이하 염색공단)이다. 염색공단에서 20여 년간 근무했던 한 직원이 지난해 말 염색공단 내부 비리를 폭로한 게 기폭제가 됐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 후 새로운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기됐다.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도 아침마다 신문기사를 돌려보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다. 일부는 “염색공단에서 일한다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다들 요즘 회사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본다” 등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염색공단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었다.

염색공단은 지난 3월 126개 입주업체가 참여해 제14대 이사장을 선출했다. 당시 김이진 명지특수가공 대표와 홍덕주 창운염직 대표가 후보로 나섰으며, 투표 결과 56대 50으로 김 대표가 당선됐다. 염색공단은 신임 이사장이 취임한 뒤로 개혁을 공언해 왔다. 약품비·슬러지처리비의 절감과 슬러지 감량화 사업 등을 통해 약 68억원의 원가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폐수처리 약품업체로부터 ‘발전기금’ 명목으로 3억원을 상납받았다는 의혹에 이어 염색공단 상임감사가 외부업체 감사직을 겸임한 것도 모자라 염색공단 관리이사까지 맡았다는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개혁 의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염색공단 측은 “전혀 몰랐다” “사실과 다르다. 왜 염색공단을 흔들려고만 하느냐” 등으로 대응해 왔다. 전직 이사장이 구속되는 등 적잖은 임직원들이 사법처리를 받거나 수시로 수사선상에 오르내렸음에도 반성하는 기미는 없어 보였다.

연간 1천200억원에 달하는 거대 예산을 움직여서일까. 염색공단은 ‘구중궁궐(九重宮闕)’로 불릴 정도다. 염색공단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과거 근무했던 이들은 “염색공단이 쉽게 바뀌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비리 연루자 중 일부가 여전히 염색공단에서 근무하고 있고, 기본적인 견제장치인 감사와 관리이사를 겸직할 정도로 폐쇄적인 조직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 염색공단 직원들은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이 반복될수록 피해는 결국 성실하게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염색공단 내 기업과 시민에게 돌아간다. 연이어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제품 하자로 인한 손해가 기업에 그대로 전가되고 시민은 환경오염에 노출된다.

1915년 추인호씨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대구 인교동에 동양염직소를 차린 이래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대구 염색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물론 세상에 듣기 좋은 비판은 없다. 그건 마치 송곳과도 같아서 살짝만 지적해도 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같은 비판은 사회를 바꾸는 거름이 되기도 한다. 부디 염색공단도 경찰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각계의 지적을 자양분 삼아 재탄생하길 바란다.

민경석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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