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이젠 분권통일이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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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0   |  발행일 2018-09-20 제31면   |  수정 2018-09-20
[영남타워] 이젠 분권통일이다
박진관 뉴미디어 부장

‘통일지도 손수건’이란 게 있다.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이 만든 건데, 한반도 지도를 손수건에 새기고 휴전선을 기준으로 손수건을 접어 남북간 맞닿은 지역과 도시를 연결시켰다. 그렇게 해서 남강원도는 북강원도, 대구·경북은 함흥과 함경남도, 부산·울산·경남은 청진·나진·선봉과 함경북도, 광주·전남은 신의주와 평안북도, 서울·경기도는 평양 및 평안남도, 개성은 파주와 고양, 제주도는 백두산이 위치한 양강도와 결연을 하게 했다. 더하여 광역-광역, 기초-기초끼리 파트너를 만들었다. 현재 중앙정부가 남북관계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에선 어렵겠지만,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북한의 지방도시와 결연을 할 때 참고할 만하다.

지금이야 중앙정부가 통일의 주체가 돼 밑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지방정부와 민간이 함께해야 시너지효과가 있다. 현행법상 지방자치단체는 NGO를 통해 정부와 통일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돼 있어 보다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고 한계가 있다.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해선 향후 지방정부를 포함한 다양한 NGO의 자율성과 권한을 확대하는 분권형 대북정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통일관련 제반 헌법과 법률도 개정해야 한다.

이번 방북단에 지방자치단체 대표로 박원순 서울시장 겸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의장이, 접경지역 대표로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포함된 건 의미가 깊다. 통일시대를 대비해 지방정부의 역할과 할 일이 많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1998년 강원도를 시작으로 전국 50여개 지방자치단체가 남북교류협력 조례를 만들어 본격적인 북한과의 교류를 준비하고 있다. 대구의 경우 개성, 포항은 나진·선봉 및 청진과 결연을 추진 중이다. 경북은 동북아자치연합의 경험이 있지만 더 활성화시켜야 한다. 자매결연은 평양, 개성 등 일부 큰 도시에 편중 또는 집중되거나 중구난방이 돼선 곤란하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중앙중점 측광방식보다 다분할평균 측광방식이 적정노출을 도출해내기 쉬운 것처럼 일정한 원칙에 따라 1대 1로 연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소외되지 않는다. 남북 각 지역의 지리적·역사적·문화적 동질성을 찾아 결연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통일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중앙이 아니라 지방이었다. 연방제 경험과 지방분권 시스템 토대 위에 독일통일이 이뤄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동·서독은 1980년대 지방정부간 자매결연이 활성화되면서 통일의 길을 열었다. 지방정부간 교류를 먼저 제안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동독이었다. 동독은 1967년까지 프랑스의 16개 도시, 이탈리아의 1개 도시와 자매결연을 했다. 서독은 69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방정책을 추진한 이후 지속적으로 동독 지방정부간 결연을 추진했다. 85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자매결연은 1989년 9월까지 62개 도시끼리 성사돼 급속한 관계 개선이 이뤄지고 결국 그해 11월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자매결연은 스포츠, 문화, 청소년 교류 등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다양한 인적·물적교류 형태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정보와 사상이 공유되고 동독 주민이 자연스레 서독의 민주주의를 체득하게 됐다. 동독이 서독 방문단을 체제옹호세력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바람에 서독 내부에서의 반대도 있었다. 또 동독이 서독과 합의된 내용을 벗어난 접촉이나 사업 추진을 원하지 않아 교류확대가 제한되기도 했다. 동·서독간 정치적 셈법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혔지만 서독은 자신감과 끈기를 갖고 슬기롭게 극복했다. 여기에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서독 도시가 파트너인 동독 도시를 지원함으로써 동독주민의 민심을 얻었다. 독일통일은 큰 틀에서 보면 동·서독 두 체제 간 합체이지만 세밀히 보면 지역과 지역간의 결연이고,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성사다. 즉 분권시스템 토대에서 펼쳐진 지역과 사람의 결연이 통일로 이어진 것이다. ‘무혈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선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박진관 뉴미디어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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