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줄탁동시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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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0   |  발행일 2018-09-20 제31면   |  수정 2018-09-20

조선왕과 고구려왕 중 어느 쪽이 수명이 길까. 수명에 관한 한 고구려왕이 조선왕을 압도한다. 고구려왕의 평균 수명은 55세, 조선왕의 수명은 47세다. 오래 살다보니 재위 기간도 고구려왕이 훨씬 길다. 고구려는 705년 동안 28명의 왕이 다스렸고, 조선은 519년 동안 27명이 통치했다. 평균 재위기간은 고구려왕이 25년, 조선왕은 19년이다. 특히 고구려 20대왕 장수왕은 98세까지 사는 수복(壽福)을 누렸다. 19세인 412년 즉위해 491년까지 79년간 왕위를 지켰으며, 사후 장수왕이란 시호(諡號)를 얻었다. 조선에선 52년간 재위하며 83세에 영면한 영조가 최장수 군주로 꼽힌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700년 뒤의 왕조인 조선왕이 더 오래 사는 게 맞다. 왜 그럴까. 답은 운동이다. 고구려왕은 말을 타고 전장에서 군사들을 진두지휘한 반면, 조선왕은 산해진미의 수라상을 받으면서도 활동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양 왕조의 수명은 적절한 음식 섭취와 운동을 병행해야 섭생(攝生)이 가능하다는 황금률을 새삼 일깨운다.

줄탁동시(啄同時)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동시에 껍질을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원래 중국 민간에서 쓰던 말이지만, 송나라 때의 불서(佛書) ‘벽암록’에 공안(公案)으로 등장하면서 불가(佛家)의 중요한 화두가 됐다.

섭생에만 줄탁동시가 요구되는 건 아니다. 부동산 투기 역시 수요억제만으론 잡히지 않는다.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집값이 미친 듯이 뛴 것도 공급대책이 빠졌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의 정책 도그마가 된 소득주도 성장이 딜레마에 빠진 이유도 혁신성장이 수반되지 않은 까닭이다. 규제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는 뒷전인 채 최저임금 가속페달만 밟았으니 사달이 난 것 아닌가. 성장과 분배도 함께 가야 한다. 성장이 있어야 분배가 가능하고, 분배가 있어야 성장의 과실(果實)이 한 쪽으로 쏠리지 않는다.

남북 정상이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끌어내며 남북교류 확대와 군사적 긴장완화를 예고했다. 핵 리스트 신고, 핵시설 검증 등 비핵화 로드맵이 빠지긴 했으나 항구적 한반도 평화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남북관계 개선 역시 비핵화 실천과 속도를 맞춰야 한다는 게 줄탁동시의 교시(敎示)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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