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편견의 장애가 없는 사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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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1   |  발행일 2018-09-21 제22면   |  수정 2018-09-21
특수학교 신설에 반대하고
장애인 입주 차량으로 막고
우리사회의 편견 너무 많아
이제라도 부끄러움을 알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 이뤄야
[경제와 세상] 편견의 장애가 없는 사회를 꿈꾸며

지난 해 가을, 서울 신길역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호선 전철에서 내려 5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이동하던 중 일어난 사고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사고로 두 달여 뒤 사망했다. 어떻게 이런 참담한 사고가 일어났을까.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신길역의 구조 탓이 컸다. 신길역 환승구간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전철을 갈아탈 때는 리프트를 이용해야 했다. 5호선 방향에 있는 리프트 호출 버튼은 왼쪽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왼팔이 온전치 못한 그가 오른손으로 버튼을 누르려고 휠체어를 움직이다가 계단으로 굴러떨어져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불편한 몸으로 버튼을 누르려고 애쓰는 동안 누구 하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그는 얼마나 참담했을까. 신길역 추락사고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2001년 4월, 미국 보스턴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가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고립되어 고통을 겪는 한인 장애인 교수의 사연을 보도한 일이 문득 떠오른다. 그 주인공은 이미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다. 그가 하버드대 방문교수로 보스턴에 머무르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다. 잘 알려진 대로 장 교수는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로 평생 목발을 사용해야 했는데, 그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난 것이었다. 장 교수는 아파트의 맨 꼭대기 층인 7층에 살았는데, 날마다 1층까지 목발을 짚고 오르내리는 일이 엄청난 고역이었다. 그는 부동산관리회사에 연락을 하여 신속하게 엘리베이터를 고쳐주든지, 아니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임시거처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다못한 그는 항의 e메일을 인터넷에 띄우는 등 조용하지만 단단한 싸움을 시작했다. 이 사실을 보도한 ‘보스턴 글로브’의 기사에 많은 장애인이 분노했고, 지역 언론의 날선 비판도 이어졌다. 그로부터 3주 뒤 엘리베이터는 정상 가동되었고, 그 회사는 장애인에 대한 우선적 지원을 약속하며 사과했다.

몸이 성치 않은 이웃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편견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특수학교가 인근에 신설된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결사반대를 하고, 장애아를 둔 엄마들은 죄인이라도 된 양 그들 앞에서 무릎 꿇고 눈물로 하소연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자신이 사는 빌라에 장애인들이 입주한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주차장을 자신들의 차량으로 막고 공사업체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집 내부수리를 못하게 한 일도 있었다. 심지어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을 위한 청년임대주택이 건립된다는 소식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집단행동에 나서는 일까지 있었다. 우리 사회에 편견과 이기심이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지 짐작하게 하는 장면들이다.

지금은 폐지된 한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 고(故) 장영희 교수는 “어떤 면에서 인간은 누구나 다 모종의 장애인입니다. 신체장애는 눈에 띌 따름이죠. 권력을 지나치게 탐하거나 노동 없이 남의 돈을 먹는 것도 분명 장애입니다. 아니 신체적 장애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장애입니다. 장애인들이 살아가기 힘든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신체적 장애가 아니라 사회가 주는 편견의 장애 때문인지 모릅니다”라며 닫힌 마음을 열고 편견의 눈을 거두어달라고 호소했다.

“민지는 신체장애 3급입니다/ 순희는 지적장애 2급입니다/ 우리 반 다른 친구들은 모두 정상입니다/ 민지가 바지에 똥을 싸면/ 순희가 얼른, 화장실로 데려가/ 똥 덩어리를 치우고 닦아 줍니다/ 다른 친구들이 코를 막고/ 교실에서 킥킥 웃을 때/ 순희가 민지를 업고/ 가늘고 긴 복도를 걸어올 때/ 유리창 밖 살구나무가/ 얼른, 꽃향기를 뿌려줍니다/ 살구나무도 신체장애 1급입니다/ 따뜻한 햇볕과 바람이 달려와/ 꽃 피우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시인 유금옥은 ‘살구꽃 향기’를 통해 장애아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낸다. 이제라도 부끄러움을 알고 ‘편견의 장애’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우리 모두 나서야 한다.

김병효 (국제자산신탁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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