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정선 백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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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1   |  발행일 2018-09-21 제37면   |  수정 2018-09-21
야생화 따라 능선길 따라 오르는 하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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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볼거리인 야생화와 멀리 고산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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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하늘 마중길의 비경 중 한곳인 도롱이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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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원호텔까지의 곤돌라와 하이원호텔과 주변의 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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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하늘길 중 고원숲길 가에 있는 돌탑과 이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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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하늘길의 곳곳에 있는 산돼지 퇴치 목탁종.

정선 백운산 하늘길이다. 해발 50m 대구분지에서 한생을 파먹어온 나에게 하늘은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 하기야 눈만 뜨면 하늘은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시인의 하늘은 회색이고, 마치 공기처럼 당장 절실한 게 없으니까, 그냥 하늘일 뿐이다. 그러므로 도시인에게는 하늘보다 땅이 소중하고, 땅값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 높낮이가 정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천국에 계시는 사람의 아들’보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훨씬 더 피부에 닿고 호소력이 있다. 그러나 하늘은 우주의 주인이다. 하늘은 시공을 넘어서 있고, 포함하고 있다. 하늘은 우주의 시작 전에도 있었고 우주가 소멸되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게 하늘이다. 그러한 하늘 길을 오늘 간다. 들머리는 강원 정선 백운산 마운틴콘도 우측 트레킹 로드다. 돌비석에 새겨진 ‘하늘 길을 열며(개도비문 : 開道碑文)’를 읽어본다.

‘여기는 한반도의 정기가 응집된 백두대간의 중심. 이곳으로부터 하늘길이 열리고 땅이 열리고 물이 열리고 역사가 열렸다. 하이원리조트에서 이 거룩한 땅 태백준령에 길을 열어 누구나 우러르며 걷고 싶은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로 삼는다. 이 길을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천지간의 빗장 푸는 개벽의 소리가 되어 하늘과 사람이 자연이 서로 소통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상생의 길이 될 것이다. 2011년 11월2일.’

한반도 정기 응집된 백두대간의 중심
고산식물군 원시숲 지나 제1전망대
산군 파노라마와 공활한 하늘 펼쳐져

야생화 군락지 넘어 석탄산업 발자취
탄광갱도 지반침하로 생긴 도롱이 연못
야생동물 쉼터 아름답고 신비한 볼거리

산속 궁전같은 마운틴 탑 능선 전망대
해발 1200m 국내 가장높은 고원로드
가을까지 350여종이 피고지는 땅의 별
한시간 더걸어 마천봉에서 마주한 생명


흰 구름 안고 출발한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벌써 귀가 먹먹하다. 이제부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정의하는 저 아수라장 같은 도시의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된다. 오늘만은 하늘 길로 가서, 하늘과 하늘의 하늘, 그 위의 하늘까지 걸으며, 그 천상의 소리를 들어야겠다. 잘 다듬어진 길과 고산식물군이, 나를 변하게 한다. 자연의 청정 속에는, 나를 바뀌게 하는 무한한 힘이 있다. 돌들이 많아 발 디디는데 주의를 한다. 한바탕 땀을 흘리면서 숲과 텅 빈 공간만의 그 오르막을 오른다. 아마 천국의 계단이라는 표현이 맞을 게다.

그 야생화와 신생대의 밀림 같은 원시의 숲을 지나 제1전망대에 선다. 고도가 높아서 인지, 삼면의 산군이 파노라마를 그린다. 그 산 그리메 위로, 공활한 하늘이 펼쳐져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건 또 하나의 신비이고, 하늘에 대한 전혀 새로운 경험이다. 그 전망대에 서서, 멍하니 사방을 휘둘러본다. 그 티 없는 산군과 하늘은 물결이 되어 나의 마음으로 한없이 흘러들어 온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그 태초의 식량은 한없이 내 마음을 채우지만 나는 도리어 마음이 텅 비어버리는 공적(空寂)감을 느낀다. 여기선 내가 누구인가. 하늘의 티끌보다 작은 일부이고 하늘보다 더 큰 전체이다.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다시 걷는다. 야생화 군락지가 아름답다. 폐광산에서 유출하는 갱내수를 포함 금속성분 제거를 위한, 자연정화시설을 지난다. 순서는 갱구막이 소택지 산화조로 되어 있다. 한국광해관리공단에서 관리한다. 길가에 과거 광산 채굴의 사진과 광부들 가족의 시(詩)가 진열되어 있다. 정연수의 ‘굴진작업’을 읽어본다. ‘길을 닦는다. 캄캄한 날에도 길을 닦는다. 캄캄하니까. 밝은 세상 보자고 매일 전진한다지만 늘 앞을 턱턱 막아서는 길을 뚫는다. 굶주려 지나온 세월보다 단단한 암벽. 없이 사는 것보다 참기 힘든 외면의 눈길. 앞을 막아도 길을 뚫는다. 터져라 무저갱으로 가는 세월. 가도 가도 끝없는 막장 길을 닦는다.’

1950년대 말 이곳에 탄광이 개발되면서 광산촌에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이곳에서는 잊혀 가는 옛 탄광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광복 후 1960년대 우리나라 경제 개발의 가장 큰 동력이었던 석탄은 가정용 연탄으로 본격 사용하면서 그 동안 땔감으로 베어내 헐벗었던 우리나라 산야를 다시 푸르게 만들어 주었다. 1970~80년대에 두 차례의 세계 석유 파동과 석탄증산 정책으로, 고한·사북 탄광지대는 광부 중심의 지역 공동체가 생기고, 탄광촌만의 문화를 형성했다. 그 당시 국민의 주 사망 원인이 연탄가스 중독일 정도로, 석탄은 국민생활에 가장 중요하고 밀접한 자원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천연가스 등 새로운 에너지가 등장하면서 전국 334개 탄광이 차례로 문을 닫게 되고, 한 때 찬란했던 영광을 뒤로한 채 석탄 산업은 사양길을 걷게 되었다.

도롱이 연못에 도착한다. 이 연못은 1970년대 탄광 갱도의 지반침하로 인해 생긴 생태연못이다. 배고픈 시절 진달래를 비롯한 야생화를 꺾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는 화절령(꽃꺾이재). 그 일대에 살았던 광부의 아내들은 연못에 도롱뇽이 살고 있으면 광산에서 일하는 남편이 무사하다고 믿어, 도롱이 연못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야생동물들의 샘터로, 도롱뇽의 서식지로, 수서식물의 보고로, 주변의 야생화와 함께 아름답고 신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도롱이 연못에서 30분 올라 드디어 마운틴 탑이 있는 백운산 능선 전망대에 도착한다. 마운틴 곤돌라가 착지하는 마운틴 탑과 부대시설이, 산속의 궁정처럼 이채롭다. 이제는 사방이 툭 트여 그 산군의 실루엣이 파도치고, 하늘은 새로운 돔형의 나라를 만든다. 그야말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하늘길이다. 해발 1천200m의 능선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원 트레킹 로드다. 특히 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는 350여종의 야생화가 하늘 길을 별천지로 만든다. 오늘만은 인간이 만든 문화시설을 외면한다. 야생화 따라, 능선 길 따라 백운산 정상으로 걷는다. 하늘 길 명상쉼터에서 잠시 멈춘다. 명상의 대가 4인의 소개 안내판이 있다. 하늘 길에서, 그들의 명성은 얼룩반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누구이며, 왜 하필이면 그들의 명상인가. 여기는 누구라도 명상가가 되고, 하늘의 아들이 되는 자리다. 그리고 백두대간의 파노라마가 하늘로 흐르고,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지는 환영을 본다. 참으로 신이하다. 하늘을 나타낸 글귀를 밀짚모자처럼 덮어쓴다.

천자문에 첫 글자가 천(天), 즉 하늘이다. 주기도문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하였다. 천상병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시를 썼다. 어느 유행가 가사에 ‘하늘이 내게 천년을 빌려 준다면’이라고 노래했다. 하늘은 대강 봐도 그렇다. 땅이 인간의 의식이라면, 하늘은 인간의 무의식이다. 땅과 하늘은 대극에 있고, 서로 보상한다. 땅에서 가난하게 살고 어둠에서 고통받은 사람은, 하늘에서 부자로 그리고 빛 속에서 기쁨으로 살게 된다. 땅에서 부를 누린 사람은 하늘나라에 절대 갈 수 없다.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 갈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늘나라는 그런 곳이다. 이렇게 천상의 화원 같은 하늘 길은 가난하며 입으로 항상 기도하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의 로드다.

야생화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땅의 꽃은 하늘의 별이고 은하이다. 하늘의 별과 은하는 땅의 꽃이다. 땅의 꽃과 하늘의 별은 대극이다. 마치 가난과 천국이 대극이고 보상하듯이. 한 시간 걸어 테일러스 지형을 지나고, 백운산 정상 마천봉에 도착한다. 주위의 명산이 많지만 오늘만은 그 산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다. 산 이름을 부르면 산들이 깨어나 모두 하늘로 떠날 것만 같아서이다. 그 대신 백운산에 살고 있는 식물과 동물의 이름을 불러본다. 엘레지, 은대난초, 큰 구슬 봉이, 홀아비 바람꽃, 담비, 등줄 쥐, 청설모, 오소리, 삵…. 이렇게 호명한 생명들은 하늘 길로 떠날지 모른다.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모든 이름을 부르면 모두 떠날 것이고, 그럼 이 땅의 아름다움은 누가 지키겠는가. 나머지는 입술에서 굴려본다. 이제 하산하는 태고의 숲길만 남아있다. 이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나, 사용하다 버리고 갈 뿐이다. 하늘 길도 그렇다. 하늘 길도 하늘에 가게 되면 버리는 길이다.

글=김찬일 <시인 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 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 마운틴콘도 -고원숲길 - 전망대 - 도롱이 연못 - 능선 전망대(마운틴 탑) - 쉼터 - 마천봉(백운산 정상) - 밸리 콘도

▶문의: 정선군 관광 안내 전화(1544 - 9053) ▶내비 주소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438 ▶주위 볼거리 : 백두대간 생태 수목원, 정선오일장, 임계시장, 그림바위 미술마을, 아리랑 박물관, 정선 아기동물농장, 억새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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