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따라 청도 여행 .2] 지역민 대표축제 ‘도주줄당기기’

  • 임훈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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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2   |  발행일 2018-10-02 제11면   |  수정 2018-10-23
정월대보름 東西로 패 나눠 줄 당기기…풍년·다산을 기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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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화양읍에서 열렸던 줄당기기는 청도읍성을 동·서로 나누는 북문길을 중심으로 패를 나누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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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청도군 화양읍에서 대규모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줄당기기 행사가 열린 모습.<청도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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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 북편에는 조선시대 때 죄인을 가두었던 형옥이 위치해 있다. 형옥 인근의 강지뜰에는 죄인을 처벌하던 형장(刑場)이 자리하고 있었다. 청도의 줄당기기는 형장에서 울렸다는 원귀의 울음소리를 없애기 위해 시작됐다.

도주줄당기기는 청도를 상징하는 대표적 민속놀이다. 음력 정월대보름마다 군민들이 동·서로 패를 나누어 줄을 당기고 풍년과 다산을 기원하던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는 지역민의 축제로 2년마다 한 번씩 청도천 둔치에서 열리고 있다. 시리즈 2편은 청도인(人)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농경사회의 전통을 엿볼 수 있는 도주줄당기기에 대한 이야기다.

2년마다 한 번씩 청도천 둔치서 열려
볏짚으로 만드는 줄의 길이는 100여m
해가 뜨는 동쪽은 남성 상징하는 숫줄
해가 지는 서쪽은 여성 상징 암줄 사용
음양의 조화로 풍년 들었다는 說 전해
2016년 경북도 무형문화재 38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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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도주줄당기기 전승보존회 박창복 회장이 줄당기기의 유래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 민심과 망국의 한을 달래다

도주줄당기기는 청도군 화양읍 주민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놀이다. ‘도주(道州)’가 청도의 옛 지명이어서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영남줄’ ‘읍내줄’ ‘화양줄’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가을걷이를 끝낸 농민들이 무료함을 달래고 풍년을 기원했던 것이 도주줄당기기의 기원이다. 구전에 따르면 신라시대나 조선초기에도 도주줄당기기를 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조선후기 청도읍성 북문 일원의 구릉지인 강지뜰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18세기 후반, 청도읍성과 관아가 자리한 화양읍은 지역행정의 중심지였다. 당시 읍성 북문 앞은 죄인을 처벌하던 형장(刑場)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형장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원귀들의 울부짖음이 밤마다 들린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관아에서는 주민들을 안심시키고 땅의 기운을 바로잡기 위해 화살을 쏘는 궁장(弓場)을 만들었지만, 흉흉한 소문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에 1778년(정조 2) 군수 김상행은 형장을 폐지한 후 강지뜰에서 대규모 줄당기기 행사를 열었다. 밝은 기운이 가득한 보름달 아래에서 군중이 참여하는 줄당기기야말로 음기(陰氣)를 누르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의견 때문이었다. 이후 귀신의 울음소리는 멈췄고 줄당기기에 승리한 지역에서는 풍년이 들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줄당기기는 중지됐다 다시 열리기를 반복했다. 상민과 어울릴 수 없다는 양반들의 주장 탓에 흐지부지된 적이 있었고, 군수의 성향에 따라 열리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흉년이 들고 질병이 만연하는 등 민심이 최악으로 치닫자 1836년(헌종 4) 군수 김재심에 의해 대대적인 줄당기기가 다시 열렸다.

줄당기기의 전통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잠시 끊어진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당하자 ‘위엇사 왜놈들’이라는 줄당기기 함성을 외치며 망국의 한을 달랬지만 3·1운동이 일어나면서 1920년 금지령이 떨어졌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자 줄당기기는 다시 기지개를 켰다. 6·25전쟁 등으로 또다시 중단되는 시련을 겪었지만 줄당기기는 멈추지 않았다.

1968년에는 화양읍을 남·북으로 나눠 대규모 줄당기기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줄당기기에 참여한 박창복 청도 도주줄당기기 전승보존회 회장(82)은 “줄당기기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경기 중에 줄에 걸려 전주가 넘어지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줄당기기에 대한 군민들의 관심과 열성이 대단했다”며 과거를 떠올렸다. 이후 1983년 ‘화양줄’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부활했고, 1997년 ‘도주줄당기기’로 명칭을 변경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청도군민의 자부심

지금의 도주줄당기기는 청도군이 주최하는 정월대보름 행사의 하나로 청도천 둔치에서 진행되지만, 1997년 이전까지는 화양읍 일원에서 열렸다. 청도읍성 중심을 동·서로 가르는 북문길을 경계로 동군과 서군으로 나누어 경기가 진행됐다. 해가 뜨는 동쪽은 남성을 상징하기에 숫줄을, 해가 지는 서쪽은 여성을 의미하기에 암줄을 사용한다.

볏짚으로 만든 줄의 길이는 100여m에 달한다. 볏짚은 무려 3만여단, 새끼 30타래 등을 이용해 줄을 제작한다. 볏짚을 꼬아 여러 갈래의 가닥줄을 만들고, 가닥줄을 모아 거대한 두 개의 암수 원줄을 만든다. 원줄에 목줄과 종줄, 가지줄을 묶고 도래목으로 암수 목줄을 꿰면 도주줄당기기의 줄이 완성된다.

직접 경기에 참여하는 인원만 1천명에 가깝고 구경꾼까지 포함하면 수 만 명이다.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수십년 전에도 대구와 경남 창녕 등 주변 시·군에서 정월대보름 때 청도를 찾는 이들이 많았다.

줄당기기에 나서는 각 군의 대장인 줄패장 자리에는 덕망을 갖춘 인물들이 뽑혔다. 대표적 인물로 일제강점기 때 서군 줄패장이었던 문참봉(문주상, 1897~1939)을 꼽을 수 있다. 문참봉은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 당시 대구군수 박중양 등 친일파들의 회유를 뿌리치고 농민 권익을 위해 애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줄패장은 경제력을 갖춘 마을 유지로 최소 백석꾼 이상의 부농들이었다. 줄당기기 비용의 상당부분을 줄패장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줄패장은 줄을 꼬는 비용과 술, 음식 등을 제공하며 해당 지역 농민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줄패장은 보좌진 격인 중장과 소장을 임명하고 줄 제작을 총괄했으며, 경기 중에는 줄 위에 올라서서 지휘에 나섰다.

승리는 서군이 거머쥐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을 상징하는 서군이 이겨야 풍년이 온다는 믿음이 주민 사이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청도의 지리적 특성상 서쪽에 너른 농지가 많고 동쪽에는 산지가 많아 서군이 이기는 것을 선호하는 군민이 많았다.

박창복 회장은 “예전에는 동군의 마을에 속하면서도 서군의 줄을 당기는 사람이 꽤 있었다. 동군 중에서도 서쪽에 땅을 가진 이가 많았고 풍년을 향한 농민들의 열망도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코 승부가 결정된 경기는 아니었다. 줄당기기의 승리 여부로 길흉화복을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 줄당기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해당 지역의 자부심과 직결됐다.

#3. 풍년과 다산을 기원하다

줄당기기가 풍년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의 배경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겨울철마다 열린 줄당기기 덕분에 보리밟기가 이뤄져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 암줄과 숫줄이 단단히 얽혀야 경기가 성사되는 도주줄당기기의 특징 때문에 음양(陰陽)의 조화가 이뤄져 풍년이 들었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도주줄당기기에는 다산과 복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도 포함돼 있다. 박창복 회장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줄을 끊어가는 사람이 많다. 줄을 통해 복이 들어온다는 믿음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를 갖고 싶은 여성들이 앞다퉈 줄을 끊어가곤 했기에 혹시라도 줄이 손상될까봐 정월대보름 전날에는 항상 줄을 지키는 보초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경기를 끝낸 줄은 유용하게 쓰였다. 짚으로 만든 줄은 최상품의 소사료로 사용되었다. 논에 뿌리면 풍년이 들고 배에 실으면 만선을 이룬다고도 했지만, 짚에 염분이 포함돼 있어 최근에는 거름으로 잘 쓰지 않는다.

도주줄당기기의 전통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도주줄당기기는 2016년 경북도 무형문화재 38호로 지정되면서 체계적 전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창복 회장은 “현재 전승보존회 회원 상당수가 고령자이지만, 줄당기기를 배우려는 사람이 주변에 많아 안심”이라고 말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자문=박창복 청도 도주줄당기기 전승보존회 회장
▨ 참고=도주줄당기기 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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