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태영호와 트럼프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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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2   |  발행일 2018-10-02 제31면   |  수정 2018-10-02

지난 6월28일 대구 토론회장에서 만난 태영호는 자신감이 넘쳤다. 신분을 모른다면 아마 남한 출신 외교관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올해 만 56세의 태영호는 알다시피 주(駐)영국 런던의 북한 대사관 공사로 재직하다 대한민국으로 망명했다. 2016년 여름이다. 근래 탈북한 북한 인사 중 가장 고위직이고, 특히 평생 직업외교관 생활을 해 북한의 대외정책에 굉장히 근접한 인물이다. 에릭 클랩튼의 공연을 보기 위해 영국에 온 김정철(김정은 현 국무위원장의 형)을 직접 수행해 주목받았다. 올해 초 발간된 그의 책 ‘3층 서기실의 암호’에는 현재 북미 대화를 이끄는 리용호 외무상을 비롯한 리수용, 김영철 등 핵심 인물들이 등장한다. 며칠 전 미국에서 국빈급 경호 대우를 받은 리용호는 과거 주영대사로 태영호와 함께 일했다.

태영호가 대구에서 토론할 그 시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6·12 북미 정상회담을 한 직후였다. 태영호는 결론부터 내렸다. 김정은의 비핵화는 약간의 정책 변경에 불과하다. 비핵화로 포장된 전술로 미국의 신뢰를 얻어 UN 제재를 풀고 3대세습 체제를 보장받는 것이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궁극적으로는 인도, 파키스탄 같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최근 다른 강연에서 그는 북한의 지연 전술로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은 결코 임기내 북한 핵무기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 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 그의 편지가 아름답다’고 했다. UN연설에서는 김 위원장의 용기에 감사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북한이 남한처럼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미끼를 던지면서도 미래의 결말(비핵화)을 누가 알 수 있겠느냐며 결론을 여전히 유보한다.

태영호와 트럼프는 같은 수준의 지도자는 물론 아니다. 한쪽은 사회주의 주체사상에 충실했던 외교관이고, 한쪽은 부동산 재벌로 비즈니스 협상에서 커온 인물이다. 북한 비핵화를 바라보는 방향과 농도도 크게 다르다.

북미 간 2차 정상회담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모양이다. 어느 쪽으로 결말날지는 후일 역사만이 알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상황을 놓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일 게다. 박재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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