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장학사업 ‘어제와 오늘’ (상)] 회연 장학금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구글플러스
  • 기사내보내기
  • 박종문기자 손동욱기자
  • 2018-10-11
  •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1978년 지방신문 유일 장학사업…장관·교수·기업대표 배출 ‘요람’

1979년 2월27일 영남일보 회의실에서 열린 1979학년도 회연장학증서 수여식에서 이재필 영남일보 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영남일보 DB·이천효 교수 제공)
영남일보 1978학년도 회연장학금 장학생 대표인 이천효 교수의 당시 장학증서.(영남일보 DB·이천효 교수 제공)
배성로 영남일보 회장(오른쪽)이 회연장학금 1회 수혜자인 이천효 전 동부산대 교수와 악수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영남일보 1978학년도 회연장학생 선발을 알리는 사고. (영남일보 DB·이천효 교수 제공)
성적 우수한 대학생 12명 선발
1년간 등록금 전액 장학금 지급
언론통폐합 조치로 3년만에 중단
‘희망인재 프로젝트’로 이어가


영남일보 창간 73주년 기념일(11일)을 꼭 일주일 앞둔 지난 4일 이천효 전 동부산대 교수(62)가 영남일보를 찾았다. 이 교수는 그동안 고이 간직해 둔 영남일보 신문 스크랩 등 몇몇 자료를 가지고 왔다. 영남일보가 인재 육성을 위해 1978년 지방신문으로는 유일하게 시행한 장학사업(회연장학금)과 당시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 교수는 1기 회연장학금의 장학생 대표였다. 그는 “1978년 아버지는 대구 대명여중 교사였다. 어느 날 영남일보를 보고는 ‘영남일보에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고 하니 한 번 지원해 보라’고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회연장학금 탄생 배경

회연(晦淵)은 1956년 7월6일부터 1972년 1월19일 별세하기까지 16년간 영남일보 사장을 지낸 고(故) 이순희 사장의 호다. 1908년 대구에서 출생한 이순희 사장은 일본 동지사(同志社)고등상업학교를 나왔으며, 귀국 후엔 대구 북구 무태동에서 사립간이공민학교를 설립하는 등 일찍부터 민족계몽운동에 눈을 떴다. 학업을 마친 후 향리에서 첫 사업으로 농촌청년의 계몽교육을 시작한 것은 일제 치하 민족의 앞날을 걱정한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1977년 5월20일 영남일보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사장에 선임된 이재필씨(이순희 사장의 장남)는 부친의 이 같은 유지를 받들어 회연장학회를 설립하고, 취임 이듬해인 1978년 학업성적이 우수한 경북도내 대학생 12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당초 10명에게 지급할 계획이었으나 심사 후에는 경북대 5명, 영남대 3명, 계명대 2명, 한국사회산업대(현 대구대) 1명,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1명 등 모두 12명에게 1년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종간으로 중단된 장학사업

회연장학금은 1980년까지 3년동안 해마다 12명의 대학생에게 1년치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이천효 교수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회연장학금은 혜택이 상당히 컸습니다. 1년 등록금 전액이니까 적잖은 금액입니다. 당시 대외 장학금이 흔치 않았는 데다 다른 곳도 아닌 언론사인 영남일보에서 주는 장학금이니 더 특별한 감정을 가졌습니다. 저는 회연장학금 수상이 계기가 돼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에서 늘 제가 가진 능력을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방 언론사로서 유일무이하게 시행한 회연장학금 지급은 불과 3년만에 중단됐다.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영남일보가 1980년 11월25일자 지령 1만1천499호로 종간됐기 때문이다. 광복을 맞은 1945년 10월11일 한강 이남에서 가장 먼저 창간한 영남일보는 이후 매일신문에 흡수통합되는 굴욕을 맞는다. 이로 인해 회연장학금 지급이 중단된 것은 물론 당시 회연장학금 수혜자들이 그동안 사회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볼 여력조차 없었다. 최근 영남일보에서 1·2회 장학생 명단을 토대로 일부 장학생을 추적해 본 결과 장관, 중앙부처 고위공직자, 공기업체 간부, 대학교수, 교사, 기업체 대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망인재 프로젝트로 계승

종간됐던 영남일보가 1988년 복간됐지만 회연장학사업은 오랜 기간 잊혔다. 복간 후 경영난과 IMF 외환위기 등으로 사세(社勢)가 크게 위축되면서 과거 영남일보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계승해 나갈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2년 1월12일 전기를 맞는다. 당시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영남일보를 방문한 것.

이 장관은 업무차 대구에 오면서 영남일보를 꼭 방문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영남일보 회연장학금 2회 수혜자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장관은 당시 손인락 사장을 만나 대학시절 어려울 때 장학금을 준 영남일보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영남일보에 직접 밝히고 싶었다고 했다. 이 장관은 최근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1980년) 장학금 수여식에서 이재필 사장이 ‘나라와 사회는 항상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국 이를 극복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회연 장학생들이 앞으로 시대적·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사회 기여 방법을 고심하고 있던 차에 이 장관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배성로 영남일보 회장은 인재육성사업(장학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형편이 어려운 중·고생을 지원하는 ‘희망인재 프로젝트’에 착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4일 이천효 교수를 만난 배성로 회장은 “영남일보 뿌리를 찾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 만남이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면서 “기성세대가 어려운 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그 학생이 성장해서 또 후배에게 도움을 주는 장학사업이 면면히 이어지도록 같이 노력해 가자”고 말했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