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혈된 고양이·세포 무늬 나비 “자연, 아름답지만 공포스러워”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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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6   |  발행일 2018-10-16 제24면   |  수정 2018-10-16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展
이미주 작가 ‘비밀의 화원’
그림 오려 세워 ‘입체회화’
20181016
이미주 작

막힘이 없다.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조근조근한 말씨가 인상적이다. 작업에 대한 태도를 짐작하게 한다. 확실한 개념을 갖고 접근했다는 느낌을 준다. 대구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 아트스타’에 선정된 이미주 작가가 ‘비밀의 화원’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의 화원은 언뜻 화려해 보인다. 형형색색의 그림들이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를 꽉 채우고 있다. 그림을 오려 세우거나 매달았다. 설치작업이지만, ‘입체회화’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이다. 피곤한 듯 충혈된 두 눈을 가진 고양이, 잡초, 망아지, 소녀의 얼굴, 세포 무늬의 나비와 나무, 돌, 지렁이 등이 보인다.

일상의 소재를 화려하게 표현한 것은 의도된 장치다. 작가는 자연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자연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공포스럽기도 하다”고 했다.

작업의 출발은 지난해 울산 외곽지역의 레지던시 공간에 참여하면서다. 작가는 풀의 색깔이 바뀌고, 낮과 밤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도시 생활에 익숙했던 작가로선 생소한 경험이었다.

작가는 “그동안 자연의 변화를 수치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실제 자연에서 생활해보니 좋으면서도 불편했다. 무조건 고요하고 평화롭지만은 않았다”고 밝혔다. 작가는 매일 보는 것을 작품으로 연결했다. 심오한 주제보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일상의 공유는 스페인 유학 시절부터 시작됐다. 홍익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작가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다 2008년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훌쩍 유학을 떠났다. ‘오래 가는 가치’를 만들고 싶어 바르셀로나의 아트 스쿨에서 그림과 도자기를 배웠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껍데기가 아닌 진짜 자신을 드러내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그림일기’를 그렸다. 작가의 그림일기를 본 친구들이 전시를 권유했고, 2011년 바르셀로나에서 첫 전시회를 가졌다. 한국에서도 아트페어에 참가하고 전시를 열었다. 2015년 귀국한 작가는 전국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작가는 “관객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작품의 의미가 좀 더 풍부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비밀의 화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28일까지. (053)661-3500

조진범기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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