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립유치원도 ‘비리 백화점’, 원장 개인 건보료까지 대납…회계 비리 현재진행형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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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7 07:18  |  수정 2018-10-17 07:19  |  발행일 2018-10-17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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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교육청이 공개한 지역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 보고서. 국산 대형 SUV(모하비) 차량 구입 등 지적사항 내역과 회수금액이 적혀 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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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박춘란 차관 주재로 전국 시·도교육청 감사관 회의가 열리고 있다. 교육부는 이날 유치원 감사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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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의 만연한 비리가 드러나며 학부모 분노가 들끓고 있다. 대구지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대구의 사립유치원들도 공금으로 원장의 명품가방은 물론 고가의 개인 차량, 미술품, 콘도회원권을 구입한 것으로 감사 결과 드러나 ‘비리 종합백화점’이란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유치원 예산 ‘흥청망청’

최근 공개된 2013~2017년 17개 시·도교육청 유치원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구시교육청은 2016년부터 올 7월 말까지 전체 사립유치원 255곳 가운데 119곳을 감사했다. 이 중 부적정한 회계 집행으로 징수 조치를 받은 건수는 86건에 달했다.

적발 내용을 살펴보면 A유치원은 2013년 6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유치원 예산으로 콘도회원권과 차량 구입, 유치원 설립자 차량 기름값, 개인 식자재 구입에 8천117만원을 사용했다. 같은 기간 B유치원은 고액의 미술품 구입비(2건)로 900만원을 썼고, C유치원은 설립자의 명품가방 구입은 물론 교회 헌금, 원장 개인 소득세 납부에도 유치원 예산을 지출했다.

2016·2017년 감사에서는 D유치원이 원장 개인 차량 구입을 위한 리스 대금 3천410여만원을 유치원 돈으로 지출했다가 적발됐다. E유치원은 2011년부터 2017년 7월까지 유치원에서 근무하지 않고 모 어린이집 원장으로 재직한 설립자에게 보수로 4천44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유치원 원장 역시 겸직 허가를 받지 않았고, 모 어린이집 조리사로 근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원장 개인의 식사비로 몇 년 동안 890만원을 집행한 유치원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유치원 통학버스 판매대금(500만원)을 유치원 회계에 편입하지 않거나 인근 초등학교에 장학금(437만원)으로 지급한 곳도 있었다.

◆원장 배우자에게 월급도

퇴직 교사에 출산장려금(90만원)을 지급하거나 원장 개인 땅을 유치원 체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시설관리비로 4천8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원장의 업무추진비로 매월 100만원씩 부정 지급해 4천100만원이 징수 조치된 유치원도 있었으며, 교사들의 연금보험료를 유치원 회계에서 지출한 곳도 적발됐다.


市교육청 255곳 중 119곳 감사
부적정 공금집행 86건 징수조치

학부모 “이참에 전수조사 해야”
비리 유치원 실명 공개 요구도

교육부, 전국 감사관 긴급회의



원장의 가족 역시 비리 행위의 수혜자였다. 원장 배우자에게 월급을 지급(100만원)하거나 원장 자녀의 교육비를 감면하는 등 다양한 부정 지출 사례가 적발됐다.

비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대구시교육청이 지난 15일 공개한 8·9월 유치원 종합감사 결과 보고에 따르면 F사립유치원은 2015년부터 올 2월까지 원장과 행정실장의 건강보험 및 사학연금 개인부담금 2천630여만원을 유치원 회계에서 납부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G·H유치원은 퇴직한 교사의 축의금, 교통위반 범칙금, 원장 개인이 소유한 토지의 토지재산세를 유치원 회계로 납부하거나 교원이 아닌 행정실장에게 교원연구비를 1년 넘게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모 “비리 유치원 공개”

비리가 봇물처럼 터지면서 사립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학부모들은 정부로부터 누리과정 지원금으로 연간 1조8천억원을 지원받는 사립유치원에 대한 회계 감독을 하지 않은 것은 교육부의 직무유기라며 비난하고 있다.

학부모 이모씨(39·대구)는 “사립유치원에서 공립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돈을 더 주고 아이를 보내고 있지만, 이름난 사립도 비리가 쏟아지는 걸 보니 신뢰감이 무너지는 것 같다”면서 “이참에 모든 유치원을 조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립유치원에 대한 고발이 계속되고 있다. ‘비리유치원 원장 자격을 박탈하라’ ‘사립 없애고 전체 국공립으로 전환하자’는 등의 국민청원이 이어지고 있다.

비리 유치원에 대한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지만 실명을 밝히지 않고 있다. 네살배기 딸을 키운다는 박모씨(41·대구)는 “유치원 이름은 물론 대략적인 주소지도 알려주지 않으니 답답하다. 교육청은 비리 유치원인 줄도 모르고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 입장을 생각해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당국, 대책 마련 나서

교육부와 전국 시·도 교육청은 유치원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교육부는 오는 18일 이런 내용을 확정한 뒤 이르면 다음 주 회계·인사규정 정비 등을 포괄하는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박춘란 차관 주재로 전국 시·도 교육청 감사관·유아교육 담당자 긴급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이날 회의는 최근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사회적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이전에는 사립유치원 문제와 관련해 전국 감사관과 유아교육 담당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었다.

유치원에 대한 1차적인 관리·감독 권한은 시·도 교육감에게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의 대처 또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실명공개 요구가 큰 만큼 감사 결과를 국민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고, 감사에 대한 전국적인 가이드라인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시·도교육청은 18일 열릴 전국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감사 결과 실명공개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한편, 교육부가 전희경 의원(자유한국당)에게 제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현재 전국 유치원생 4명 중 3명(74.5%)이 사립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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