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우리는 노동자 집단이 아니었다

  • 김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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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8   |  발행일 2018-10-18 제30면   |  수정 2018-10-18
여고시절 대구전국체전
카드섹션에 참가한 경험
환호하는 사람들 보면서
심장 따끔거리는 공포감
그때 느꼈던 공포스러움
지금도 지켜봐야 하다니…
[여성칼럼] 우리는 노동자 집단이 아니었다
김계희 변호사

조지 오웰의 소설로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1984’. 그해 10월 대구에서 고1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카드섹션에 참여해야 했다. 직할시 승격 이후 처음 치르는 전국체전이 대구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카드섹션과 매스게임이 학교별로 배정되었는데, 평준화시대라고는 하지만 하나를 고르라면 다들 매스게임을 택할 것이기에 카드섹션이 주어진 학교는 ‘의문의 일패’에 애써 당혹감을 감추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단동원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매스게임이 운동장에서 몸을 움직이는 일인 반면, 카드섹션은 한창 몸이 근질거리는 그 또래 아이들에게 수업시간보다 더 긴 부동자세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고행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카드섹션이 배정된 학교에는 기수단이 당근으로 제공되었다. 그러나 둘째 줄에 앉기도 어려웠던 내게 기수단은 언감생심이었기에 카드섹션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먼저 우리에게는 거대한 매트릭스를 구성하는, 가로행 세로열로 특정되는 순번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A3보다 더 큰, 역시 순번이 매겨진, 수십 장의 두툼한 카드가 배부되었다. 다음으로는 순번이 붙여진 수십 개의 매트릭스가 도안으로 제시되었는데, 거기에는 각 원소가 그 도안에서 들어야 할 카드번호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예를 들어 1열 9행의 원소는 8번 도안의 경우 4번 카드를 들어야 한다. 그러면 1열 9행인 원소는 몇 번 도안에, 자신이 몇 번 카드를 드는지를 일일이 확인하여 정리해둔다. 그걸 앞사람 등짝에 붙여두고 지시에 따라 각 도안 번호에 해당하는 순번 카드를 들었다내렸다를 반복한다. 처음엔 체육·특활시간에 연습을 했지만, 체전이 임박해오면서는 방과 후 시간을 따로 더 내야 했고, 전부가 모여 예행연습을 하는 날이면 오후 수업이 통째로 날아가기도 했다. 학교에서 개별적으로 연습할 때에는 휴식이나 이동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었기에 나름 견딜 만했다. 문제는 모두가 경기장스탠드를 채우고 앉았을 때부터였다. 차갑고 딱딱한 시멘트바닥, 아직은 뜨거운 햇볕, 두툼한 카드가방을 앞사람 등과 내 다리 사이 좁은 공간에 두고 나면 정말이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앞사람이 등을 곧추세우고 앉지 않으면 그 공간은 더욱 협소해져 카드를 앞사람 등짝이나 머리에 떨어뜨리는 ‘참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카드섹션은 뭐니 뭐니 해도 빠른 화면전환이 관건이라, 예비신호가 울리면 다음 번 카드를 찾아 겹쳐들고 있다가 본 신호엔 빛의 속도로 모두가 동시에 앞 카드를 떨어뜨려야 했다. 엉뚱한 카드를 들고 있다거나, 앞뒤를 바꾸어 떨어뜨린다거나, 한 박자 늦게 떨어뜨리는 불량원소는 언제나 존재했고, ‘이번에는 완벽하게’ ‘한 번 더’가 되풀이되었다. 그 거대한 매트릭스가 함께 해체를 도모하지 않는 한, 한 원소의 이탈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참을 수 없는 생리현상은 차라리 그 근원을 없애야했다. 그 와중에도 학교 간 경쟁을 부추기며 더 완벽한 카드섹션을 위해 본부에서 ‘한 번 더’를 외쳤을 때였다. 누군가 자신이 들어야 할 번호를 무시하고 빨간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빨간 카드는 무서운 전파력으로 스탠드 전체를 물들이며 불타는 경고음을 울렸다. 그날의 연습은 당황한 본부의 퇴장으로 끝났지만, 임박한 체전을 앞두고 그런 저항이 더 이상 허용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매스게임의 경우도 신체의 자유 면에서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일 뿐 그들 역시 거대 매트릭스의 한 원소로 카드 대신 제 팔다리를 반복해서 움직거려야 했다. 슬라보예 지젝은 매스게임을 원조 파시즘으로 해석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면서 집단 퍼포먼스는 본래 노동자 운동의 한 요소인데, 이를 파시즘이 갖다 쓴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공산주의 매스게임을 보며 파시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건 지배 시스템이 의도적으로 바꿔놓은 순서로 인식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우리는 노동자 집단이 아니었고, 그가 말하는 집단 퍼포먼스로는 우리가 이제껏 보아온 카드섹션도, 매스게임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때 우리의 카드섹션과 매스게임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나는 심장이 따끔거리도록 공포스러웠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공포스러움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참으로 공포스럽다. 김계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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