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칠레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 (San pedro de Atacama)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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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9   |  발행일 2018-10-19 제37면   |  수정 2018-10-19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도시…황토집 거리 속 쏟아지는 별빛에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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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페드로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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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페드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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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카마 사막 달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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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시장.

3일간의 꿈같은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 끝에 다다른 곳은 볼리비아 최남단 칠레와의 국경이었다. 해발 4천m가 넘는 볼리비아 알티플라노 고원에서 국경을 넘었다. 이곳의 볼리비아 출입국사무소는 간이휴게소 같았다. 작고 까무잡잡한 원주민 직원이 사람 좋은 미소로 도장을 콱 눌러준다. 국경을 넘었더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단 도로가 너무 좋았다. 사흘 동안 온갖 오프로드를 경험하였다. 그래서일까? 아스팔트 위에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갑자기 문명 세계에 발을 디딘 것처럼 낯설고 어색하다. 거기에다 두 시간 가까이 내려가기만 한다. 200m 가까이 내려왔다는 말이 실감난 것은 확연히 달라진 온도 때문이었다. 그렇게 쌀쌀했던 날씨가 후텁지근해졌다. 그렇게 해서 만난 곳이 칠레의 첫 도시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이하 산페드로)였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도민준이 “내가 지구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야. 일조량 높고 건조하고 하늘도 맑아서 밤이 되면 사막 위로 별이 쏟아진다는 기분이 들거든”이라고 했던 그곳, 바로 아타카마 사막이 있는 도시다.

해발 2470m 인구 2800여명 소도시
인디언 전통 주거 나지막한 황토집
아르마스광장 소박한 산페드로 성당
주민 대부분 가톨릭 신자로 이끌어
제법 큰 상설시장과 정겨운 사람들
달·화성에 온 듯한 ‘달의계곡’사막
곳곳 눈처럼 하얗게 덮인 소금결정체
흙이 빚어낸 형상‘세 명의 마리아 상’


해발 고도 2천470m에 위치한 이 도시는 2천800여 명의 인구를 가진 소도시다. 아타카마 사막 가운데의 오아시스 도시지만 안데스 산지에서 흘러 내려오는 작은 강물 덕분에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잉카시대 이전 아타카메뇨족이 처음 정착했다고 전해지는데, 칠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꼽힌다. 행정구역으로는 안토파가스타주에 속하며, 지리적으로는 안데스 산지와 태평양 사이의 교통 요지에 있다. 나처럼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내려와 칠레로 들어오거나 서쪽 태평양 연안에서 우유니 등 동쪽의 안데스 고원으로 올라갈 때 반드시 거치는 중간 기착지다. 이곳이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것은 단지 중간 기착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도시 자체가 독특한 매력이 있을 뿐 아니라 주변에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개울가에 자리 잡은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우유니 사막에서의 3일 동안 거의 씻지 못했으므로 샤워를 하고 밀린 빨래도 하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어둠이 깔릴 무렵 시장기를 지우려 거리로 나섰다. 단층의 흙집이 정겹다. 시야에 잡히는 먼 산과 푸른 하늘 때문에 마음이 절로 푸근해졌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집들은 식당이나 호스텔 아니면 여행사라고 느낄 정도로 관광객을 위한 것들이었다. 한 곳을 골라 모처럼 문명인답게 저녁을 먹고 가로등이 빛을 낸 이후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태양 행성의 빛이 사라진 하늘 위로 새로운 빛들이 점을 찍는다. 어릴 적 이른 저녁을 먹고 대청마루에 누웠던 어느 여름밤이 떠올랐다. 대숲 바람이 오가던 시골 외가 마당에 내려앉았던 그 별빛이 여기로 찾아왔다. 이대로 들어가서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마실 다니듯이 한참을 어슬렁거렸다.

다음날 아침 본격적인 도시 구경에 나섰다. 황토 벽돌 어도비로 지은 집들은 미국 뉴멕시코주의 산타페 마을을 닮았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전통 주거양식인 나지막한 황토집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곳이었다. 깔끔하고 정갈한 가로와 대부분 예술가들의 작업실이나 갤러리, 박물관이었던 황토집들은 나를 여행자로 만들며 관조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 도시는 나를 주인으로 만드는 느슨함이 있었다. 먼지 날리는 보도, 자꾸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작은 창, 투어 상품 선전이 덕지덕지 붙은 여행사, 젊은 배낭여행객들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오는 허름한 호스텔, 영어 메뉴판을 내건 레스토랑, 또 그사이를 어슬렁거리는 동네 개들까지 나를 분리시키는 생경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싸지 않은 물가가 한 번씩 움찔하게 만들었지만 그것도 물가가 워낙 쌌던 볼리비아와의 상대적 감각 때문일 것이다.

이 도시의 중심도 아르마스 광장이다. 광장이라고 해봤자 큰 마당 정도였지만 노천카페도 있고, 무엇보다 이 마을의 랜드마크 산페드로 성당이 있다. 단층의 황토집이 대부분인 이 도시에 3층 높이는 족히 되니 십자가까지 합치면 제법 우뚝하다. 오래된 후추나무에 둘러싸인 이 성당은 그래도 이제껏 보아왔던 성당들에 비하면 참으로 소박하다. 이 성당은 1774년에 지어진 칠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가운데 하나다. 돌과 어도비 벽돌이 주재료인 이 성당의 가장 인상적인 건축 자재는 카르돈 선인장이다. 10m 높이까지 자라는 선인장은 원주민들의 주요 건축 재료이며, 못을 사용하지 않고 가죽 띠로 고정한다. 이 성당의 정문 문짝과 내부 천장은 이 선인장으로 엮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흔적이긴 하지만 흙벽돌의 온화한 질감이 정복자 종교의 위압감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원주민들을 비롯한 마을 주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은 이러한 소박하고 친근한 성당도 한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광장 인근의 상설시장도 도시 규모에 비해 제법 컸다. 여행지마다 유일하게 수집하는 마그네틱 기념품을 샀다. 시장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찬찬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한 시간 남짓이면 도시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거리를 기웃거리는 사람 대부분은 나 같은 여행자다. 성당에서 만난 사람을 시장에서 만나고 시장에서 스쳤던 사람을 길거리에서 또 스친다. 동네 같은 느낌이다.

오후에는 아타카마 사막의 ‘달의 계곡’ 투어를 갔다. 일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오후 4시에 출발했다. 아타카마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메마른 사막으로 알려져 있다. 아타카마 사막은 약 2천만년 동안 건조 상태로 유지되어 왔다. 남북으로 약 1천㎞, 동서로는 약 210㎞의 엄청난 크기다. 이 사막에는 살아있는 것도 살아남은 것도 없지만 죽은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몇 천 년 전에 죽은 동식물이 수분만 증발된 채 미라가 되어 남아 있다니 말이다. 바위, 깊은 모래 언덕, 운석으로 형성된 구멍들, 오래전에 말라붙은 고대의 호수 등으로 이뤄진 이곳의 풍경은 종종 달이나 화성과 비교된다. 그래서 나사(NASA)의 우주탐사 시험장이 이곳에 있기도 하다.

‘달의 계곡(Valle de Luna)’은 아타카마 사막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으로 산페드로 서쪽 5㎞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달의 계곡은 볼리비아 라파스 근교에도 있다. 그곳의 지형도 진흙으로 이뤄진 기괴한 흙봉우리들이 올망졸망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이름을 가진 이곳은 규모부터 남달랐다. 모래 언덕을 비롯해 진흙으로 이뤄진 여러 형태의 진기한 지형들이 라파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푸른색 하나 없는 칙칙한 잿빛과 기괴한 흙더미 지형들이 눈 닿는 곳마다 펼쳐진다. 왜 이곳이 달이나 화성의 지형과 닮았다고 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넓은 곳에 이렇게 오랫동안 무생명의 세계를 지켜왔다니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군데군데 눈처럼 하얗게 덮인 것은 소금 결정체였다. 마치 조물주가 이곳을 썩지 않도록 일부러 흩뿌려 놓은 것 같다. 아무렇게 뚫려 있는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소금동굴 캐넌(Cuevas de sal Canon)이다. 굽혔다 폈다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다 보니 다시 눈부신 하늘이 보였다. 바위 아래 앉아 가만히 귀 기울이니 미세하게 갈라지는 소리도 들렸다. 마른 사막 기후와 풍화작용으로 인해서 소금결정이 깨지는 소리란다.

흙이 빚어낸 형상 가운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세 명의 마리아상’이다. 멀리서 보면 서서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올리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실루엣을 닮았다. 그런데 두 명뿐이다. 한 명은 관광객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고 한다. 지형의 성격상 나머지도 머지않아 침식되어 사라지거나 사람들에 의해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진흙 산의 규모가 크므로 세월이 지나면 또 다른 형상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붉은 사암이 스크린처럼 둥글게 펼쳐진 ‘엠피시어터(amphitheater)’는 이름처럼 원형극장 같았다. 누가 일부러 다듬은 듯한 매끈한 곡선이 온통 울퉁불퉁한 흙산과 사구가 늘어선 이곳에 인공적인 시설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흙빛이 짙어가며 점점 햇빛이 사위어갔다.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는 분지를 통과해 일몰을 보기 위해 코요테 바위를 올랐다. 넓은 절벽 위에 올라서니 바람이 거셌다. 저 기기묘묘한 형상들을 빚어낸 안데스의 바람이었다. 절벽 아래 평원은 만년설이 덮인 아득한 화산까지 거칠 것 없이 펼쳐졌다. 그곳에 내려앉은 태양 빛은 더 이상 뜨거울 것이 없다는 듯 소리 없이 스미며 고원을 물들인다. 장관이다. 이 광경에 말을 보태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하느님은 시인이어서 / 말과 뜻 못잖게 / 침묵과 여백을 소중히 하는 시인이어서 / 이렇듯 텅 빈 사막을 펼쳐놓으셨네 / 단호하게 물길 끊어 / 더 심지 않고 키우지 않고 / 태초에 햇볕과 바람에만 맡기셨네”(조향미의 ‘사막 시집’)라는 시처럼 이 사막은 언어가 도달할 수 없는 시집 같았다. 별이 박히는 밤하늘을 보며 숙소로 돌아왔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색하면서. 지금은 모두가 침묵해야 할 때였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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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계곡 코요테 바위 위에서 본 아타카마 사막. 눈처럼 하얗게 쌓인 것은 소금결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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