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동무 위한 속깊은 거짓말

  • 최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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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22 08:21  |  수정 2018-10-22 08:21  |  발행일 2018-10-22 제18면
“모두위한 배려심에 거짓말 선택한 학생이 생각납니다”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동무 위한 속깊은 거짓말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지금으로부터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입니다. 내가 처음 발령을 받아간 학교는 산골 아주 작은 학교였습니다. 젊은 교사라고 학교 배구 팀을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군 체육대회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 남녀배구선수들은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동장 배구코트에서 최종 평가전을 했습니다. 군 체육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낼지 어떨지 실력을 보여주는 경기지요. 경기는 남자선수 팀과 여자선수 팀이 맞붙었습니다. 그런데 여자선수 팀은 평소 연습한 대로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습니다. 문제는 남자선수 팀이었습니다. 자꾸만 실수를 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공격을 잘하는 꺽다리 창주가 계속 실수만 해댔습니다. 공격을 했다하면 공을 네트에 걸치게 치거나 금 밖으로 쳐 내기 일쑤였습니다. 공격에서 자꾸만 실수를 하니 다른 선수들도 사기가 꺾여서 결국은 여자선수들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평소에는 한 번도 없었던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겁니다.

문제는 그 뒷날 터졌습니다. 창주가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어제 평가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남자배구선수 팀 주장인 진구가 창주를 때린 모양입니다. 여자선수들에게 져서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에게 창피를 당하게 된 게 모두 창주 실수 때문이었다는 것이지요. 진구가 주먹으로 창주 배를 때렸는데 억 소리를 내면서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았다고 합니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려 일어난 창주는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하면서 갔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때렸지만 넘어졌다고 거짓말
비겁함이 아닌 부모·친구 위한 행동
양보, 책 속이 아닌 삶에서 실천해야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얼마나 아팠으면 대회를 며칠 남기지 않은 중요한 시기라는 걸 알고 있는 창주가 결석까지 했을까 싶었습니다. 수업을 다 마친 오후에 배구 연습은 다른 선생님에게 부탁을 해놓고 창주 집을 찾아갔습니다. 창주네 집은 학교에서 6㎞도 넘는 깊은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창주네 집만 달랑 있는 외딴 집이었습니다. 창주네 부모님은 산자락을 일구어 옥수수나 감자 농사를 짓고 사는 가난한 화전민이었습니다. 창주 부모님을 만나서 무슨 말부터 할까? 사과를 받아들이기나 할까? 혹시나 뱃속에 큰 탈이 난 건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면서 창주네 집을 찾아갔습니다.

“아이고, 선상님이 우리 창주 놈 때문에 이 멀리까지 오시니껴? 우리 창주 놈은 덩치는 저리 커도 철딱서니도 없고 덩둘은 아이씨더. 멀쩡한 길에서 엎어지기는 왜 엎어져서 이래 선상님을 걱정시키니껴 글쎄.” 창주 부모님은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몸짓을 하면서 방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예? 엎어졌다고요?” “예, 엎어져서 뾰족한 돌삐에 배를 박았다네요. 그게 머 그리 아프다고 핵교까지 못 간다고 저리 난리를 치니더. 저놈이 엄살도 아주 많니더. 누워서도 대회 얼매 남지 않았다고 걱정은 또 저래 늘어졌니더. 아침 나절 내내 누워 있다가 이제 쪼금 살 만한지 일어났니더. 내일은 핵교 갈 수 있니더.” “예, 그래요?”

창주는 진구에게 맞은 것을 숨기고 스스로 넘어졌다고 한 겁니다. 진구에게 맞았다는 걸 부모님이 알면 부모님이 더 속상해할 것이고, 또 이래저래 시끄러워질 거라는 걸 5학년 창주가 생각한 겁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창주가 거짓말을 했다고, 넘어진 게 아니라 동무에게 맞아서 아픈 거라고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거짓말을 한 창주가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창주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옆에 다소곳이 앉아서 손장난만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내 눈과 마주치면 어색한 표정으로 그냥 씩 웃기만 했습니다. 부모님에게 사실을 숨겨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는 듯 했습니다.

“선상님, 이게 이래봬도 맛은 있니더. 머리도 아프지 않니더. 한 잔 더 하시오. 달걀도 드시고요.” 창주 부모님은 삶은 달걀과 옥수수로 담근 술을 내놓고 자꾸 권했습니다. 옥수수 술 몇 잔 하고 학교로 오면서 창주의 거짓말을 두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창주가 한 거짓말은 칭찬 받을 일인가? 부모님과 진구를 위한 배려였나? 아니면 잘못을 고치려는 마음을 내지도 못한 비겁한 행동이었나? 칭찬 받을 일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속 깊은 배려심의 본보기로 삼을 것인가? 진구가 한 짓은 분명 야단 맞아야 할 일이다. 아무리 배구 팀의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넘겨서는 안 될 폭력적인 행동이다. 어떻게 할까? 진구를 불러서 나무라고 반성하도록 할까?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습니다. 결국 그 일은 우리 배구 팀 안 일로만 끝냈습니다. 진구는 창주에게 사과를 하고 고맙다는 말도 했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투어 어른들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일이 있을 때마다 창주의 이 거짓말이 생각났습니다. 몇 년 전에 한 아이가 교실에서 동무 발에 걸려 넘어져서 이마를 다친 일이 있는데 양쪽이 한 치의 양보도 없어 결국은 부모님 싸움이 되고 말았습니다. 끝내는 학교폭력위원회까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창주의 그 거짓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양보와 배려는 그냥 도덕책이나 표어에만 나오는 말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했습니다. 창주는 결코 비겁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속 깊은 아이였습니다.

윤태규 (전 대구동평초등 교장·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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