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시유 어게인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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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22   |  발행일 2018-10-22 제30면   |  수정 2018-10-22
[하프타임] 시유 어게인
노진실 정치부 기자

지난 11일 영남일보 창간 기념 특집호에 마종기 시인의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를 보고 한참을 안타까워 했다. 기자가 오랫동안 마종기 시인의 시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시인이 미국에 거주하기 때문에 실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얼마 전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마종기 시인의 시 중 몇 개는 외울 정도로 좋아한다. ‘시’와 ‘기사’는 어쩌면 완전히 다른 영역이지만, 그의 시는 기자의 기사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0여차례 시리즈로 게재한 지방분권·균형발전 관련 기사들은 그 내용은 객관성을 추구했지만, 근저에는 마종기 시인의 시 ‘대화’를 읽고 느꼈던 슬픈 감정이 깔려 있었다. 길고 긴 시리즈를 지치지 않고 쓸 수 있게 한 원동력에 그 시가 있었던 셈이다.

시인의 인터뷰를 보면서 “만날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라는 상투적인 말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기자가 “만날 인연이었나 보다”를 외치게 된 일이 생겼다. 그 대상은 경북대와 대구시의회. 우린 다시 만나야 할 인연이었나 보다.

한동안 표절 의혹만 제기됐던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장의 경북대 석사 학위 논문이 최근 표절로 판명난 것이다. 기자가 휴가를 내 잠시 대만에 나가있는 사이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지체할 수 없는 사안이라 판단, 타국에서 기사를 쓰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경북대와 대구시의회는 기자와 도대체 얼마나 질긴 인연이길래, 인연의 끈이 바다까지 건너 이어지느냐 말이다.

경북대와 대구시의회는 예전에도 취재와 기사로 만난 적이 있다. 모두 ‘원칙’을 어겨 비판받는 내용이었다. 2015년 경북대 로스쿨이 경찰관 재학생의 학사관리를 부당하게 처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당시 여러 명의 경찰관이 재직 중에 경북대 로스쿨을 다녔는데, 이들의 출석률 미달에도 불구하고 학점상 특혜를 준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던 것. 법을 집행하는 자와 법을 가르치는 자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대구시의회와는 그 이듬해 대구시립묘지 기사를 통해 만났다. 시립묘지 불법 묘 조성에 대구시의회 의원들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내용이었다. 두 사안 모두 기자가 집중적으로 취재해 기사를 썼다. 그리고 2018년, 경북대와 대구시의회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됐으니 이 정도면 인연 아닌가.

경북대 연구윤리위원회 통보서에는 ‘배지숙 의장이 자신의 표절 및 연구윤리 위반 정도를 인지하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정직하게 인정하지 못했을까. 원칙도, 품위도 모두 무너진 것이다.

억울한가. 세상에 조금씩 안 썩은 곳이 어디 있다고, 본인들만 문제 삼는 것 같은가. 그래서 세상이 잊을 때까지 모른 척 버티고 싶은가.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국립대이고, 시민을 대표하는 대구시의회 의장이다. 그 이름으로 그동안 누린 것들을 생각하시라.

그대들이 원칙과 품위를 지키지 않는다면 우린 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인기 드라마에 나온 꽤 멋진 대사가 이렇게도 쓰인다. 경북대 그리고 대구시의회, See You Again.

노진실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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