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관함식과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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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22   |  발행일 2018-10-22 제30면   |  수정 2018-10-22
러일전쟁 때 대한해협에서
학익진으로 러 함대 물리친
日 도고는 이순신장군 존경
이순신의 ‘帥’자 깃발 시비
日해군은 역사 되돌아보길
[아침을 열며] 관함식과 이순신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지난 11일 열렸던 제주 관함식은 각종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0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 관함식은 2008년 부산에 이어 이번에는 제주 강정 해군기지에서 열렸다. 강정마을회에서는 제주도의 평화 이미지를 훼손한다며 관함식 자체를 반대했다. 외교문제가 된 것은 일본 해군함의 욱일승천기였다. 한국 해군은 참가국들의 군함에 국기만 게양할 것을 요구하면서 욱일승천기 게양을 반대했다. 욱일승천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며 아시아의 피침략국들엔 끔찍한 악몽이므로 이는 당연한 요구다.

결국 일본은 욱일승천기 게양을 고집해 제주 관함식에 불참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한국 일출봉함에 이순신 장군의 조선수군 대장기의 상징인 ‘帥’자 깃발을 건 것을 시비 걸고 나왔다. 욱일승천기는 침략의 상징이고, 이순신의 ‘수’자 기는 침략에 맞선 정당방위의 상징이므로 일본의 시비는 옳지 못하다. 일본 해군의 역사를 보면 일본은 이순신에게 시비를 걸 자격이 없다. 이순신은 극도로 열악한 상황 속에서 23전23승을 거둔 불세출의 영웅이다. 이순신의 활약이 워낙 눈부셨기 때문에 일본은 망연자실, 이순신의 배를 보면 무조건 도망가라고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1905년 노일전쟁 때 러시아의 발틱함대와 일본 해군이 결전을 벌인 곳이 대한해협이다.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유럽·아프리카·동남아를 돌아 8개월의 긴 항해 끝에 대한해협에 도착했다. 발틱함대는 50척, 일본 연합함대는 24척이었다. 일본의 연합함대사령관은 도고 헤이하치로였다. 도고는 젊은 시절 영국 상선학교에 유학을 다녀온 군인으로서 당시 은퇴할 나이였는데도 예상을 깨고 연합함대사령관으로 발탁됐다. 당시 세계 여론은 명성이 자자했던 발틱함대가 약소국 일본에 쉽게 승리할 것으로 보았으나 결과는 뜻밖에도 일본의 완승이었다. 발틱함대는 완전 궤멸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도고는 일약 일본의 영웅이 됐다.

승전 축하연에서 어떤 사람이 도고를 칭찬하면서 넬슨 제독을 능가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군 제독이라고 치켜세우자 도고가 답사에서 이런 요지로 말했다. “나는 넬슨보다 위대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를 역사상 최고의 제독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조선에 이순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장군이라면 나는 하사관 정도에 불과하다.” 실제로 도고는 발틱함대와의 결전에 나서기 직전 진해항에 와서 이순신 장군의 신위 앞에서 제발 러시아와의 전투에 이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절을 한 뒤에 출전했다고 하니 도고가 얼마나 이순신 장군을 존경했는지 알 만하다.

대한해협 전투에서 도고가 편 전략은 함대를 길게 늘어뜨리는 학익진이었다. 학익진은 육전에서는 흔히 쓰는 전법이지만 해전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이 전법은 배의 신속한 이동을 필요로 하고, 그것은 엄청난 훈련을 요하기 때문이다. 역사상 해전에서 학익진으로 승리한 사례로는 이순신과 넬슨이 있었다. 넬슨은 부하들에게 가죽 채찍을 휘두르면서 가혹한 훈련을 했던 반면, 이순신은 부하들을 사랑했던 덕장이었다. 세계 해전사를 깊이 연구했던 도고의 참모 아키야마 사네유키는 이순신에게서 배운 해상 학익진을 폈던 것이다. 전투 초기 일본이 학익진을 펴는 것을 보고 발틱함대에서는 이 전투는 무조건 이길 거라고 자만했다고 하는데 결과는 참패였다.

도고는 평소 말이 적어 ‘침묵의 해군’이란 별명을 갖게 만든 장본인이고, 아키야마 형제를 주인공으로 한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은 일본의 장기 베스트 셀러다. 도고는 과거 군국주의가 한창일 때는 ‘군신’으로 추앙돼 역사 교과서에 실렸으나 지금은 삭제됐다. 이순신의 ‘수’자 기를 시비 거는 일본 해군은 과거 역사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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