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아파트 입주민의 분노

  • 조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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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23   |  발행일 2018-10-23 제30면   |  수정 2018-10-23
[취재수첩] 아파트 입주민의 분노
조규덕기자 <경북부/구미>

지금 구미에선 한 아파트의 도를 넘은 건물 하자로 입주자 및 입주예정자들이 큰 분노에 휩싸였다. 문제의 아파트는 세영종합건설이 옥계동에 짓고 있는 901가구 규모의 ‘세영리첼’이다. ‘많이 짓기보단 단 한 채를 짓더라도 명작을 남긴다는 신념으로 고객과의 약속을 지켜 나가겠다.’ 이런 와중에도 세영건설 인터넷 홈페이지엔 ‘뻔뻔한’ 허언(虛言)이 기재돼 있다. 이 회사 회장의 인사말이다. 주민의 분통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다.

이 아파트를 보면 ‘하자 백화점’이 따로 없을 정도다. 입주예정자들은 “하자가 무더기로 발생했는 데도 건설사가 입주를 강행했다”고 집단 반발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 이 아파트의 하자는 심각한 수준이다. 대피실 방화문 고장·화재감지 시스템 오작동 등 입주민 안전과 직결된 소방시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집안 곳곳에서 물이 새 곰팡이가 피거나 악취가 진동한다. 지하주차장·도서관에도 군데군데 물이 새고 심지어 금이 간 곳도 있다. 또 보도블록 침수·뒤틀림, 마감불량 등 지금까지 접수된 하자는 무려 1만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가 지난 18일 직접 찾아가 확인한 결과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107동 1층에 살고 있는 김모씨(여·30)는 안방 천장에서 구정물이 떨어져 침대 매트리스가 훼손되는 등 이곳에서의 생활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난생 처음 ‘내집 마련’이란 부푼 꿈을 안고 입주를 기다려 온 직장인 A씨도 지금은 절망하고 있다. 특히 임신부였던 B씨는 아파트 하자 문제로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충격을 받아 아이를 유산하는 아픔을 겪었다. B씨는 “입주 전 스프링클러 오작동으로 온 집안이 물바다로 변했다. 시공사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다 뜯어 재시공하고 있었고 이 사실을 숨긴 채 임시사용승인을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또 “준공승인을 받으면 발을 빼버릴 것 같은 건설사, 입주민 안전을 위협하는 아파트, 누구를 위한 임시사용승인이냐”고 반문했다.

이밖에 감리업체가 얼마 전 무더기 하자로 말썽을 빚은 포항 모 아파트 감리업체와 같은 회사라는 점, 건설사가 감리의견서를 생략한 채 구미시에 임시사용 신청을 한 점 등도 의혹의 대상이다.

이번 ‘세영리첼 무더기 하자 사태’를 취재하면서 문득 ‘우리 사회는 아파트 하자에 대해 너무 관대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했다. 세영건설 측은 “신축 아파트라도 어느 정도 하자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남은 기간 입주민의 불편이 없도록 하자를 보수하겠다”고 말했다. 아파트 임시사용을 승인한 구미시 관계자도 “신축 아파트 대부분에 하자가 발생한다. 임시사용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건설사 측에서 지금 하자 보수를 하고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전 재산을 모아 새로 산 집이 물이 새고 방화문이 닫히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누구라도 기쁘진 않을 것이다. 물론 입주가 급한 일부 가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짓지도 않은 집에 무작정 사람을 들이는 건 결코 옳지 않은 일이다.

조규덕기자 <경북부/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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