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영화 감독들이 쓴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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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2   |  발행일 2018-11-02 제43면   |  수정 2018-11-02
스크린 속 아닌 책 속에 풀어낸 감독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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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들이 펴낸 다양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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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에 영화 칼럼 쓰는 일을 4년 넘게 하다 보니 종종 이 어쭙잖은 칼럼을 잘 읽고 있다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난감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들은 영화 만드는 이가 어찌 영화에 관한 글도 곧잘 쓰냐며 묻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감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글 쓰는 감독이 의외로 많다. 당연하다. 우리가 ‘작가’로 칭하는 대부분의 감독들은 자기 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 또 남의 시나리오라도 현장에서 잘도 고친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기 때문에 칼럼이나 영화평, 산문과는 또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글 쓰는 감독은 의외로 많지 않다.

먼저 박찬욱 감독. 그는 스물아홉이던 19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이란 다소 멋을 부린 제목의 영화로 데뷔하나 흥행에 실패하면서 오랫동안 연출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지금은 폐간된 ‘스크린’ ‘비디오무비’ ‘TV저널’ 같은 잡지에 영화평을 썼다. 1994년 4월에 나온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비디오드롬’(삼호미디어)은 그때 박 감독이 쓴 글들을 개고해 묶은 첫 영화분석집이다. 이 책은 절판되었다가 박 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로 기사회생해 이른바 ‘복수 3부작’을 연출하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감독이 되자 여러 헌책방에서 수소문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급기야 어느 중고서적 사이트에서 십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2005년 12월에 나온 ‘박찬욱의 오마주’(마음산책)는 그 책에 새로 쓴 글들을 더한 개정증보판이다. 책머리에 쓴 박 감독의 섭섭함을 들어보자.

“전에 책을 내자 제법 많은 이들이 와서 잘 읽었다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난 참 알 수가 없는 것이, 왜 그 책은 그이들 수만큼도 안 팔렸냐는 점이다. 그러더니 언젠가부터는 수다한 사람들이 또 와서 이런다. 사 읽고 싶은데 구할 길이 없다고. 당연하지, 절판되었으니. 하도 안 팔려서. 이제 이 개정증보판을 내놓고 한번 지켜보려고 한다. 얼마나 팔리나.”

이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박 감독은 출판사에 “사실 그 책 이후로 쓴 글들이 더 있는데…”라며 역제안을 해 함께 나온 책이 ‘박찬욱의 몽타주’다. 첫 책 이후 여러 매체에 청탁을 받아 쓴 기고문과 인터뷰, 영화 제작기, 딸을 키우면서 겪은 일이나 B급영화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다.

두 책이 모두 호평을 받자 박 감독은 다시 출판사에 “나 말고 글 쓰는 감독이 더 있는데…”라며 두 감독을 추천한다. 바로 김지운 감독과 류승완 감독. 2006년 11월에 나온 ‘김지운의 숏컷’(마음산책) 서문에는 김 감독이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2년 동안 피해 다녔다는 얘기가 나온다. 2008년 9월에 나온 ‘류승완의 본색’(마음산책)에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같은 출판사에서 먼저 책을 낸 박 감독, 김 감독의 책이 너무 재밌게 읽히는 데다 소장가치까지 있어 부담감에 짜증이 났다는 얘기가 적혀있다. 김 감독이야 데뷔 때부터 ‘글 잘 쓰는 감독’으로 워낙 유명했고, 류 감독에 대해선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책(박찬욱의 몽타주)에 쓴 인상기를 참고할 만하다. “역경을 딛고 성공해서도 아니고, 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니다. 물론 성공도 했고 뛰어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늘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진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21세기를 살면서 그러기는 정말 어렵다는 걸 여러분도 다 아시리라 믿는다. 우리는 ‘유쾌’와 ‘진지’를 양자택일 사양인 줄 알고 살아오지 않았나.”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감독
주목받지 못한 시절 쓴 영화분석집
절판 불구, 수소문하는 사람 늘어
새로 쓴 글 추가, 개정증보판 발간

출판사 제안받고 쓴‘김지운의 숏컷’
글 잘쓰는 박찬욱·김지운에 부담
뒤이어 책 낸 류승완 감독 고백글

봉준호 감독 ‘마더 이야기’
스토리보드·시나리오 담아

‘미쓰 홍당무’여성감독 이경미
올 7월 나온 에세이집도 주목



2009년 11월 나온 ‘마더 이야기’(마음산책)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박, 김, 류 감독의 책과는 또 다르다.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부제 아래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마더’의 스토리보드와 시나리오가 들어있다. 봉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괴물’과 ‘설국열차’ 사이에 위치한 ‘마더’는 독특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듯 ‘마더’를 이야기하는 이 책 역시 이미 영화로 먼저 만난 이들에게도 흥미롭게 읽힌다.

이 네 감독의 책들은 모두 독자들의 고른 사랑을 받으며 이후 마음산책이란 출판사에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여러 영화감독을 다룬 책들이 시리즈로 나오게 되는 토대가 된다. 최근에 봉준호 감독이 ‘정서경 3부작’이라 불렀다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의 각본집 역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영화들 속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더 큰 역할과 다채로운 인격을 부여받으며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작품에 여러 겹의 결을 형성한 이 여성 캐릭터들은 박 감독의 영화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었고 이것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 감독이 쓴 책은 없을까. 2018년 7월 나온 ‘잘돼가? 무엇이든’(아르테)은 그런 아쉬움을 덜어준다. ‘미쓰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를 연출한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집이다. 대중들에겐 아직 낯선 이 감독은 배우 이영애가 ‘친절한 금자씨’ 이후 12년 만에 복귀한 단편영화 ‘아랫집’을 연출한 바 있다. 독특한 제목은 이 감독이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으로 만든 동명의 단편영화 제목서 가져왔다. 이 작품으로 이 감독은 제3회 미장센 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박찬욱 감독을 만나 ‘친절한 금자씨’ 스크립터로 활동하며 인연을 맺었다. 더 많은 여성감독이 쓴 책을 보고 싶다 말하려니 그전에 더 많은 여성감독들이 만든 영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울어져도 보통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잖은가.

인구 오천만의 나라에서 천만 영화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데 반해 백만은커녕 십만 권 넘게 팔리는 책을 찾기도 어려운 시절, 스크린이 아닌 텍스트로 살펴보는 감독들의 이야기들은 어떨지 궁금하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이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거장들로 성장해 나가는 이들이 들려주는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절대 놓치지 말라고. 그리하여 각자가 자신만의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을 늦었지만 하나씩 발견해 나가라고.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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