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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쏙쏙 인성쑥쑥] 일은 이치에 합당하게 시작하라(始條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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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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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경남 하동군의 산골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20여 년 전 폐교된 초등학교를 숙박용으로 개조한 곳이었습니다. 방안엔 텔레비전도 없고 이부자리만 있었습니다. 장작을 때어 군불을 넣지는 않았지만, 옛날처럼 뜨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뒹굴뒹굴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두 사람만의 대화가 도란도란 밤늦도록 정겹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녘에 첫닭이 울었습니다. 살며시 시계를 보았더니 6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하루의 처음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를 오랜만에 들어보았습니다. 농·산촌 사람들은 이제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하루의 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정조 때 학자 이덕무는 “화가가 작업을 하기 위하여 옷을 벗고 큰 돌 위에 걸터앉는 것을 시조리(始條理)라 한다. 푸줏간에서 주인이 칼날을 잘 들도록 갈고 다듬어 놓는 것을 종조리(終條理)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모두 마음다짐이고 마음 챙김인 듯합니다.

‘시조리’와 ‘종조리’라는 말은 맹자가 한 말입니다. ‘모든 것을 모아서 크게 이룬다’는 집대성(集大成)은 공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집대성은 음악 연주에 비유하면 쇠북으로 소리를 시작하고, 옥경(옥으로 만든 경쇠)으로 소리를 끝내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쇠북으로 소리를 시작하는 것은 일을 이치에 합당하게 시작하는 것(始條理)이고, 옥경으로 소리를 끝내는 것은 일을 이치에 합당하게 마치는 것(終條理)입니다. 시조리는 지혜로움(智)에 속하고 지혜로움을 비유하면 기교입니다. 그리고 종조리는 성스러움(聖)에 속하고 성스러움을 비유하면 힘입니다. 종조리는 마치 백 보 밖에서 활을 쏘는 것과 같습니다. 목표물인 과녁까지 도달하는 것은 힘이지만 과녁에 명중하는 것은 힘 때문이 아니라 했습니다. 모든 일이 힘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맹자는 공자를 집대성한 성인으로 일컬었습니다. 집대성은 음악에서 관현악의 합주를 완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앞선 성현들이 이룩한 도리를 모아서 자기의 덕을 크게 이루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청장관 이덕무는 일을 이치에 합당하게 시작하는 것과 마치는 것을 화가와 푸줏간 주인으로 비유했습니다. 화가는 지혜로움의 기교가 필요합니다. 푸줏간 주인은 성스러움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덕무가 쓴 글들을 보면 문장이 따스한 온도로 깨우침을 줍니다.

구재봉 아래 산골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골짜기마다 안개가 피어올라 산꼭대기로 흩어져 풍광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숙소 가까운 곳에선 닭들이 ‘꾹꾹’거리며 모이를 쪼고 한가롭습니다. 작가 임어당은 “자연은 사람의 삶 전체다”라고 말했습니다. 소리, 색깔, 모양, 느낌, 감정, 분위기는 모두 자연의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항상 아름답습니다.

드디어 가을 산의 단풍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순자는 “반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리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삶 전체가 조화로우려면 ‘시조리’해야 합니다. 벌써 농부들이 일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박동규 (전 대구 중리초등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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