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車 ‘협력사 수익률 보장’ 상생 나서야”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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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8 07:28  |  수정 2018-11-08 09:19  |  발행일 2018-11-08 제3면
위기의 지역 차부품업계…타개책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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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완성차업계가 실적부진에 허덕이면서 지역 자동차부품업체들도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올 1분기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자동차 1차 협력부품업체 89개사 중 42개사가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대구검단산업단지의 한 자동차부품 제조 공장 모습. (영남일보 DB)

최근 현대자동차의 어닝쇼크(실적 충격)에 이어 계열사들의 실적도 줄줄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파급효과가 큰 자동차 산업이 위기를 맞으면서 부품업체들의 경영난은 더 심각해졌다. 실적부진의 원인이 주로 단기 요인인 탓에 4분기 이후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산업 구조의 뿌리깊은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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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자동차부품업계, 대기업 의존도 높아 줄도산 우려

국내 제조업 생산의 14%가량을 차지하는 자동차산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2010~2011년에는 성장세로 돌아섰다. 이후 2년마다 역성장과 성장세를 반복하는 침체기를 겪었다. 완성차 5개사 중 매출 1위인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2011년 10.3%로 정점을 찍었다. 이듬해까지는 10%대를 유지했지만 2013년 9.5%로 떨어진 뒤 지난해에는 4.7%까지 곤두박질쳤다. 올 1분기와 2분기에도 각각 3%, 3.8%, 3분기 때는 1.2%로 하락했다. 이는 외환위기(4.2%) 때보다 더 낮은 수치다. 기아차와 쌍용차 등 다른 완성차업체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더 큰 문제는 완성차업계의 영업이익률 감소가 완성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들의 위기로 이어져 자동차산업 생태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국내 89개 상장 부품사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전년 동기 대비 2.8%포인트 감소한 0.9%에 그쳤다. 전체 상장 부품사의 47.2%인 42곳은 영업 적자를 냈다.

2·3차 협력업체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500개 자동차 부품 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은 5.1%에서 2.9%로 하락했다. 이 때문에 주로 2·3·4차 협력업체로 구성된 대구 자동차부품업체들도 위기를 겪고 있다.

대구와 인근 경북의 자동차부품산업은 울산과 부산의 완성차산업에 크게 의존한다. 대구경북연구원 자료를 보면 대구는 경남과 울산에 각각 4.8%, 4.5% 정도의 생산을 의존하고 있다. 경북은 울산과 부산 자동차산업에 각각 14.8%, 10.8% 생산 의존 효과를 보였다. 대구의 산업구조는 자체 해결 능력이 없고 외부 의존적이기 때문에 외부적 요소에 민감하다. 지난해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와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자동차 수출 감소는 대구지역의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자동차산업은 대구경제의 주축이다. 자동차산업이 무너지면 대구경제가 흔들릴 정도로 큰 타격을 입는다. 지역 자동차부품업체는 800여개, 1인 이상 사업체까지 포함하면 4천700개가 넘는다. 5만8천명의 생계가 달렸다. 운송·정비·판매·자재 등 전후방 효과까지 감안하면 수십만개의 일자리에 영향을 준다.

◆국내 자동차 부진은 SUV 열풍과 뒤늦은 미래차 투자

국내 자동차산업이 부진한 것은 투쟁적 노사교섭과 주요 시장의 수요 둔화, 미·중 무역 갈등, 신흥국 경제난 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일각에선 완성차의 전략 실패로 해석한다. 전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스포츠 유틸리티차(SUV)가 대세인데, 국내 완성차의 라인업이 승용차에 편중됐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 불황 속에서도 유일하게 잘나가는 차종은 SUV다. 미국·중국 등 전통적으로 SUV가 강한 시장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SUV 열풍이 거세다. 실용성과 더불어 세단 못지않은 승차감과 뛰어난 주행 성능 등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 현대車 작년 영업이익률 4.7%로 추락

부품 납품 협력업체 경영난으로 이어져
올 1분기 상장 부품사 절반 가까이 적자
대구 2∼4차 협력업체는 줄도산에 직면
국내 자동차산업 생태계 근간이 흔들려

■ 불공정 하도급거래 바뀌지 않은 상황

정부의 차부품업계 1조원 규모 보증지원
완성차·핵심계열사 주머니만 채우는 꼴
중소 하도급업체 대기업 의존도 낮추고
해외 완성차 업체와 직거래도 모색해야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토교통부 신차등록 통계정보를 제공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 신차등록 가운데 SUV의 비중이 37%에 이른다. 전년 동기 대비 39.4%나 증가했다. 국내 인기 차종인 세단(43.5%)에는 못 미치지만 SUV의 선호도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뒤늦게 SUV에 힘을 쏟고 있다.

완성차업체들이 기존 사업을 시장변화에 맞춰 혁신하고, 산업의 주기를 살펴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대세로 떠오른 전기차 분야의 선두주자인 테슬라는 그동안 적자·부채에 허덕이다가 올 3분기 때 흑자로 돌아섰다. 테슬라의 올 3분기 판매량은 8만3천500여대로, 전분기 대비 105%가량 늘었고, 원가율은 같은 기간 6.8%포인트(84.5%→77.1%) 낮아졌다. 그동안 전 세계 배터리 업계에서는 테슬라의 흑자 전환 시점을 전기차 대중화의 분기점으로 인식해왔다. 때문에 테슬라의 첫 흑자가 던지는 상징적인 의미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중국의 전기차가 한국보다 훨씬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이유도 재빨리 전기차산업으로 눈을 돌려서다. 국내에선 뒤늦게 전기차·수소차 등 친환경차 개발에 나섰다. 시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부 금융지원보다 완성차와 부품협력업체 상생이 우선

지난달 정부는 위기에 빠진 자동차부품업의 위기 탈출을 돕기 위해 금융지원 방안을 내놨다. 자동차부품업계에 1조원 규모의 보증지원이라는 비상대책을 세운 것. 또 주력산업의 고도화를 위해 최대 10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자금도 투입했다. 주력산업이 흔들리면서 경제 여건을 악화시킨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해선 완성차업체와 부품협력업체들 간 상생관계를 맺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불공정 하도급거래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자동차 부품업체에 거액을 지원하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살리지 못하고 완성차업체와 1차 협력사의 주머니만 채워준다는 논리다.

사실, 국내 자동차산업의 고질적 문제는 완성차업체 주도의 독과점 시장체제하에서 부품 협력업체들이 제대로 맥을 못 추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럴 경우, 완성차업체의 성장세가 유지될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적자를 보게 되면 하도급거래의 말단에 위치한 2차 이하 협력사에 모든 부담이 전가된다. 그동안 현대차 핵심 계열사의 영업이익률은 7~8%에 이르는 반면 2·3차 하도급업체들의 수익률은 1~2%까지 떨어진 게 현실이다. 소수 완성차업체들이 수많은 중소기업으로부터 부품을 납품받아 조립·생산하는 피라미드 구조에서 중소기업들이 적정 마진을 보장받지 못한 채 무더기로 쓰러지는 현 상황을 계속 방치하면 결국 현대·기아차도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대량 리콜과 대립적 노사관계 등도 자동차산업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양적 성장에 치중하다 신기술과 미래차 개발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급변하는 시장 흐름을 놓쳐 위기를 초래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하도급업체들에겐 대기업 의존도를 낮추고 해외 완성차업체와 직접 거래하며 성장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역의 경제계 인사는 “완성차업체의 독과점 구조에서 부품협력업체들이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면 그 결과는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귀결된다”면서 “완성차와 부품협력사 간에 힘과 지혜를 모으는 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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