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진의 정치풍경]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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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8

시사만평가
10년 전 필자가 국회의원일 때의 일입니다. 경기도의 예산 2억원을 지원받아서 북한의 금강산 마을에 연탄아궁이를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그곳의 시범가옥을 직접 시찰한 후 공장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간단한 축사를 했습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인민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하는 것은 통치자의 기본 책무이다. 그렇지 못한 지도자는 자격이 없다.” 저녁때 회식 자리에서 바깥 공기를 마시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데 40대 중반의 한 남자가 따라 나왔습니다. 다짜고짜 “동무, 나한테 찍혔소.” 위압적으로 말을 합니다. “당신이 누군데 겁도 없이 한 나라의 국회의원을 상대로 뭔 소리 하는 거야?” 따졌더니 당황한 그는 자신을 동네 이장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제 발언 때문에 자신이 곤란해졌다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북한은 군사력으로 남한을 미 제국주의에서 보호해 주고 남한은 그 대신 경제를 책임지는 식으로 역할분담을 해야 우리 민족이 잘 살 수 있다. 그러니 남한이 경제를 지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인민을 먹여 살려야 좋은 지도자라며 생색내는 것은 뭘 모르는 것이고 오만한 이야기다.”

지난번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오찬장에서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리선권이 남한의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네까”라고 면박을 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일파만파 파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가 직접 나서서 당시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탐문한 후 “사실이 아니다더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10년 전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실일 개연성이 큽니다. 북한의 논리에 의하면 남한이 경제를 지원하는 것은 고마움이 아니라 당연한 역할 분담입니다. 더군다나 최근에 남한 대통령이 직접 와서 우리민족끼리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공언을 한 마당에 남측의 기업인들이 무심하게 빈 손으로 왔으니 당연한 질책감입니다. 리선권의 발언은 그의 오만한 성격 탓이라기보다는 작금의 남북관계를 반영한 필연적 결과입니다. 북한 쪽이 대남 인식을 확실히 바꾸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 2, 제 3의 리선권이 계속 발생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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