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외지인 수장과 흑묘백묘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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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2   |  발행일 2018-11-12 제30면   |  수정 2018-11-12
[하프타임] 외지인 수장과 흑묘백묘
최수경 경제부 차장

오늘날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토대를 놓은 덩샤오핑. 그는 1979년 미국을 방문한 뒤 ‘흑묘백묘(黑猫白猫)’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이다. 공산주의 국가지만 중국 인민들이 잘살 수 있다면 개혁·개방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DGB금융그룹 내부 상황을 보면 이 말이 자꾸 아른거린다. 청도 출신이지만 이후 주활동 무대가 서울이었던 김태오 회장이 DGB금융그룹 수장이 돼 고향 땅을 밟았지만 지역사회는 그를 ‘외지인’의 틀에 가두고 있다. 김 회장이 전(前) 경영진이 시도하다 좌초될 뻔한 하이투자증권 인수를 마무리지은 뒤 지주사의 은행장 추천권 행사 등을 골자로 한 그룹지배구조 혁신카드를 빼들자 은행 내 일부 구성원과 지역 오피니언리더들은 곧잘 그를 ‘지역사정을 모르는 인물’로 치부했다. 그리곤 내부결속을 더욱 다지는 분위기다. 일면 이해가는 측면도 있다. 향토 은행인 대구은행을 그만큼 애지중지하다보니 외풍으로부터 이를 지켜내겠다는 심리가 발동할 수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전 경영진의 과오로 각종 비리·의혹이 불거져 만신창이가 된 DGB호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김 회장(임기 3년)이 취임한 지 벌써 5개월째다. 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디지털금융, 수도권 및 동남권으로의 공격적 경제영토 확장,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하는 시스템 안착 등 경영혁신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보다 내부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판국이다.

지배구조의 핵심쟁점인 은행장 추천권을 누가 갖는 게 맞는 지를 따지기에 앞서 이 같은 상황이 왜 빚어졌는지에 대한 원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중심엔 그들이 말하는 ‘외지인’ 출신 그룹수장에 대한 견제심리가 도사리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왜 외지인 출신이 회장으로 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반성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것. 일단 외지인을 수장 자리에 앉혔으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조직 발전을 위해 확실히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외지인 수장을 잘 활용하자는 것이다.

금융환경은 급변한다. 실리추구 성향이 짙고 인터넷 뱅킹에 익숙한 젊은 금융소비자들에게 향토 은행에 대한 개념은 확고하지 않다. 실익이 없으면 언제든 타 은행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신한금융지주의 자회사인 신한카드의 당기순이익은 9천138억원이다. 반면 DGB금융그룹의 전체 순이익은 3천22억원이다. 자존심이 상할 만한 대목이다. 신한금융은 대구은행 출신이 주축이 돼 1980년대 초 설립된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51년 역사를 자랑하는 DGB금융이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온 게 아닌지 곱씹어봐야 한다. 향후 지역에만 머물지 말고 수도권·동남권 그리고 해외로 적극 진출해 더 많은 수익을 내야 한다. 자금 조달이 원활해지면 지역민에 대한 대출이자도 낮아지고 지역공헌사업 몫도 더 풍성해질 수 있다. DGB의 대내외적 인지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지역민의 자존감 또한 커진다.

지역민의 사랑이 오늘날 DGB금융 발전의 원천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다. 애향심이 자칫 ‘우리끼리 문화’로 변질되면 오히려 DGB금융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진중히 생각해봐야 한다. 그룹 수장이 일을 하게 하자. 그릇된 경영 판단에 대한 철퇴는 그 후에 내려쳐도 늦지 않다.최수경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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