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일지매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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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2   |  발행일 2018-11-12 제31면   |  수정 2018-11-12

정비석의 역사인물소설 ‘의적 일지매’는 정의로운 한 소년이 약한 자를 돕는 의적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어린이용 소설이다. 이 소설 속의 일지매가 활동하는 배경은 문경이다. 한양 도성의 탐관오리를 징치하고 금강산의 스님을 만나러 가는 곳의 근거지는 모두 문경의 산골마을이다. 문경시는 이 소설 속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뒤편 조령산 계곡에 2005년 7억5천여만원을 들여 ‘의적 일지매 산채’를 만들었다.

이 산채에는 일지매 숙소·주막·대장간·한의원·육고기점·변돌쇠 가옥·망루 등의 시설이 있으며 일지매 부하들의 모습을 한 인형을 곳곳에 세웠다. 또 이곳에서 하룻밤 지내며 체험할 수 있도록 전기패널 등 숙박이 가능한 준비를 했으나 도립공원 구역이라는 제약에 걸려 한 번도 써보지 못했다. 지금은 사극 촬영의 배경으로 가끔 이용되고 있을 뿐 찾는 발길이 거의 끊어졌다.

하지만 안내판에 적힌 내용은 눈여겨 볼 만하다. “의적은 부당하게 재산을 늘린 사람들의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협심 강한 도둑을 뜻한다. 부패한 탐관오리에게 일격을 가하는 일지매와 그 부하들의 모습과 일지매의 활약상을 만들어 당시의 생활상을 간접 체험하도록 이 산채를 만들었다. 일지매는 힘없는 민중의 편에 서서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이는 개인주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불어 함께’ ‘윤리 도덕이 살아있는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고 적혀 있다.

최근 웹하드 카르텔을 기반으로 거액을 끌어모으고 최악의 갑질을 한 것으로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업체 대표처럼 아직 우리 사회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이루고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결혼이나 내 집 장만의 꿈을 포기하는 사태, 부의 양극화 등 현실의 답답함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 일지매 같은 가상의 인물을 떠올리는 것은 나약한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일지매 같은 의적은 현행범으로 붙잡히자마자 철창행이 될 것은 자명하지만 악인을 응징하는 의적에 대한 기다림은 마음뿐이기에 무죄가 아닐까.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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