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서울과 수도권에 지방은 없다

  •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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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4   |  발행일 2018-11-14 제34면   |  수정 2018-11-14
전국단위행사 지방 개최땐
중앙언론 관심받기 어렵고
지방으로 옮겨간 공무원도
마음은 서울시민으로 남아
나쁜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동대구로에서] 서울과 수도권에 지방은 없다

지난달 30일 경주에서 제6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14개 시·도 시장과 도지사가 참석했다. 대통령이 참석한 대형 행사였으며 지방분권에 대한 발표가 있었기에 언론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중앙지와 대구·경북을 비롯한 지방지에는 지방자치박람회에 대한 온도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대구·경북 언론은 행사 사진을 비롯해 다양한 이슈를 1면에 배치했다. 충청도와 전라도, 부산·경남지역 등 다른 지방지들도 지방분권과 지방 재정분권에 대해 심도있게 다루었다.

그러나 중앙지 가운데 지방자치박람회를 1면에 배치한 곳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전하는 사진을 1면에 배치하면서 ‘새만금에 세계 최대 규모 태양광·풍력 단지를 건설’한다는 전북 군산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 관련 사진을 사용했다. 많은 다른 중앙지도 새만금을 주요 기사로 다루었지만, 지방자치박람회와 관련된 지방분권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지면에 작게 현장 스케치 위주로 게재됐다. 생색내기 정도였다.

이날 중앙지와 지방지의 극명한 모습은 정부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무현정부 시절 정부부처 일부를 세종시로 옮기고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했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든 사고방식은 여전히 수도 서울에 남아 있다.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출퇴근을 할지언정 세종시로 옮겨가지는 않겠다는 생각과 행동은, 자신은 물론 아이들까지 지방사람이 아니라 서울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서울 사람이 국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부의 고위 관료이고, 우리나라 경제를 움직이는 대기업의 의사를 결정하는 CEO이고, 세계를 호령하는 한류를 이끌고 있는 문화계의 주요 인사다. 우리나라의 여론을 이끄는 주요 언론의 대표와 간부도 이들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정책을 입안하고 기업을 움직이는데, 당연히 서울 위주의 정책이 이루어지고 서울에 기업들이 자리잡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청년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았다고, 고령화시대에 접어들어 지방소멸시대를 맞고 있다고 지방자치단체가 입이 닳도록 중앙에 건의하고, 지방언론이 외쳐봐야 서울에 사는 높은 분들에게는 소귀에 경읽기다. 높으신 분만이 아니라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대개 다르지 않다. 지방에는 고위 정책을 결정하고 대규모 기업투자를 결정하는 사람이 없다. 지방에서 하는 이야기나 하소연은 서울사람에게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에이 우리 지역 이야기도 아니네. 이건 우리 아이들 문제가 이나네”라며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최근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시험 문제 유출이 만일 대구나 부산 등 지방의 어느 고교에서 발생했다면 지금처럼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아니올시다’다. 이런 일들은 수도없이 많다. 서문시장에서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서울의 어느 작은 건물 화재만큼도 중앙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지방에서 10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서울의 1명 사망사고와 같은 정도의 조명을 받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처럼 지방에 대한 관심이 없지만 과연 서울사람들은 지방이 없이 자기들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호남 평야에서 생산된 쌀로 밥을 먹고 경주에서 사육된 젖소에게서 우유와 치즈 , 강원도 횡성의 한우가 그들을 살찌운다. 봉화의 사과와 나주의 배, 고령의 딸기, 강원도의 고랭지 배추가 그들을 건강하게 한다. 서울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많은 것을 지방으로부터 얻고 있음에도 지방에 대한 고마움은 없다.

지방은 수도권을 위해 존재하는 군더더기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라는 사실은 백 번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전영 경북본사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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