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맹의 철학편지] 사회를 움직이는 노동을 자본가의 소유로 생각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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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5   |  발행일 2018-11-15 제39면   |  수정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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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스타플렉스 파인텍 노동자 두 명이 농성을 시작한지 꼭 1년째다. 여러 사정과 핑계로 가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글로만 미안한 마음을 전할 수밖에 없구나. 이들이 스타플렉스의 전신인 스타케미칼이란 이름의 회사일 때도 408일간 굴뚝에서 농성을 했으니 굴뚝에서만 그들은 2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 셈이구나.

칠곡군 왜관읍 스타케미칼 굴뚝에서 408일 동안 농성할 때 나도 10번 정도 진료를 위해 굴뚝에 올라갔었지. 해서 그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상태를 견뎌야 하는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간단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아직도 그 까마득한 높이가 무섭다. 그때는 48m였지만 지금은 75m라고 하니 얼마나 무서울까 싶다. 올라간 초반에 꿈을 꿀 때마다 굴뚝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어 등을 굴뚝 벽에 딱 붙이고 무언가를 붙들고 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무서운 곳을 왜 노동자들은 올라가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꾸 묻는단다. “이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게 나은 것이 아닌가”하고.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는구나. “이것은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이고 자신들마저 무너진다면 노동자들은 부당한 해고를 당해도 아무 말도 못하고 끝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다”고.

이런 와중에 요즘 사업주들의 폭력과 갑질이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구나. 사람들은 분노하고 나도 분노해. 그런데 무엇에 대해 우리는 분노하는 것일까? 그의 윤리적 태도?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 그러나 나는 이러한 윤리적 접근은 매우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생각해. 태형아, 그래서 오늘 나는 사회의 ‘휴머니즘’이 아니라 이 ‘노동자’에 대해 그리고 이 ‘노동’에 대해 너와 생각해보았으면 해.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자본주의는 국어사전의 정의를 빌어보자면 ‘생산 수단을 가진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노동력을 사서 생산 활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경제 구조’야. 그런데 태형아, 여기서 노동자들이 파는 것은 노동일까 아니면 노동력일까? 이것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 차이가 있어.

정의부터 보자. 노동력은 ‘부를 생산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능력, 즉 노동하는 힘 일반’을 말하고, 노동은 ‘노동력을 실제로 사용하고 발휘해 부를 생산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를 말해.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팔고 자본가들이 사는 것은 추상적 노동이 아니라 구체적인 노동력일 수밖에 없겠지.

어떤 상품을 만들어 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생산 일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노동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지불을 대가로 일정한 시간 동안 혹은 일정한 구체적 작업을 수행할 목적으로 그의 노동력을 자본가의 자유로운 처분에 맡기는 것’이야. 추상적 노동력으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어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어떤 노동력’을 파는 것이라는 것이지.

그런데 여기서 자본가들의 착각이 생기는 것 같아. 즉 그는 노동자의 노동을 샀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그래서 계약한 상품뿐만 아니라 부를 생산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것 일반을 노동자에게 요구하게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면 노동자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곤 하지. 이런 상태는 노동 일반을 제공하는 봉건사회의 ‘하인’에 다름 아니지. 그들은 노동자들을 회사의 부속품으로 생각하면서 언제든지 해고해도 되고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폭행해도 된다는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 노동자들의 기여로 형성된 자본에 대해서도 독점적으로 소유를 주장하면서 말이야. 국가와 사회는 이를 이데올로기로서 정당화하지.

오해하지는 말아라. 이 이야기는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건전한 노동’에 대한 개념이란다. 나는 적어도 자본주의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에 있어서 이 이야기는 과격하거나 과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맨 처음 굴뚝에 진료하러 올라갈 때 밑에 있던 회사 측 직원이 굴뚝 위의 노동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이야기하더구나. 왜 ‘남의 땅’에 무단으로 들어와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느냐고.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은 생각이 들더구나. ‘내가 일하는 남의 땅?’ 과연 소유란 무엇일까?

태형아,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너도, 의사인 내가 왜 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궁금해할지 모르겠구나. 스스로를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민주노총을 기득권 세력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에게 노동의 문제는 사회의 안녕을 위해 조절되고 통제될 또 하나의 문제로 인식되겠지. 그러나 합리적인 사회를 꿈꾸는 나는 이 사회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힘인 노동이 제대로 규정되기를 바란단다. 역사적 축적물인 이 노동이 개인의 소유로 주장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아직도 굴뚝 위와 길거리에서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노동자를 주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올 겨울 따뜻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시인·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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