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틈’을 내주는 사회를 꿈꾸며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8-11-16   |  발행일 2018-11-16 제26면   |  수정 2018-11-16
외국인 230만여명 한국 체류
희망 품고 찾아오긴 하지만
차별과 착취때문에 울기도
바위도 나무에 틈 내주는데…
이젠 그들을 품고 보듬어야
[경제와 세상] ‘틈’을 내주는 사회를 꿈꾸며
김병효 국제자산신탁 상임고문

지난 주말 동네목욕탕에서 겪은 일이다. 평소처럼 혼자 몸을 씻고 있는데 등 뒤에서 낯선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웃음 띤 얼굴로 서로 등을 밀어주자고 내게 말했다. 억양과 말투로 보아 중국 동포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언제부터인가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일이 거의 사라진 탓이었다. 그러나 이내 흔쾌히 동의했다. 그는 웃으며 내 등을 먼저 밀어주겠다고 했다. 그가 내 등을 밀 때 강한 손힘이 느껴졌다. 이윽고 내가 그의 등을 밀어줄 차례였다. 그의 등판은 넓고 탄탄했으나 양 어깻죽지 여러 곳에 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어깨에 난 검푸른 멍을 보니 마음이 아렸다. 감추고 싶은 흔적도 아닌 듯 그는 말 없이 등을 맡기고 있었다. 어깨의 멍은 분명 힘든 일을 하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한 가족의 생계를 감당해온 그의 노고를 위로하는 견장처럼 보였다.

지금 우리나라에 머무는 외국인은 200만명을 넘어섰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 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체류 외국인은 230만8천206명에 달한다. 통계청의 ‘2017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를 보면 2017년 5월 기준 외국인 취업자는 83만4천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절반가량이 월평균 200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식당, 이삿짐센터, 중소기업의 공장, 요양병원, 건설 현장, 농어촌 등 일손이 부족한 곳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있다. 주로 비전문 취업비자나 방문 취업비자를 받고 온 외국인과 재외 교포, 영주권자, 결혼이민자들이 취업하는 일터다. 이들이 한국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임금 수준이 높고 작업환경이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낯선 이 땅에 온 그들은 애초 자신이 바라던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을까.

현실에는 늘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 ‘아빠 찾아 삼만리’라는 교육방송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외국인 근로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국에 있는 부인과 어린 자식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과 아빠를 만나기 위해 어렵게 찾아오는 여정과, 더 나은 삶을 위해 머나먼 이국땅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아빠의 모습, 기쁨과 감격의 가족 상봉으로 채워지는 다큐멘터리다. 시련을 감내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소중히 가꿔가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수십 년 전 우리 부모들도 그랬다. 뜨거운 중동의 사막에서, 땅속 막장에서 생사를 넘나들었던 아버지, 요양병원에서 덩치 큰 환자를 돌보던 어머니의 땀방울을 먹으며 성장했던 힘든 시절이 있었다.

그 어렵던 시절은 옛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외국인들이 꿈을 찾아 우리나라로 오고 있다. 그러나 희망의 땅 약속의 땅에서 그들의 소중한 꿈이 깨지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일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임금체불이나 폭언과 폭행, 열악한 기숙사, 부당한 차별과 착취가 그들을 울리고 가슴을 멍들게 한다. 한때 유행한 ‘사장님 나빠요’라는 어느 개그맨의 멘트가 외국인 근로자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땀방울도 우리가 흘리는 땀방울과 다르지 않다. 노동의 가치는 국적이나 언어·종교와 무관하게 고귀하다. 여기에는 그 어떤 차별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곳곳에서 “사람대접 해달라”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현장의 소리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관계 당국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때가 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 그들이 몸으로 부대끼며 체험한 한국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희망의 나라, 다시 가고픈 나라일까.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는/ 한겨울에 뿌리를 얼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위에 틈을 낸다고 한다/ 바위도/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몸을 내주었던 것이다/ (중략)/ 바위도 나무에게 틈을 내주는데/ 사람은 사람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틈” 이상국 시인은 ‘틈’이라는 시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굳게 지키는 사람들에게 지금부터라도 틈을 내고 서로서로 보듬자고 말한다. 우리도 그들을 품어야 한다. 작은 틈이라도 내야 한다. 김병효 국제자산신탁 상임고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