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고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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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1   |  발행일 2018-11-21 제30면   |  수정 2018-11-21
출소한 30대 그녀의 거주지
창문조차 없는 값싼 고시원
화재나면 어떻게 탈출할지…
아무리 힘든 인생일지라도
안전하게 살 권리 챙겨줘야
[수요칼럼] 고시원
정혜진 국선전담변호사

징역을 살고 출소한 그녀가 사무실을 찾아와 안부를 전했다. 출소해도 갈 데가 없고 너무 막막했는데 어떤 목사님이 교회 근처 고시원 방값을 보조해 줘 거기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징역 가기 전에도 그 동네 고시원을 전전하던 그녀는 그렇게 다시 고시원에 산다.

30대 그녀는 가족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고 노동 능력이 거의 없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고시원 방값을 내고 살았다. 겉으로 보기엔 크게 표시가 안 나는데 척추를 다쳐 오래 서 있거나 하질 못해 일을 못한다. 20대 때 극단적 선택으로 건물에서 뛰어내린 후유증이다. 천식이 심했고 뭐가 잘못되어 있는지 자주 하혈을 했다. 마음도 몸만큼 상처투성이였다. 우울증이 심해 자해를 반복했다. 같은 고시원 다른 방에 살던 막노동하는 남자와 사귀었는데 자주 말다툼을 했다. 어느 날 그 남자와 말다툼을 하던 중 부엌칼로 자해를 시도하다 이를 말리던 남자가 그 칼에 찔려 다치는 바람에 형사 법정에 서게 되었다. 초범이지만 무고죄(남자한테 강간당했다고 신고했다)에 특수상해죄까지 더해진데다, 남자는 그녀가 지긋지긋했는지 그녀가 엄한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해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녀가 다녀간 후 어느 날, 어쩐지 마음이 동해 집에 있는 식용유, 샴푸, 린스같은 생필품을 몇 개 챙겨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나는 전해주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그녀가 “들어가 보실래요”해서 고시원이란 데를 들어가 보게 되었다. 원룸텔은 나도 몇 개월 살아봤지만 쪽방의 연장선 같은 고시원은 처음이었다. 월세 20여만원짜리 고시원이 어떤 환경일지 짐작은 되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괜히 들어왔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교도소에서 살고 나왔어도 최소한의 짐은 있기 마련인데, 그 짐이 좁다란 바닥에 아무렇게나 포개져 있었다. 짐을 요령있게 밀쳐야 잘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나올 것 같았다. 다닥다닥 붙은 방에서 방음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스무 개 가까운 방이 있는데 공동 화장실과 샤워 시설은 남녀 각 하나씩 있다고 했다. 그녀 방을 복도에서 서서 잠깐 들여다보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금방 나왔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녀 생각이 다시 난 건 서울 도심 고시원 화재 사건 때문이었다. 사망자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인데 빈소가 차려진 곳이 없다고 한다. 아무런 연고가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연락이 닿지 않는, 이 사회에 달랑달랑 간신히 매달려 살았던 사람들이 사는 곳. 국선전담변호사를 하다 보면 그녀처럼 무슨 고시원 몇 호를 주소로 둔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만난다. 대개는 남자들인데(열에 아홉은 남자다) 가족이 없거나, 배우자가 있었어도 이혼한 지 오래고 자녀와도 연락이 두절된 지 오래다. 노동 능력이 없어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살아가거나, 일정한 직업 없이 운 좋으면 일용노동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기소된 범죄는 대체로 술을 마시다 일어난 사소한 업무방해 또는 공무집행방해, 무전취식 사기 정도. 무거운 죄는 아니지만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주거가 일정치 않으니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구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 줍니다’라는, 자본주의의 첨병같은 그 무시무시한 광고 카피가 얄미울 정도로 꼭 들어맞는다. 그 광고 세계에서는 무슨 고시원 몇 호에 사는 ‘당신’은 존재조차 하지 않을 것이지만.

서울 고시원 화재에서 창문이 생존을 갈랐다는 뉴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의 방에도 창문이 없었다. 창문 있는 방과 없는 방이 5만원 차이라고 그때 그녀가 말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어디 의지할 곳도, 배운 것도, 노동 능력도 없는 그녀는 아마도 고시원 인생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없어도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광고 카피 속의 ‘당신이 사는 곳’이 법적 기준에 따라 안전시설을 갖추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사는 곳도 최소한은 그래야 한다. 정혜진 국선전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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