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아빠 머리 묶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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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2   |  발행일 2018-11-22 제30면   |  수정 2018-11-22
여성이 육아에 적합하단 말
고정관념과 반복학습 때문
대구시 남성 육아휴직 혁신
결원 보충 등 지원대책 탄탄
민간업체 확산 마중물 되길
20181122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간 사이 아빠 혼자 집안일을 하고 딸아이도 돌봐야 하는 미션이 생겼다. 지금 아빠의 가장 큰 걱정은 밥도 아니고 출근도 아니고 딸아이의 머리를 제대로(?) 묶어 유치원에 보내는 일이다. 더구나 얼마 안 있어 유치원에서 생일파티가 있단다. 파티의 주인공인 딸아이는 머리를 예쁘게 땋아 가고 싶은데 해줄 엄마가 없다. 그래서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가 머리 땋아줄 수 있어요?” 그날부터 아빠에게 새로운 미션이 생겼다. 아빠는 딸을 재우고 나서 밤에도 열심히 인형머리를 붙들고 머리 땋는 연습을 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가방 속에 넣어둔 인형을 꺼내 주변 시선에 아랑곳없이 머리 땋기 연습을 한다. 딸의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고 싶은 아빠의 고군분투기인 그림책 ‘아빠 머리 묶어주세요’의 내용이다.

아이의 머리나 옷매무새가 단정하지 않거나, 어른 남자의 셔츠가 다림질 없이 쭈글쭈글하거나 양복바지가 후줄근하면 여차 없이 ‘엄마 없는 아이같이’ ‘아내 없는 사람처럼’이라는 타박을 듣기 마련이다. 남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아이마냥 여성의 보살핌을 받아야 되는 존재로 여겨지지만 이것이 결코 흉이 되지는 않는다. 대신 여성은 돌보는 일에 적합하며 태생적으로 남성보다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어왔다. 그래서 오랜 기간 여성이 지녀야 할 이상적인 덕목으로 ‘현모양처’가 꼽혔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여성이 아이를 더 잘 돌보고 가사에 더 적합하다는 것은 맞는 말일까. 최근에는 이것이 태생적 차이라기보다는 여성에게 부과되는 성별고정관념과 반복학습의 결과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간단하게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는 일 하나도 엄마라서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자주하게 되면서 경험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역으로 남성도 경험을 쌓으면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얼마 전 대구시에서 고강도 신(新)인사혁신안을 발표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대구형 출산·육아 인사케어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일가정양립 문화를 공직에서부터 확산하기 위해 남성육아휴직을 장려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육아휴직시 결원에 따른 해당 부서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3개월 전에만 사전예고하면 육아휴직 즉시 결원을 보충해주는 지원책부터 육아휴직으로 인한 인사상의 불이익이 없도록 1년 이상 육아휴직을 다녀온 공무원 모두에게 근무평정 상의 가산점을 준다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도 들어 있다. 또한 남성공무원의 경우 ‘승진대디 육아휴직 의무상담제’를 도입한다는 것도 새로웠다. 초등 2학년 미만의 자녀를 둔 남성공무원은 승진시기가 되면 육아휴직 사용 희망여부에 대해 의무적으로 인사부서와 상담하도록 한 것으로, 남성공무원이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열어준 것이다. 이런 대구시의 혁신적인 인사제도들은 모두 전국에서 최초로 시행하는 것이다. 이 인사안이 발표되자 내·외부에서 여러 가지 말들이 오가는 모양이다. 제도 자체가 ‘그림의 떡’인 민간의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처우가 좋은 공무원조직인데 또 혜택을 주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 같고, 조직 내부에서도 경제적인 이유로 쉽게 육아휴직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육아휴직자에게 근무평정 가산점까지 주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의견까지 분분하다고 한다. 하지만 공공 영역의 여건이 되는 사람부터라도 열심히 관련 제도를 활용한다면 제도의 사회적 정착이 빠르고 쉬울 것이고 민간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는 마중물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대구시의 인사 실험에 기대를 갖게 한다. 전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인사케어 모델로 정착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런데 앞서 그림책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유치원 선생님이 머리가 예쁘다며 “엄마가 오셨나보구나”라고 묻는다. 아이는 대답한다. “네. 하지만 머리는 아빠가 묶어주셨어요.” 아빠의 완벽한 ‘미션 클리어’다.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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