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문경 선유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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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3   |  발행일 2018-11-23 제36면   |  수정 2018-11-23
신선의 피리 소리인가 물 소리인가…거대한 암석 사이 굽이굽이 옥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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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구곡 중 9곡 옥석대. 왼쪽 바위에 새겨진 선유동 각자는 고운 최치원의 글씨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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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곡 탁청대. 거인의 빨래판 같은 바위다. 손재 남한조가 세심정을 지어 은거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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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동계곡의 학천정. 영조 때 학자인 도암 이재를 추모하여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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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곡 난생뢰. 물줄기가 현처럼 바윗돌에 새겨져 계곡이 통째로 악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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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은읍 괴정1리 길. 길가에 국화와 단풍나무가 색색이다.

선선한 계곡에 인적은 드물었다. 단풍은 벌써 진 것인지 혹은 솔 많은 산이어서인지, 하얀 너럭바위와 짙푸른 숲만이 고요했다. 물 흐르는 대로 몇 굽이를 돌자 잠시 다리쉼하라는 정방형의 정자가 나타났다. 거기에는 청춘과 중년 사이 어느 즈음을 지나고 있을 법한 여자와 남자가 다섯 뼘쯤 떨어져 앉아 있었다. 멀찍이 곁눈질한다. 그들은 아예 눌러 앉을 모양이다.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이 신경 쓰일 게지. 어색하게 쭈뼛대는 몸짓이 느껴진다. 그러다 슬며시, 남자는 무엇인가를 꺼내 가슴에 안았다. 기타다. 저것을 들고 예까지 걸어 왔단 말인가. 귀를 쫑긋 세우지만 가득 차는 것은 물소리뿐. 방해하지 말라는 듯, 계곡물은 더욱 세차게 흘렀다. 


◆ 선유동 계곡

식당에도 민박집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면 발 들일 곳 없는 계곡도 텅 비어 폭우 같은 물소리만 쾅쾅 울린다.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는 ‘가이완장운(可以浣腸雲)’이라 했다. ‘골짜기가 탁 트여 창자가 시원하다’는 뜻이다. 옛 사람들의 과장법은 때로 실제가 되는 기이함이 있다. 이곳은 문경 대야산(大耶山) 선유동(仙遊洞) 계곡, 신선이 노닌다는 곳이다. 선유동은 가은읍 완장리(完章里)의 자연부락이다. 한자는 변하였지만 마을이름 ‘완장’은 우복의 말에서 유래한다. 아무도 모르는 어느 날 신선이 되었다는 신라인 고운 최치원도 먼저 이곳을 거닐었다. 지금도 그가 새겼다는 ‘선유동’ 글씨가 큰 바위 이마에 남아 있으니 아름다움의 역사는 정말 오래 되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선유교 다리 너머 정자 하나가 계류를 바라보며 서 있다. 학천정(鶴泉亭)이다. 조선 영조 때 학자인 도암(陶庵) 이재(李縡)를 추모하기 위해 1906년 향토 사림이 세운 것이다.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한 강력 노론의 중심이자 배후였던 그는 때때로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몇 개월씩 보냈다고 한다. 바위벽에 기대 돌담 위로 상체를 드러낸 정자는 부럽도록 당당하다. 그러나 몇 해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학천정 현판은 삐뚤다.

선유동계곡의 아홉 굽이를 ‘선유구곡’이라 한다. 고운, 우복, 도암 외에도 손재(損齋) 남한조(南漢朝), 병옹(病翁) 신필정(申弼貞) 등 많은 선비들이 저마다의 구곡을 경영하고 흔적을 남겼다고 전한다. 지금 알려져 있는 선유구곡은 고종 때 사람인 외재(畏齋) 정태진(丁泰鎭)이 정리한 것이다. 1곡 옥하대(玉霞臺), 2곡 영사석(靈石), 3곡 활청담(活淸潭), 4곡 세심대(洗心臺), 5곡 관란담(觀瀾潭), 6곡 탁청대(濯淸臺), 7곡 영귀암(詠歸巖), 8곡 난생뢰(鸞笙瀨), 9곡 옥석대(玉臺)다. 아홉 굽이마다 바윗돌에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누가 언제 그리하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계곡 가로지르는 선유교 너머
바위벽 기대 당당한 기세 학천정
선유동계곡의 ‘선유구곡’
아홉 굽이마다 바윗돌에 이름
악기 같은 물소리 8곡 난생뢰
바위에 눈내린 듯한 7곡 영귀암
거인 빨래판 같은 6곡 탁청대

◆ 구곡 따라 흐르다

학천정과 최치원의 선유동 바윗돌 사이에 9곡 옥석대가 펼쳐져 있다. 바윗돌은 넓고 희며 계류는 좁고 세차다. 옥석은 옥으로 만든 신발을 뜻하는데 도를 얻은 사람이 남긴 유물을 의미한다. 한나라 유향(劉向)이 지은 ‘열선전(列仙傳)’에 안기생(安期生)이라는 사람이 ‘붉은 옥으로 만든 신발 한 켤레를 남긴 채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먼 나라 사람의 옥석보다 고운의 신발이 더욱 생각난다. 그 역시 신던 신발과 쓰던 갓만을 남기고 사라졌다지 않나.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한 계단을 타고 계곡의 한 굽이를 돈다. 8곡 난생뢰가 펼쳐진다. 난생(鸞笙)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난새와 악기인 생황을 뜻한다. 뢰(瀨)는 여울이다. 흐르는 물소리가 신선의 피리소리 같다는 의미다. 바윗돌에 물의 흐름이 현처럼 새겨져 있다. 바위는 통째로 물과 함께 흐르며 계곡은 통째 악기다. 이제 잠시 계곡을 벗어나 낙엽 쌓인 오솔길로 접어든다. 한 굽이 돌아 7곡 영귀암을 내려다본다. 그늘진 계곡에 물은 비취빛이고 바위에는 눈이 내린 듯하다. 영귀는 ‘노래하며 돌아온다’는 뜻이다. ‘기수(沂水)에서 목욕을 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겠다’는 증점(曾點)의 이야기에서 따왔다.

또 한 굽이 돌면 6곡 탁청대다. 거인의 빨래판 같은 바위다. 탁청은 ‘물 맑으면 갓끈 씻고, 물 흐리면 발 씻는다’는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유래한다. 손재 남한조가 탁청대 서쪽에 세심정을 지어 은거했다 한다. 다시 계곡과 살짝 떨어진 오솔길이다. 바스러지는 햇살 속에 고래 같은 바위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곧 5곡 관란담이다. ‘관란’은 ‘물결을 본다’는 의미다. 세찬 물살이 못을 이루어 차츰 잔잔해진다. 계류가 둔덕진 자리에 사각 정자가 있고 그 앞쪽에 ‘구은대유적비(九隱臺遺跡碑)’가 서 있다. 일제강점기 때 순천김씨 아홉 노인이 이곳에 숨어 들어온 유래가 적혀 있다. 맞은편 바위에는 아홉 노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도 손재가 지은 옥하정(玉霞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한다. 혹 지금의 정자 자리가 옥하정 터일까.

정자에는 남자와 여자가 앉아 있다. 남자의 옆모습과 여자의 맑은 얼굴만 보일 뿐, 귓가에 넘치는 물소리는 끝없고 남자의 기타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외재 정태진은 국권회복을 위해 힘쓰다 광복 후인 1947년 봄에 이곳을 찾아왔다. ‘10년을 꿈꾸다 이렇게 한 번 찾아오니/ 선유동문 깊숙한 곳 흥취가 끝이 없네.’ 구곡은 아래로 이어지지만 여기서 돌아선다. 4년 만에 찾아 선유하고 이제 증점처럼 노래하며 돌아가리니.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국화·단풍 어여쁜 가은에 들러…

가은읍(加恩邑) 길가에 색색의 국화가 어여쁘다. 군데군데 가로수는 단풍나무라 길가엔 붉은빛이 냇물처럼 흐른다. 읍 소재지는 왕능리(旺陵里)다. 언제 누구의 것인지 모를 능이 있다고 생긴 이름이다. 한 시절 은성했던 은성(恩城) 탄광이 석탄박물관으로 서 있고, 조선시대부터 형성되었다는 가은 아자개 장터가 4일, 9일마다 열린다. 아자개는 견훤의 아버지, 견훤의 고향이 가은이다. 읍내 빵집에서 만들어 파는 아자개 빵에는 팥, 고구마, 땅콩 소가 듬뿍 담겼다. 오래전 문 닫은 가은역은 카페로 열렸고, 기찻길에는 자전거가 달린다. 읍내 앞 가은천변의 고목들은 거북이처럼 늙고 호랑이처럼 용맹하다.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대전방향으로 가다 김천분기점에서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방향으로 간다. 문경새재IC에서 내려 문경읍 방면으로 가다 소야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가은읍이다. 읍내를 관통해 괴산 방향 922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된다. 학천정 초입에 1· 2 주차장이 있다. 사람이 없는 날이면 학천정 근처까지 차가 내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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