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학교협동조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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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7   |  발행일 2018-11-27 제31면   |  수정 2018-11-27
[CEO 칼럼] 학교협동조합 이야기

“이거 제가 만든 샴푸예요. 방부제 없이 만들어서 피부에 좋아요. 저기 도마는 편백나무로 만든 건데, 제 친구가 우리 학교에서 만들었어요. 정말 좋은 제품이에요. 한 번 써보세요.”

대구의 첫 공립 대안학교인 대구해올중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여는 특별한 바자회의 모습이다. 자기가 만든 화장품을 진열하고, 도예품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커피와 베이커리를 준비하는 것은 여느 바자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지만, 그 속에는 특별함이 숨어있다. 그 하나는 판매제품 모두 학생들이 실습형 교육을 통해 학교에서 직접 만든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자회를 운영하는 학생들 모두가 학교협동조합(대송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학교의 바자회에선 학생들 모두 직접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방안을 토론하며 수익금에 대한 처리방법을 합의한다. 이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문제를 찾고,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배우며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한마음 한뜻으로 학교협동조합을 잘 운영해야 한다는 공적 책임감도 느낀다. 물론 경제도 배운다. “저는 학교협동조합 바자회가 재밌어요. 친구들과 직접 만든 물건을 전시하고 팔아보니까 생각보다 사람들이 우리 물건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수익도 생기니까 뭔가 뿌듯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만든 상품을 소비자가 어떻게 평가하는지 돈을 벌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회계 같은 것도 배우니까 나중에 경제를 아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또 다른 협동조합 실험은 대구농업마이스터고교에서 벌어졌다. 학생들은 ‘함께’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한 학생의 고백이다. “처음엔 친구가 하자고 해서 그냥 같이 했어요. 협동조합 동아리를 하고 싶은데, 5명이 있어야 한다고. 제가 키운 채소를 팔 수도 있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하니까 재밌을 것 같았어요. 우리 중에는 항상 그 친구가 의견도 많고, 하자는 대로 하는 편이죠. 저는 그냥 따라가는 편이었는데, 협동조합 교육을 받을 때 모두 자기 의견을 내야 한다고 해서 처음엔 힘들었어요. 저는 생각이 많지 않았거든요.” 처음엔 색다른 경험에 버거웠던 모습이다. “활동 발표를 하면서 그 친구랑 의견이 달랐던 적이 있었어요. 평소 같으면 친구가 하자는 대로 했을텐데, 이번에는 제 생각을 말했어요. 여긴 협동조합이고, 저도 의견을 낼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까. 결국 친구들이 제 의견이 더 좋다고 해서 제 의견대로 발표를 하기로 했어요. 그 친구가 처음엔 섭섭해했지만, 금방 수긍하더라고요. 좋았어요! 정말 ‘함께’ 회의하는 거 같았고, 저도 이제는 제 생각을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신에게 주목하는 친구들이 있어 자존감도 생겼단다. 협동조합 동아리활동으로 참여를 배우고 이견을 조정하는 방법도 서로 배우면서 성장해간다.

대구경북지역 학교협동조합의 첫 시작은 2016년 문경여고 사회적협동조합의 ‘오얏골 필 무렵’이라는 매점이었다. 경기도 복정고에서 학교협동조합을 먼저 시작했는데, 이것을 보고 문경여고의 독서토론반 학생들과 관심있는 선생님들이 공부를 시작했다. 1년 정도 준비해 학교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오얏꽃 필 무렵’이라는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문경여고의 학생은 말한다. “참 재밌는 게 예전에는 매점이 그냥 물건을 사는 곳이었다면 지금은 학생들이 모이는 사랑방 같아요. 학생들이 스스로 운영하니까 부담 없이 와서 이야기도 나누고, 또 자기들이 운영하니까 뭐랄까. 질서가 있다고 할까요. 서로서로 신경쓰더라고요. 그리고 재밌는 건 학생 이사들이 졸업하고도 가끔 연락이 와요. 자기들끼리 모임도 계속하고 있고. 학교협동조합이 그냥 매점을 잘 운영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공동체로 기능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시작은 간식이나 위생 등의 영역에서 학생들의 욕구와 괴리가 있는 매점운영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였지만, 학생들은 배우는 것이 적지 않다. 자칭 ‘우리 매점’의 조합원으로서 삶의 지지대가 될 우정을 배우고, 경제민주주의를 체득해 나간다. 학교현장에서 살아있는 협동을 배우는 학생들의 걸음마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김재경 (<사>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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