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쌀의 갈길은] 힐링푸드의 보루 (하)

  • 이춘호
  • |
  • 입력 2018-11-30   |  발행일 2018-11-30 제41면   |  수정 2018-11-30
웰빙푸드 ‘밥’ 의 재발견…현미채식·쌀빵·유가찹쌀·오색떡국 새 먹거리 각광
20181130
20181130
20181130
한국 최고의 찹쌀 1번지로 불리는 유가찹쌀 전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2008년 유가농협이 개발한 오색떡국.

한국인은 오랫동안 ‘밥심’으로 살아왔다. 밥은 한국인이 섭취하는 영양소의 원천이었다. 한국인의 DNA에는 조상 대대로부터 새겨진 쌀에 대한 기억이 있다. 산모는 아이를 낳자마자 미역국에 쌀밥을 먹었다. 갓난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나려면 이유식을 먹어야 하는데 ‘쌀미음’만한 게 없었다. 회복식으로 쌀죽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었다. 한식의 원천인 떡도 쌀이 없으면 무용지물. 한국의 대표적 음청류였던 감주도 쌀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밥이 천대받기 시작한다. 쌀밥은 ‘탄수화물 덩어리’. 그걸 많이 먹으면 각종 성인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이 국민들의 쌀기피증을 더욱 부채질한 것도 사실이다. 정말로 쌀이 만성질환의 주범일까? 가정의학전문의와 임상영양사 등 전문가들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연친화적 영양소 공급이 절실한 유아들까지 빵에 너무 노출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친환경먹거리운동가들은 “건강사회를 위해 다시 밥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외쳐댄다.

비만·당뇨 등 대사증후군 예방 효과
장내 유해물질 배출·체내 해독 작용
생채소와 곁들인 현미밥 성인병 개선

행복빵 가게 ‘친환경 쌀빵’
대구한의대 ‘착한빵 프로젝트’ 가동
차진 쌀가루에 율무·현미·미강 혼합
밀가루·우유·계란·설탕·방부제 無
다양한 한약재 사용 ‘한방자연발효빵’

달성군 유가농협 찹쌀
찹쌀부문 쌀품종명 관리마크 1호 지정
우렁이 친환경 농법·농가 종자 공유
자체개발 천연색소 오색떡국도 인기


◆빵에서 밥으로 터닝

얼마 전 농촌진흥청과 분당제생병원이 공동으로 진행한 임상시험. 여기서 ‘쌀밥이 비만과 당뇨병 등 대사증후군 예방에 효과가 있고 건강 증진 효과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동일한 영양소와 칼로리를 맞춘 부식에 주식을 쌀밥 또는 밀가루빵으로 달리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및 반응을 조사한 것. 그 결과 밀가루빵보다 쌀밥을 섭취했을 때 건강한 성인은 혈당 감소가 완만하고 인슐린 분비량이 적었다.

삼시세끼 밥만 편식하는 이는 없다. 반찬과 국, 찌개 등과 함께 먹는다. 그래서 밥은 더 균형잡힌 식사를 하게 만든다. 2015년 미국의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바탕으로 관계당국에서 ‘쌀 소비량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쌀 소비가 식단의 질을 높이고 비만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글루텐 프리 열풍’. 그 중심에 쌀이 있다. 미국·캐나다에서는 최근 몇 년 새 국민 30% 이상이 글루텐 프리 식품을 선호하고 있다. 실제 ‘유로 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2009년부터 5년간 글루텐프리 식품의 전 세계 판매량은 자그마치 75%나 증가했다.

쌀은 밀에 비해 단백질의 함량이 낮고 글루텐이 없어 알레르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낮은 식품이다. 쌀은 상대적으로 적은 단백질 양에도 불구하고 높은 아미노산가와 소화흡수율로 체내 이용률이 높다. 이 외에도 쌀의 식이섬유 성분은 장내 유해물질을 배출해주며 체내 해독작용에 도움을 준다. 다양한 영양소들의 이런 기능들은 신체의 전반적인 컨디션을 좋게 유지해준다.

점차 쌀이 힐링푸드의 리더격으로 인정받고 있다. 밥이 싫어 빵을 선택한 이들이 오히려 각종 알레르기를 유발시키는 글루텐에 더 휘둘릴 수 있다. 밥을 중심으로 식단을 관리하는 이들이 오히려 더 건강해질 확률이 높다는 게 관련 전문가의 지적이다.

◆현미채식 돌풍

벼가 흰쌀이 될 때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된다. 우선 ‘탈곡(脫穀)’이라 하여 벼이삭을 터는 일에서 시작된다. 나락에서 껍질(왕겨)을 벗기는 탈각의 작업이 있다. 탈각으로 나온 낟알은 ‘현미(玄米)’다. 이걸 찧어 백미로 만드는 과정을 ‘정백(精白)’이라 한다. 현재 탈곡은 논에서 콤바인으로 수확할 때 볏짚단의 묶음과 함께 이뤄지고 있다. 벼에서 정백미에 이르는 과정은 도정기가 담당한다. 도정 때는 마찰분풍식 또는 연삭식 기계를 쓴다. 도정도에 따라 5분도미·7분도미·백미로 분류된다. 도정과정에서 왕겨·속겨·배아(胚芽)·싸라기 등이 나오는데 왕겨는 연료·과일포장제·벽돌충전제 등에 쓰인다. 속겨는 ‘미강유(米糠油)’란 식용유 재료가 된다. 배아는 영양제, 싸라기는 과자류 제조에 쓰인다.

성인병에 노출된 이들에겐 쌀밥을 넘어 ‘현미채식’이 꿈의 식단으로 각광받는다. 2012년까지 대구의료원 신경외과 전문의였고 지금은 상경해 성인병 환자들에게 올바른 식습관을 가르치는 ‘황성수 힐링스쿨’을 운영하고 있는 황성수 박사. 그는 그동안 1천명이 넘는 성인병 환자들에게 현미채식을 보급했다. “일부 환자들이 빠르게는 2주 만에 약을 끊는 것을 보며 현미의 효능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는 그는 현미를 ‘완전식품’이라고 주장한다.

“밥 한 공기에 하루 필요한 단백질·지방·탄수화물을 전부 담고 있으니까요. 여기에 생채소와 과일만 곁들이면 됩니다. 정말 간편합니다.”

그가 먹는 식단은 너무 간단하다. 현미밥과 사과 반쪽, 그리고 상추 다섯 장 정도다. 25년째 초라할 정도로 단출한 현미채식을 실천 중이다. 부드럽게 먹으려면 8시간 정도 불려 압력솥에 넣고 지어도 된다. 소화가 힘들다면 알갱이를 잘게 쪼개 죽으로 해서 먹어도 되고 물에 불려 생식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고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운이 떨어지지 않는다. 에너지는 단백질에서 오는 게 아니고 탄수화물이 당화되면서 생기는 포도당에서 오기 때문. 그는 “현미채식만으로 영양이 충분하고 당뇨·고혈압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대구의 명물…힐링쌀빵

20181130
대구시 중구 봉산동 ‘행복빵’은 대구한의대와 윈윈전략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베이킹파우더와 계란 등을 사용하지 않고 한약재와 쌀가루 등만으로 ‘쌀빵’을 개발하는 데 성공, 힐링빵 시대를 선도하게 됐다.


아는 사람은 안다. 입에 한없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이 실은 몸에 그렇게 좋지 않다는 걸. 그럼 몸에 좋은 빵은 없을까. 그런 고민을 대구시 중구 봉산동 ‘행복빵’이 해결해주었다.

국내 유통되는 밀가루의 90%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수입된다. 장기간 유통에도 문제가 없으려면 방부제·살충제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고강력 정제를 통한 분말이다 보니 체내에 급격하게 당수치를 올리는 것으로 보고됐다. 당뇨병 환자에겐 그런 시중 빵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빵의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제빵사들이 각종 향신료·감미료·유화제 등으로 맛을 조작해 놓았기 때문이다.

중구 봉산문화거리 초입에 있는 ‘행복빵’ 가게 입구 창문에 눈길을 끄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우유·계란이 들어가지 않은 건강빵 파는 곳’. 당뇨병 등 성인병에 노출된 손님들은 가족들과 함께 김밥처럼 식빵·잡곡빵·찰빵을 사 갖고 간다.

행복빵 개발과정은 지독히 어려웠다. 제과제빵의 원칙을 거부한 빵이기 때문이다. 2004년 대구한의대에서 건강한 빵에 대한 문제 인식이 처음 형성된다. 한의사인 변정환 대구한의대 명예총장이 쌀로 만든 ‘착한빵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쌀소비가 급감하는 대신 커피문화에 편승된, 맛만으로 무장한 빵한테 우리의 식탁이 점령당하는 것을 보다 못한 나머지 관련 교수에게 건강한 빵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것. 총장의 지시였지만 관계자들은 다들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2014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세계청년대자연사랑축제가 분기점이 됐다. 2015년 제빵전문가인 예병일과 대구한의대 약선식품브랜드화사업단 김수민 단장, 김미림 의과학대학장, 배만종 교수가 의기투합한다.

그들이 꿈꾸는 행복빵은 이런 것이었다. 건강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베이킹파우더는 물론 밀가루, 우유, 흰설탕, 방부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한약재를 사용해 천연 발효시켜 만든 ‘한방 자연 발효 빵’이었다. 기본 밀가루 반죽은 보통 25~27℃에서 숙성이 이뤄지는데 그는 좀 낮춰 숙성했다. 얼음을 집어넣어 반죽을 차게 했다. 밀가루 대용으로 쌀가루에 율무·현미·미강을 혼합했다. 1년여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이 친환경 쌀빵은 제빵업자는 물론 건강을 챙기려는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받게 됐다.

20181130

◆전국 최고의 유가찹쌀 이야기

대구 달성군 유가농협의 경우 찹쌀 부문의 쌀 품종명 관리마크 표시업체 1호로 지정됐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은 전국 98개 쌀 품종명 관리마크 표시업체 중 찹쌀 ‘신선찰벼’ 부문으로는 처음으로 유가농협을 품종명 관리마크 표시업체로 지정하고 인증서를 전달했다.

사람들은 왜 유가찹쌀을 한국 찹쌀의 지존으로 기억하는가. 그건 여러 조건이 찹쌀 농사와 찰떡궁합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특유의 배산임수 지형이 큰 역할을 한다. 뒤에는 비슬산, 앞에는 낙동강, 풍수지리학적으로도 1급지지만 특히 멥쌀보다 찹쌀 농사에 더없이 적지다.

친환경 찹쌀농사의 신지평을 연 가태리 곽동준씨. 유가찹쌀 작목반장인 그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가업으로 이어진 찹쌀농사 기법을 전수했다. 예전에는 메벼와 찰벼를 동시에 심었다. 하지만 수정 과정에 메벼의 꽃가루가 찰벼에 옮겨 붙었다. 자연 15% 이상의 생산량 손실이 발생했다. 메벼 곁에 찰벼를 두어선 최고의 찹쌀을 생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1982년부터 스스로 찹쌀 전도사가 돼 벼농사의 모든 것을 공부했다. 유가찹쌀이 오늘의 포스를 가질 수 있었던 건 곽씨의 친환경농법 개발과 치열한 실험, 실천정신에서 많이 기인한다. 그는 2014년 신선찰벼 종자를 보급받아 농가와 공유, 더 탄탄한 기반을 갖게 된다.

비슬산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가태리 내 3개 부락에는 70여 가구의 찹쌀농가가 있다. 다들 메벼는 짓지 않고 찰벼만 재배한다. 한두 군데라도 메벼를 고집하면 찰벼 품질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처에는 굴뚝공장·축산업체 등 오염원이 거의 없다. 제초제 대신 우렁이를 사용해 농사짓기도 한다.

특히 유가농협이 2008년 자체 개발한 ‘천연 오색떡국’은 해마다 설을 맞아 큰 인기다. 이 떡국은 인공색소와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웰빙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국산 쌀가루에 보성 녹차·제주산 백년초·달성산 치자·진도 흑미의 천연색소로 색깔을 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