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기·승·전·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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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6

“아이고 참말로 이기 뭐꼬. 우찌 이리도 장사가 안 되노.” “그기 다 문재인 탓 아인교. 북한에 다 퍼주는데, 말해 뭐합니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48%로 9주 연속 하락한 가운데 대구에선 정치인이 아닌 대중에 의한 매터도(Matador)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야긴즉슨 경제가 안 좋은 건 다 문 대통령 탓이고, 문 대통령이 북한에 퍼주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특히 상인들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이 같은 맹목(盲目)은 급기야 ‘기·승·전·북(北)’이란 유행어마저 만들어냈다. 모든 문제의 끝에는 북한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뭇사람의 말이 쇠마저 녹인다(衆口金)고는 하나 이건 반(反)이성적이다.

어느 정치인은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 추락을 두고 ‘이영자’ 현상으로 풀이했다. 20대·영남지역·자영업자들이 문재인정부에 등을 돌렸다는 진단이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진영이 생산하고 있는 문재인정부 비판 프레임, 즉 무능과 폭주라는 덧씌우기는 사실 영남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먹혀들고 있는 느낌이다. 비판 수위의 고저(高低)가 있긴 하지만 취업난과 최저임금 부작용 등이 초래한 청년과 자영업자의 분노는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집권 2년차 문재인정부의 정책 유연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 퍼주기가 궁극의 원인이라는 조롱 섞인 맹신(盲信)은 과하다.

2014년 1월1일 보수 성향의 한 중앙지 1면에 실린 연중기획물 ‘통일은 미래다’는 충격적이었다. 이 신문이 바로 보수 중의 보수라는 그 신문이 정말 맞나 싶을 정도로 어젠다 설정은 반전이었다. ‘통일은 미래’라는 이 간략한 문장이 던지는 메시지는 깨알같이 서술된 기사의 찬란함마저 왜소하게 만들 만큼 강렬했다. 그로부터 여섯째 되던 날, 또 한 번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을 듣는다. 신년 기자회견 중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 ‘통일은 대박’이란 말이 나왔다. 솔직히 보수진영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진보진영의 전유물 같은 존재인 ‘통일’을 새해 벽두부터 이슈 선점하고 나선 건 놀라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박근혜정부의 통일 이데올로기 대전환이 실은 알맹이 없는 선언적·수사적 의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통일대박을 향한 전략적이고 실천적인 액션플랜은 없었고, 오히려 평화 담보장치였던 개성공단을 폐쇄해 버리기까지 했다. 더욱이 박 전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상이 국정농단의 핵심 최순실 작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는 보수진영마저 멘붕상태에 빠졌다. 결국 보수진영의 통일담론은 골수 깊이 박혀 있는 냉전적 사고를 걷어내지 못했고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개성공단은 북한 퍼주기의 대명사가 돼 버렸고, 대구는 지금 북한 탓 타령이다.

만약 내일 아침 통일이 되어 있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이 질문에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북한 붕괴라는 복선이 깔려 있다. 그 수가 적지는 않겠지만 축복으로 보는 시각은 바로 북한 붕괴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이 미래이고 대박이긴 하지만 북한전문가들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통일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북한 붕괴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기업활동도 할 수 있는 상태, 즉 ‘평화체제’ 유지가 유일한 해법이다. 무엇보다도 제2, 제3의 개성공단이 나와야 하고 삼성의 공장이 북한에도 건설돼야 한다. 가장 좋은 안보는 총칼의 겨눔이 아니라 기업의 북한 진출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은 최근 대구 토론회에서 남북경협 대책을 주도면밀하게 세우지 않으면 북한 개발의 실익을 미·중·러·일 4강에 빼앗기고 북한은 이들의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와 기업의 대응이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분단경제를 넘어 평화경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다. 대구시민의 평균적 인식이 이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남북평화경제시대 도래는 대구·경북에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다. 다른 지자체처럼 남북경제교류협력관 신설도 서둘러야 한다. 한반도 주변 4강의 국익은 남북분단에 있고, 대한민국의 국익은 남북평화에 있다. 독일통일방안을 설계 입안한 에곤 바르의 말이다. “(독일통일을 준비하면서) 개성공단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다. 개성공단을 따라가라. 제2, 제3 개성공단을 따라가다 보면 평화정착, 경제통일 온다. 그 후 궁극적 통일이 있다.”

변종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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