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김경화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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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7   |  발행일 2018-12-07 제35면   |  수정 2018-12-07
“문화관광 해설, 성악가 경험 살려 유적지 어울리는 곡도 들려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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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을 하고 있는 김경화씨.

성악가(메조소프라노)와 문화해설사. 별로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문화해설을 할 때 아름다운 노래를 곁들여 해설의 이해도와 집중도를 높이는 문화해설사가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김경화씨(57)다. 그는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 중구청 골목해설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성가대 지휘도 하고 있다. 한때는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 성악가였던 그가 문화해설사라는 새로운 길을 나선 것은 이유가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고, 자신의 길을 제대로 찾은 것일 수도 있는 문화해설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통해 그는 인생의 또다른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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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 문화해설사가 경상감영공원에서 경상감영공원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산·대구시립합창단 솔로이스트로 활동
英 유학때 BBC 오케스트라 협연 실력 다져
대구 시니어 은별합창단·교회 성가대 지휘
성대 문제로 성악 접으며 심적고통 겪기도

문화해설사 또다른 직업 기회 최고의 선택
청라언덕 ‘동무 생각’ 도동서원‘봄에 핀…’
노래 들려주면 관광객들 함께 따라 부르기도

외신기자와 경주관광 가는 길 ‘아리랑’선사
외신 타전하겠다며 앙코르 요청한 기억 남아
영어 문화해설사 공부…해외에 널리 알렸으면


▶아직도 음악에 대한 애착이 강한데 성악가의 길을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한 보상이라고 할까요. 음악은 저에게 아주 큰 선물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수업시간이나 체력장 연습 중에 친구들이 지쳐 있을 때 앞에 나가 곧잘 노래를 불러서 친구들의 박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여고생 때 합창단과 중창단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음대 성악과를 지원하게 되었지요. 대학교 다닐 때는 교회성가대 지휘와 입시생 성악레슨 등을 통해 음악전공의 영역을 넓혀나갔고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악가로도 활발히 활동하셨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부산시립합창단과 대구시립합창단에서 솔로이스트로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될 기회가 생겼습니다. 1989년 유학을 떠나 1992년 귀국할 때까지 BBC방송국 오케스트라·ULSTER 오케스트라 등과의 협연, 대학교 연주 등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또 현지인 교회나 단체 등에서 연주를 하면서 실력을 닦아나갔습니다. 2000년대 로얄오페라단의 단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지휘도 하고 있습니다.

“시니어들이 중심이 된 대구 은별합창단의 지휘자로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1999년부터 2016년까지 활동했는데 이 합창단은 전국합창대회에서 대상도 몇 차례 받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호흡을 맞추면서 노래하다보니 마치 한 가족 같았지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행복합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생각으로 지휘자 자리를 그만두었는데 아직도 합창단원들과 개인적인 교류는 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부터 공항교회, 영광교회, 서광교회 등의 성가대도 지휘하고 있습니다.”

▶성대에 문제가 생겨서 성악가의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귀국 후에 다시 대구시립합창단에 들어가려고 오디션을 보는 과정에서 성대에 혹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곧 바로 수술을 받았지만 예전의 목소리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2005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의 오페라 공연이 성악가로는 마지막 노래였습니다. 대학교 때부터 해온 지휘자의 끈은 놓지 않았지만 성악가로서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은 저에게 큰 시련이었습니다.”

▶문화해설사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고 했습니다.

“심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2003년 우연히 대구시 문화관광해설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여기에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해 국내외 여행을 자주 다녔고 역사에도 관심이 있었던 터라 무작정 지원하였지요. 그 당시만 해도 영어를 잘하는 해설사가 적었기 때문에 제가 영어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이 문화해설사로 뽑히는데 도움이 된 듯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는 저에게는 아주 좋은 직업입니다.”

▶문화해설사를 하면서도 나름 마음고생이 있었다고 했는데요.

“그 당시만 해도 문화해설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학까지 갔다왔는데 그 일을 하느냐며 이상한 눈으로 보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우리 지역과 우리나라를 알리는 좋은 일을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했습니다. 문화해설을 하려니 자연스럽게 우리 지역의 문화에 대해 많이 공부하게 되었지요. 우리 지역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국내외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것이 보람있는 일입니다.”

▶노래하는 문화해설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성악가로 오랫동안 활동하다보니 예전의 목소리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인보다는 좀 더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지요. 관광지에서의 문화해설은 물론 대학교 및 중고등학교, 교사연수 등에서 강의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이럴 때 노래를 한두 곡 부르면 분위기가 상당히 좋아집니다. 해설하거나 강의하는 그 문화유적에 어울리는 곡들을 주로 들려줍니다. 청라언덕에서는 ‘동무생각’, 도동서원에서는 ‘봄에 핀 모란꽃을 바라보면서’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 신도청기행에서는 ‘장안사’ 등의 노래를 부릅니다. 제가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를 아는 분들이 따라부르면서 분위기가 고조됩니다. 강의 요청이 들어올 때 노래도 함께 불러달라는 주문도 꽤 많이 들어옵니다. ”

▶문화해설사로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대구시 문화관광해설사와 중구청 골목해설사, 대구시관광협회 해설사로 소속돼 있으면서 대경문화연구원의 신도청기행 팀장, 문화진흥포럼 주관의 팔공산 역사문화탐방 팀장, 문화재청 지원프로그램 국채보상운동 전문강사 등 프리랜서로도 활동 중입니다. 2000년대 초 열린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녹색성장 LED대회에서는 외신기자 가이드 등 영어가이드로도 일했습니다.”

▶문화해설사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았을 듯합니다.

“2011년 대구육상선수권대회 때 외신기자 가이드를 했습니다. 외신기자를 버스에 태우고 경주 관광을 갔을 때 짧은 영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을 불렀을 때 외신으로 타전하겠다며 앙코르를 요청한 기억이 남습니다. 그때 단순한 문화해설사가 아니라 문화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었습니다. 그밖에도 문화해설을 할 때마다 우리 지역 문화를 조금씩 알아가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이것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마 성악가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더 일찍 문화해설사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삶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음악도, 문화해설사도 제가 너무 좋아하는 일이라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대구관광산업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을 듯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대구는 볼 것 없고 먹을 것 없는 도시로 관광객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팔공산·비슬산 등의 등산객들이 좀 있었을 뿐이었지요. 하지만 대구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입니다. 6·25전쟁 때에도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유산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대구 중구청이 선각자 역할을 하였지요. 근대골목을 조성하고 해설사의 설명 등을 곁들여 전국적인 관광지로 성장해 ‘한국관광의 별’로도 선정이 되었습니다. 달성군도 우리나라 5대 서원 중의 하나인 도동서원을 비롯해 사문진나루터, 송해공원, 마비정벽화마을 등의 관광지를 개발해 많은 이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습니다.”

▶관광지가 많아지면서 해설사들도 급증했을 것 같습니다.

“대구육상선수권대회를 기점으로 관광객들이 밀물처럼 몰려온 듯합니다. 관광지가 많아지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아지니까 해설사가 증가하고 바빠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요즘은 각 시·도 자치단체에서도 대구관광을 성공모델로 삼아 벤치마킹을 하러 많이 옵니다. 그렇다보니 현장에서 해설을 주로 하다가 강의 요청이 이어져 강의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영어관광해설사로서의 활동을 강화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좀 더 전문적으로 영어해설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문화해설사 초기에 영어관광해설사가 부족했을 때 어설픈 영어로 외국인을 맞아 해설을 했는데 앞으로는 좀 더 깊이있게 공부해 좋은 해설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역 문화에 대한 공부와 영어공부에 더욱 매진해 지역의 문화를 해외에까지 널리 알리는 해설사가 되려 노력하겠습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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