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문화 담론] 맹목적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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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7   |  발행일 2018-12-07 제39면   |  수정 2018-12-07
남성·여성 혐오 팽배한 ‘男女공감 제로시대’ 탈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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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싱글족에서 벗어나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한집살이로 합가하는 대가족제 회귀 현상도 새로운 생활풍속도다. (영남일보 DB)

한때 미투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등장해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구며 진실게임을 벌이더니 최근엔 맹목적인 남성 쇼비니즘(Chauvinism, 우월주의)이 소름 끼치는 폭력사태를 빚고 있다. 분노 조절을 못 하는 남성 사이코패스가 앞서가던 여성이 길을 막는다는 이유로 끔찍하게 살해한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길거리를 오가던 남녀가 어깨를 부딪친 끝에 남성의 갑질과 폭력으로 이어진 사건도 발생했다. 게다가 사귀던 여친의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에 분노한 남친이 흉기를 들고 상대 여친의 집에 찾아가 일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살인사건으로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신병리학과 사이먼 배런코언 교수는 분노와 폭력을 부르는 맹목적 남성 쇼비니즘을 ‘타인과 교감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바닥난 ‘공감제로(0)’ 상태에서 인간의 잔혹한 악마적 본성이 팽배해지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남성에 의한 여성혐오 살해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세계적인 추세라고 했다. 이른바 페미사이드(femicide, 여성혐오 살해)다.

70년대 개발경제시대 남성 우월주의
아내 권리·의무 통제 폐습으로 이어져
90년대 여권주의·양성평등 젠더문화
2010년대 우먼파워, 남성과 경쟁 시대

타인과 교감·배려하는 능력 바닥 상태
분노·폭력 악마적 본성 남성 쇼비니즘
동서양 불문 여성혐오 살해 확산 추세

독신여성·워킹맘, 정신·육체적 불안감
부모형제 함께 사는 대가족제로 회귀
정서적 안정감 되찾고 위안 받는 대안


남성에 의한 여성혐오 살해는 자녀와 함께 사는 가정에서도 결코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 페미니즘(feminism, 여권주의)이 가장 보편화된 미국의 경우 페미사이드의 30%가 남편의 가정폭력에 의해 발생한다는 통계수치도 나와 있다. 상습적인 가정폭력은 어쩌면 가부장제 사회인 한국이 더 심한지도 모른다. 남편의 폭력에 견디다 못한 아내가 이혼하면서 법률적인 자녀 양육권을 차지하자 평소 아내와 자식을 성과 생식을 위한 소유물로 여겨온 남편은 증오와 원한에 사무친 나머지 별거 중인 아내를 찾아가 끔찍하게 살해했다. 오죽했으면 살아남은 자식들이 짐승만도 못한 친아버지를 엄벌해 달라고 호소했을까.

또한 반생을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오던 중년 여성이 우울증과 강박관념에 시달리다가 잠자는 남편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경찰에 자수했다. 보기 드문 남성혐오 살해다. 가해자인 여성은 법정 진술에서 차라리 남편의 폭력이 없는 감옥살이가 행복하다고 말해 듣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봉건시대의 잔재가 부른 사회적 병리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상징이던 옛 유교문화의 가부장제는 그나마도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는 엄격한 법도로 가정의 질서를 지켜왔다. 그러나 1970년대 개발경제시대 산업현장에서 육체적으로 강한 남성을 우선시하는 사회질서가 정착되면서 남성 우월주의에 따른 갑질 문화가 남녀 갈등의 주요 문제로 등장했다. 이는 남편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회적 가부장제를 대물린 풍습이기도 했지만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키우는 아내의 권리와 의무를 남편이 통제하는 폐습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자식들에게도 아버지의 존재는 엄부(嚴父)의 상징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5년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여권주의를 주창하고 천부적인 양성(兩性) 평등을 위한, 이른바 젠더(Gender) 문화를 채택하면서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 비로소 여성의 사회적·법률적·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태동했다. 이른바 커리어우먼, 워킹맘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고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6년엔 우리나라도 우먼파워를 과시하듯 여성 고용률이 사상 처음으로 50%대를 넘어 사회 곳곳에서 남성과 경쟁하는 시대를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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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성을 얕잡아 보고 차별하는 남성 쇼비니즘의 관습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부질없는 남녀 간 성대결이 노출되기 일쑤였다. 남성을 ‘한남충’, 여성을 ‘된장녀’로 비하하고 서로의 성적 개념이 다른 입장을 인정하지 않은 데서 서로가 혐오하는, 이른바 분풀이성 감정 배설로 갈등만 깊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남성혐오와 여성혐오로 갈라져 패싸움까지 벌이는 형국도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약한 독신 여성들과 어린 자녀를 둔 워킹맘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남성 쇼비니즘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차라리 부모형제와 같이 살면 어떨까. 불안에 떨며 외롭게 따로 사느니 믿고 의지할 데라곤 한 핏줄을 나눈 부모형제밖에 없지 않은가. 정신적 안정감을 되찾고 위안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떠오른 생각이 공감 제로시대에서 탈출하는 선택이었다. 결혼이나 분가로 두집살이, 세집살이하던 핵가족이 한집살이로 합가(合家)하는 대가족제의 회귀(回歸) 현상이다. 병든 사회의 고단한 혼밥, 싱글족에서 벗어나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생활풍속도다. 그렇게 3, 4대가 한데 모여 살아도 옛날의 다산형 시대와는 달리 일가족 통틀어 10명 미만이다. 새로운 대가족체계이다.

모처럼 어우러져 함께 부대끼며 살다보면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사라졌던 부모자식 간의 가족애와 효(孝) 문화도 되살아나고 형제 간의 우애도 두터워지게 마련이다. 기온이 떨어지는 계절. 새벽 같이 일어난 은퇴 가부장은 노구에도 아랑곳 없이 출근과 등교를 준비하는 자식, 손주들을 돕고 “조심해서 다녀오라”며 배웅하는 것이 하루 일과와 다름없는 여생의 낙이라고 했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승합차를 함께 타고 여행을 떠나 입소문으로만 알려진 호젓한 식당에서 오순도순 둘러앉아 시골밥상을 즐기는 것도 가족 힐링의 한 방법이다. 웃음꽃이 활짝 피는 화목한 가정에 가훈(家訓)을 하나 곁들인다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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