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로 포장된 자동화시스템은 모두에게 평등한가…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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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8   |  발행일 2018-12-08 제16면   |  수정 2018-12-08
“19세기 미국 공공정책인‘구빈원’은
빈민 구호의 목적으로 빈민층을 격리
현재 자동화 복지시스템과 다르지 않아
‘디지털 구빈원’도 노동·육아·지출 감시”
첨단기술로 포장된 자동화시스템은 모두에게 평등한가…
사회복지 영역에서도 자동화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아동수당 사전신청이 시작된 지난 6월20일 대구시 달서구 월성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한 시민이 신청서 작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날 아동수당 신청 온라인 접수가 이뤄지는 ‘복지로’ 홈페이지와 복지로 모바일 앱은 접속자가 몰리면서 한때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지연’ 상태를 보였다. <영남일보 DB>
첨단기술로 포장된 자동화시스템은 모두에게 평등한가…
자동화된 불평등//버지니아 유뱅크스 지음/ 김영선 옮김/ 북트리거/ 400쪽/ 1만6천800원

디지털 기술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자리잡고 있다. 서비스에서도 면대면이 아닌 무인화와 자동화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무인 카페, 무인 편의점까지 등장했다. 민간 영역에만 디지털 기술이 파고든 건 아니다. 공공 분야에서의 의사 결정도 자동화 기술을 적용하고, 전산화된 시스템을 도입해 진행하고 있다. 국가에서 하는 복지정책에도 온라인을 통한 접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복지포털 사이트 ‘복지로’에서는 아동 수당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기초연금, 저소득층의 주거급여, 교육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혁신적이라고 볼 수 있다. 관련 제도를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반대되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책의 저자 버지니아 유뱅크스는 디지털 기술이 오히려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단단하게 하고, 사적·공적 복지를 약화시킨다고 본다. 정보에 접근하기 쉽고, 물적 자원이 있는 이들에게는 유용하지만 그렇지 못한 소외계층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을 부적격자로 분류해 처벌적 공공 정책과 집중 감시 대상으로 지목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저자는 “소외집단은 공적 혜택에 접근하거나 치안 유지가 잘 되는 지역을 통행하거나 의료보험 제도 안으로 들어가거나, 국경을 넘을 때 더 높은 수준의 데이터 수집 요구에 맞닥뜨린다”며 “수집된 데이터는 이들을 의심과 추가 조사의 표적으로 삼는데 이용되면서 소외 집단의 주변성을 강화하는 작용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가난한 이들이 표적이 되는 자동화 시스템의 실체를 드러내 보인다. 관련 법 집행부터 의료보험, 사회복지사업까지 미국의 공공정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자동화 기술이 시민권, 인권, 경제 형평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준다. 책은 저자가 미국의 공공정책에 도입된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많은 데이터 가운데 숨겨져 있는 유용한 상관관계를 발견해 추출한 정보로 의사 결정에 이용하는 과정), 정책 알고리즘, 위험 예측 모형의 실상에 대해 조사한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디지털 구빈원’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19세기 가난한 노동자 계층을 격리했던 미국의 구빈원과 현재의 자동화된 복지 시스템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단어다. 당시 구빈원은 빈민 구호라는 목적이 있었지만, 내부 환경은 열악했다. 당시 개혁가들은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부유한 가정과의 접촉을 통해 구제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견습생, 가정부나 개척자 농장의 무임금 노동력으로 보내졌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추적, 자동화된 사회복지서비스도 마찬가지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첨단 기술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또한 소외계층을 통제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디지털 구빈원도 이들의 노동, 육아, 지출을 감시하면서, 요구하는 사항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하고 범죄자 취급을 한다고 보고 있다.

책에는 인디애나주의 복지 수급자격 판정 현대화 실험, 로스앤젤레스의 노숙인 통합 등록 시스템, 앨러게니 가정선별도구 등의 사례를 제시한다. 복지 서비스 신청을 온라인으로 받아 적격성 판정을 자동화하는 인디애나주의 실험은 100만 건에 대해 거부 통지를 내보내는 사태로 이어졌다. 자동화 시기에 빈곤층을 위한 의료보험 혜택인 메디게이트의 혜택을 상실한 소피라는 소녀는 직접 휠체어를 타고 주지사를 찾아가고 사회복지정책실장과 만난 후에야 보험 혜택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저자는 디지털 구빈원의 영향력이 단지 소외 계층을 감시하는 수단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 경고한다. 국가적 재앙이나 정치체제의 변화가 디지털 구빈원의 감시능력을 누구에게나 사용하도록 정당화할 것이라는 우려다. 저자는 “디지털 구빈원은 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문직 중산층 삶의 전 영역을 조사하도록 갑자기 ‘스위치가 켜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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