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대한민국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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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8   |  발행일 2018-12-08 제23면   |  수정 2018-12-08
[토요단상] 대한민국의 1년

일요일인 지난 2일 점심식사를 위해 서울 종로의 음식점을 찾았다. 요즘엔 뜸했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즐겨 가던 김치찌개 집이다. 음식도 맛있지만 휴일에도 문을 여는, ‘보증수표’와도 같은 곳이다. 손님도 늘 붐볐다. 그런데 웬걸, 문을 걸어 잠갔다. 부근 닭칼국수 집으로 옮겼다. 이 집 역시 휴일 불문, 손님들로 북적대던 종로의 유명 맛집이었다. 역시 문을 닫았다. 근처 곰장어집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줄을 서야만 했던 집이 이렇게 바뀌었다. 평일인 엊그제 닭칼국수 집을 다시 찾았다. 휴일에 문을 닫은 이유를 물었다. “장사도 시원찮고, 인건비도 많이 올라서요.”

문재인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직격탄을 맞은 곳이 이 집만은 아니다. 상당수 음식점은 값도 올렸다. 500~1천원 정도씩 인상하고 기존 메뉴판을 고쳐 놓은 집이 많이 눈에 띈다. 음식점 직원이 줄어든 것도 1년 전과 확연히 다른 변화다. 5명이던 곳은 3명, 3명이던 곳은 2명이 됐다. 누군가는 직장을 잃었다. 그 자리를 가족이 메웠거나 그냥 비워뒀다. 이런 영세 식당을 이용하는 손님들의 대기 시간은 그만큼 길어졌다. 웬만한 곳마다 ‘추가 반찬은 셀프’라거나 ‘물은 셀프’라는 안내문이 늘어난 것도 최저임금 인상과 무관치 않으리라.

몇 주 전 친구와 골프를 쳤던 날도 1년이란 변화를 실감한 계기였다. 운전기사가 있는 친구였다. 이번에는 직접 차를 몰고 나타났다. 1주일 근로시간이 52시간(주 52시간제)을 넘지 못하니 주말엔 운전대를 수십 년간 놓았던 그 친구의 몫이 됐다. 아니면 주말 운전기사를 한 명 더 써야 하는데 그거까진 여의치 않단다. 주말만 그런 것이 아니다. 평일 저녁에도 운전기사는 약속 장소에만 데려다 주고 바로 퇴근한다. 주 52시간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친(親)노동정책이 개인 일상의 삶에까지 깊숙하게 파고든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주 52시간 근로제가 뿌리내리면 근로자의 삶의 질이 나아져야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문재인정부가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2018년 12월, 정부는 최초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을까.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린 결과, 직장에 남아있는 근로자의 소득은 올라갔다. 그런데 이 정책으로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의 소득은 ‘0’이 됐다. 주 52시간으로 ‘생존’ 직장인에게는 여유로운 저녁 시간이 생겼다. 이들에겐 이처럼 좋은 정책이 없으리라. 그러나 최저임금 수준의 벌이밖에 없었던 이에겐 ‘시간은 있는데 돈은 없는’ 저녁이 됐다. 초과근무, 휴일 수당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부작용은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부작용 때문에 정책을 집행조차 못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다.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인가. 1년 전과 삶의 질을 비교했을 때 좋아진 쪽과 나빠진 쪽이 있을 것이다. “돈이 좀 부족해도 여유 있는 저녁시간을 가질 거야”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녁시간을 일부 희생해서라도 돈을 더 벌 거야”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구가 다 같을 수는 없다. 이 다양함을 정부가 하나의 기준을 마련해 정책으로 통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사(使)와 노(勞)가 갑(甲)과 을(乙)의 전형적인 관계였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지금도 그런 회사나 영업장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둘의 관계가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년간 특히 그랬다. 노동자의 의사가 깡그리 무시된 계약관계는 이제 ‘역사’가 돼 가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각종 소통수단의 발달로 음지의 부조리가 설 땅은 무섭게 좁아지고 있다. 이런 시대 흐름에 비춰볼 때 정부 정책도 획일적 강요여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수요와 다양한 공급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 역할은 이런 것을 따르라가 아니라 노와 사가 자율적인 결정을 하도록 돕는 데 그쳐야 한다. 1년 전보다 삶이 팍팍해졌음을 피부로 느낀다. 각종 경제지표도 그렇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다. 유능한 정부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유연하기라도 해야 한다. 2019년, 나은 삶을 기대해본다.

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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