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 대구 .1] 전통음악의 산실

  • 임훈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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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3   |  발행일 2018-12-13 제14면   |  수정 2018-12-24
어진 원님 기리던 날뫼북춤…지친 농민 애환 달랜 고산·욱수농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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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무형문화제 제2호 날뫼북춤 2대 예능보유자 윤종곤씨가 북을 치면서 날뫼북춤의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다. 윤종곤씨를 비롯한 보존회원 40여 명은 날뫼북춤의 전통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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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날뫼북춤 공연이 열리고 있다. 날뫼북춤은 북이 주인공인 12마당 공연으로 이뤄져 있다.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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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날뫼북춤 공연이 열리고 있다. 날뫼북춤은 북이 주인공인 12마당 공연으로 이뤄져 있다. <영남일보 DB>

대구는 지난해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네트워크’의 일원이 됐다.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도시 간 협력으로 경제·사회·문화적 발전을 장려하는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의 사업 중 하나다. 유네스코는 2004년부터 디자인, 음식, 음악, 미디어아트 등 7개 분야를 정해 전 세계 70여 개국의 도시들을 창의도시로 지정했다. 국내에서는 서울(디자인), 이천(공예·민속예술), 부산(영화) 등이 창의도시로 지정됐으며, 대구는 2017년 10월 음악창의도시에 지정됐다.

대구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대구의 문화산업 수준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 브랜드를 활용한 도시 이미지 향상 및 관광수입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에 영남일보는 대구의 음악과 관련한 주요 스토리를 연재하면서 대구의 음악적 역량과 전통 및 관련 인물을 재조명한다.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 1편은 대구 음악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다.


#1. 우수한 음악자산 보유 인정받아

대구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지정된 이유로, 대구가 지닌 음악자산의 우수성을 꼽을 수 있다. 대구는 날뫼북춤과 고산농악 등의 전통음악을 꾸준히 계승·보존해온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낙동강 사문진 나루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피아노를 들여오는 등 근대음악이 유입된 상징적 장소가 대구다. ‘고향생각’과 ‘가을밤’을 각각 작곡한 현제명과 박태준 등의 작곡가들이 대구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밖에도 대한민국 최초의 바리톤 독창자 김문보를 비롯해 한국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대구와 인연을 맺었다. 1946년 대구에서 문을 연 클래식 음악감상실 ‘녹향’ 또한 6·25전쟁 당시 피란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며 수많은 문학·예술작품의 탄생 배경이 됐다.

특히 대구는 선사시대 때부터 이뤄낸 독특한 문화를 시작으로 전통음악을 계승해 지역 음악의 토대를 만들었다. 대구의 전통음악은 무형문화재 전수자를 통해 꾸준히 전승되고 있으며, 각 전통음악 보존회의 정기공연 등을 통해 지역민과 소통하고 있다. 민중의 정서를 강한 북소리로 풀어내는 날뫼북춤과 더불어 농사일에 지친 농민들을 북돋워주던 고산농악과 욱수농악, 공산농요 등이 대구의 대표적인 전통음악으로 손꼽힌다.


#2. 비산농악에 뿌리 둔 대표음악

대구의 대표적 음악 중 하나가 날뫼북춤이다. 대구시 서구 비산동을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는 대구시무형문화재 제2호 날뫼북춤은 지역의 전통음악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다. 사람의 심장박동처럼 힘찬 북소리와 어우러지는 날뫼북춤의 춤사위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날뫼북춤은 같은 지역의 전통음악인 비산농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날뫼북춤의 ‘날뫼’는 ‘나는 산(비산·飛山) 설화’에서 비롯됐다. 아득한 옛날 달내(현재의 대구 달서천)의 냇가에서 빨래하던 한 여인이 서쪽 하늘의 요란한 풍악소리를 듣고 하늘을 바라봤다. 산이 날아오는 것을 본 여인이 놀라 “동산이 날아온다”고 비명을 지르자 산이 떨어져 동산이 됐고, 이 전설이 바로 비산동 지명의 유래가 됐다. 비산동 중심부의 언덕에 자리한 비봉초등학교 주변이 비산 터로 알려져 있지만 개발로 인해 옛 비산의 위용을 찾기는 힘들다.

비산농악은 농사일로 힘들었던 농민을 위로하고 수확의 즐거움을 나누던 풍물놀이의 한 종류다. 비산동 사람들은 매년 음력 2월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풍물놀이를 펼치며 풍년을 기원하고 노동 의지를 다졌다. 흥미로운 점은 비산농악으로 유명한 비산동 일원에는 달성군과 금호강 사이의 넒은 들을 가로지르는 ‘서울 나들길’이 나 있었다는 것. 이 길은 ‘대구 관도(官道)’로도 불렸는데, 경상감사가 부임할 때와 한양으로 떠날 때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관도가 지나던 원고개(현재 비봉초 주변)의 백성들이 음식을 마련해 그동안 수고한 원님의 노고를 달래기 위해 풍물놀이를 선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중 백성의 존경을 특별히 받았던 한 원님이 있었는데, 이 원님이 임기 중 세상을 떠나게 되자 원고개 주변에 무덤을 쓴다. 이후 백성들은 매년 봄과 가을마다 원님을 기리는 제사를 지냈다. 이때 백성들이 북을 치며 춤을 추던 것이 날뫼북춤의 기원이다.

날뫼북춤의 복색과 편성은 비산농악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고깔과 상모를 쓰고 화려한 색채의 의상을 갖춰 입는 비산농악과 달리 날뫼북춤의 복색은 수수한 편이다. 흰 옷에 녹색조끼를 입고 머리에는 흰 띠를 두르는 것이 기본이다. 최근에는 색깔이 들어간 머리띠를 두르기도 한다. 날뫼북춤의 춤사위는 경상도 특유의 덧배기 가락 위주로 구성돼 있으며, 강한 북소리 덕분에 힘차면서도 즐거운 느낌을 선사한다.

춤의 이름처럼 날뫼북춤의 주인공은 단연 북이다. 날뫼북춤 2대 예능보유자 윤종곤씨는 “(날뫼북춤은) 북이 주인공인 12마당으로 이뤄져 있다. 날뫼북춤에도 꽹과리와 징이 사용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반주를 위해서다. 예로부터 경상도 지역에서는 망자(亡者)를 위한 음악을 선보일 때 금속으로 만든 악기의 연주를 피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날뫼북춤에는 원칙적으로 인원 제한이 없다. 윤씨는 “날뫼북춤의 편성은 무대에 따라 한 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기까지 무대의 성격에 따라 인원이 편성된다. 통상적으로는 10대 이상의 북이 사용된다. 1992년 대구에서 열린 제73회 전국체전에서는 480여 명이 동시에 날뫼북춤을 선보인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날뫼북춤을 비롯한 대구지역 전통음악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잠시 주춤하는 듯했지만 이후 꾸준한 전승 및 보존활동으로 옛 가락과 춤사위를 이어가고 있다. 날뫼북춤 역시 1대 예능보유자 김수배 선생(2006년 작고) 등 여러 인물들의 노력 덕분에 원형을 보존할 수 있었다. 김수배 선생은 청도군 각북면 출생으로 16세 때 비산동에 정착했으며 전통음악에 강한 애착을 보인 인물이다. 그는 1947년 동료들과 함께 농악대를 만들었으며, 1953년 날뫼북춤 보존의 모태가 된 비산농악대를 조직했다. 1987년 날뫼북춤 연구원이 조직되면서 조직적 전승의 바탕이 마련됐다. 현재 예능보유자 윤종곤씨와 보존회원 40여 명이 날뫼북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3. 지역 곳곳 명맥 이어온 농악들

대구지역에서는 날뫼북춤 외에도 다양한 전통음악 유산이 보존·계승되고 있다.

수성구 대흥동을 중심으로 전승 중인 대구시무형문화재 제1호 고산농악 또한 대구의 대표적인 전통음악으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대흥동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 동제를 지낼 때 농악을 펼쳤다. 고유의 전통적 아름다움과 향토색 짙은 농악을 유지하고 있다. 농악대 편성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쇠 3명(상쇠 1명·종쇠 2명), 징 6명, 북 10명, 장구 10명, 소고(상모) 14명, 농기수 3명 등으로 구성된다. 농악의 흥을 돋우는 잡색으로는 포수, 양반, 색시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다른 농악에 비해 인원이 많은 편으로 고산농악만의 고유 특징이다.

대구시무형문화재 제3호 욱수농악은 수성구 욱수동을 중심으로 전해지고 있다. 욱수농악은 마을 동제당에서 정월 초사흘날마다 행해지는 ‘천왕받이굿’에서 파생한 농악이다. 원래 욱수농악은 동제당에서 신내림을 축원하는 천왕받이굿과 지신풀이, 마당놀이가 하나의 틀로 전승돼 왔다.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고 산불 예방이 강조되면서 동제와 달불놀이 등은 중단됐지만 농악의 전통만큼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도 동구 공산동 일원에서 이어져 오고 있는 농업 노동요인 대구시무형문화재 제7호 공산농요 등 다양한 음악적 전통이 대구 곳곳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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