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1%의 잔치로 끝난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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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4   |  발행일 2018-12-14 제22면   |  수정 2018-12-14
1% 최상위층 재산 급증세
2030년쯤 세계총액의 65%
대륙별 소득불균형도 악화
그러나 G20은 심각성 외면
공정분배가 인류미래 보장
[정문태의 제3의 눈] 1%의 잔치로 끝난 2018년
국제분쟁 전문기자

밀린 일은 태산 같고 괜스레 마음만 바빠지는 12월이다. 세밑을 말미삼아 오랜만에 방콕 외신판 친구들과 커피숍에 둘러앉았다. “부지런히 달려왔는데 늘 이맘때면 주머니는 비고 속은 휑하니…” 기사 마감 탓에 좀 늦게 온 독일 친구가 넋두리부터 늘어놓았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외신기자 경력 25~35년쯤 되는 독일, 프랑스, 남아프리카, 태국, 일본 출신들이니 저마다 벌이가 세계 평균은 웃돌 법도 한데 정작 먹고살기가 만만찮다는 뜻이다. 한눈 안 팔고 한 길만 달려온 인생들 앞에 펼쳐진 이런 시원찮은 현실은 이제 세계적인 현상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왜곡된 경제 탓이다. 최근 국제 금융회사 크레딧 스위스가 펴낸 ‘2018년 세계의 부 참고자료서(Global Wealth Databook 2018)’를 밑감 삼아 이 세상을 둘러보자. 그 고갱이는 소득불균형이다. 예컨대 2016년 소득 최상위층 1%인 50만명이 국부의 58%를 지녔던 태국은 2018년 66.9%로 불어나면서 경쟁국 러시아와 인도를 제치고 소득불균형 세계 1위로 올라섰다. 태국의 소득 최하위층 10%는 아예 재산이 없고, 50%에 이르는 하위층은 기껏 국부의 1.7%를 지녔다. 7천만 태국 인구의 70%인 5천만명의 재산을 합쳐도 국부의 5%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태국을 벗어나 국제사회로 눈길을 돌리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2018년 10억달러(1조원) 넘는 재산을 가진 이른바 스리콤마클럽(Three-Comma Club)에 이름을 올린 2천208명 재산을 합하면 9조1천100억달러에 이른다. 이건 경제규모 세계 3위인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5조170억달러의 두 배에 가깝다. 2018년 세계 최고 갑부로 떠오른 아마존닷컴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의 재산 1천120억달러는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의 한 해 국내총생산을 웃돈다. 제프 베조스, 빌 게이츠, 워런 버핏을 포함한 10대 갑부의 재산을 합한 7천450억달러는 경제규모 20위인 스위스의 국내총생산과 맞먹고, 세계 인구의 반인 40억명 재산을 웃돈다.

게다가 2015년부터는 1% 최상위층 재산이 세계 총인구 99%, 다시 말해 76억명 재산보다 많아졌다. 영국 하원보고서는 2030년이면 1% 최상위층 재산이 세계 총액의 65%로 늘어날 것이라 경고했다. 실제로 2008년부터 지난 10년 동안 1% 최상위층의 소득이 연간 6% 불어난 데 비해 나머지 99%는 3% 증가에 그쳐 그 격차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경제적 불평등과 불균형은 대륙별로 따져 봐도 마찬가지다. 세계 국부를 모두 합친 317조 달러 가운데 미국이라는 한 나라가 30% 웃도는 98조달러를, 유럽이 27% 가까운 85조달러를 각각 차지했다. 그 나머지에서 아시아(중국 제외)가 20%, 남미가 8% 그리고 아프리카가 2.6%를 나눠 가졌다. 세계 인구에서 18% 남짓한 미국과 캐나다, 유럽이 60% 웃도는 이 세상 재산을 쥐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처럼 개인, 사회, 국가, 대륙별로 여태 인류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지독한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불균형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구적 규모의 빈곤 문제, 그 뿌리가 드러난 셈이다. 그럼에도 지난 12월 초 열린 G20 정상회의, 세계총생산의 85%를 쥔 20개 나라 정상들은 이 인류사적 문제에 눈을 감았다. 공동선언문 전문이란 걸 훑어보면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불균형 문제를 풀어갈 핵심인 분배(distribution)란 단어는 딱 한 번 등장한다. 대신 권력과 자본의 현상유지라는 본질을 숨긴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지속가능(sustainable)이란 단어를 27번이나 갖다 붙였다. 세계시민사회야 굶어죽든 말든 20개 나라만 잘살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2018년도 이 세상은 1%만의 잔치로 끝났다. 무슨 시새움이니 강짜 따위가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불균형에 따른 빈곤문제가 이미 발화점을 넘었다고 오래전부터 숱한 연구자들이 경고해왔다. 이 일그러진 현실을 바로잡지 않고는 인류의 미래가 없다는 말이다. 세계시민사회가 염원하는 공정한 분배를 생각하며 독자들에게 세밑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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