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맹의 철학편지] “우리는 SNS의 거대한 세상속 함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대한 무덤속에 갇혀 있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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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4   |  발행일 2018-12-14 제39면   |  수정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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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 모두의 휴대폰에는 많은 사진들이 들어가 있을 거야. 휴대폰의 보편화로 이 시대는 엄청나게 많은 사진 ‘자료’를 가지게 되었지. 그러나 내가 언젠가 너에게 말했듯이 이 시대는 자기 사진이 없는 시대가 될지 몰라. 종이 사진으로 인화하기를 멈춘 이후 우리의 기록은 저장된 자료로만 남아 있을 뿐이야.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도 몇 장의 사진을 우리에게 남겼어. 하지만 100년 후 우리의 후손들은 도무지 찾을 길 없는 우리의 모습을 찾기 위해 ‘빅 데이터’를 뒤져야만 될지도 몰라. 전자메일, 페이스북, 카톡 등에 심어진 우리의 얼굴들이 어느날 유령처럼 사라진다고 생각해보렴. 물론 우리의 모습은 과거 기록의 집적인 빅 데이터 속에 남아 있을 거야. 그러나 빅 데이터 속의 얼굴들은 주체로서의 나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분산된 기호로 남아 있을 뿐이겠지. 누군가가 나를 찾아주지 않는 이상 나는 거대한 데이터의 무덤 속에 잠겨 있을 것이고.

우리는 마치 거대한 세상 속에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거대한 무덤 속에 갇혀 있는지도 몰라. SNS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세상이 다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을 거야. 물론 그 지식과 주장들이 내가 보지 못한 부분들을 알게 해주기도 하지. 인터넷 포털들도 빅 데이터로 고른 따끈한 뉴스를 친절하게 올려주고 우리가 그를 소모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어. 그러나 휴대폰 속 그 많은 지식들과 주장은 한낱 자료일 뿐이고 나의 것이 없어. 제공된 지식과 주장에 우리의 개인적 감상을 ‘좋아요’나 ‘싫어요’ 같은 이모티콘으로 덧붙이는 것 말고는 말이야.

인터넷의 가상공간이나 빅 데이터의 공간은 우리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동시대적’이라는 가정을 깔고 있는 것 같아. 그러나 우리는 동시대인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그건 이데올로기일 따름이야.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나는 나의 현재에 대한 상상적인 동시대인일 뿐이다. 내 언어들, 유토피아들, 체계들(여러 가지 허구들)의 동시대인, 요컨대 그 신화계 또는 철학의 동시대인이다. 즉 환상적인 광경 속에 살고 있으므로 바로 내 역사의 동시대인은 아니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우리는 상상적인 동시대일 뿐이라는 것이야. 그러나 이 상상적이라는 말이 전적으로 부정적인 말인 것만은 아니란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삶의 조건이기 때문이지.

프랑스 철학자 알튀세르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장치 속에서 우리가 동시대적이라는 상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야. 그런데 이 이데올로기는 동일하거나 동시적인 것이 아니라 대리석처럼 여러 공간과 시간 속에서 절단되고 가공돼 각자 앞에 놓여진 하나의 구조물이라는 것이지. 내가 사진을 찍음으로써 나의 시간을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빅 데이터가 동시대의 경향과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 것 등이 모두 이데올로기적 상상일 뿐이라는 것이겠지. 물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인식에는 계급에 대한 사고가 깔려 있어.

어쨌든 태형아,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상상과 ‘비동시대성’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삶의 조건이라면 그것을 제대로 절단해내고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야. 우리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일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빅 데이터로 역사를 사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만이 아니야.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지점에서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지. 난 그것이 철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SNS에서 가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내 이야기가 양비론처럼 들릴지도 모르겠구나. 어떤 이야기 서사도 의미 없는 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해. 문제는 그 서사가 가진 적대적 감정과 인과관계를 절단해내고 그것을 다른 이데올로기적 절단물과 대결하게 하는 것이지. 그건 비동시대적인 것들을 동시대적으로 비교하는 거지.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를 당당하게 내뱉는 사람들을 보면서 살짝 마음이 상해 오늘은 좀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구나. 아무튼 딴 세상에서 온 듯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너무 화내지 말고 그의 이야기를 잘 도려내서 잘 정리해줘.

시인·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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