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유권자는 준 적 없는 ‘셀프면죄부’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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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7   |  발행일 2018-12-17 제30면   |  수정 2018-12-17
뚜껑열린 한국당 인적청산안
보수몰락 중심 TK정치인도
책임은 다른지역과 비슷하게
포함안됐다고 구태 반복하면
국민이 선거로 직접 심판할것
[송국건정치칼럼] 유권자는 준 적 없는 ‘셀프면죄부’

자유한국당에서 이른바 ‘살생부’가 나돌던 지난주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한 포럼에 참석해 “주말쯤 발표될 명단을 보면 앞으로 당내에 계파를 주도하는 인물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실제로 비대위와 조강특위는 지난 주말에 친박계 핵심 홍문종, 비박계 좌장 김무성 의원을 포함해 현역 국회의원 21명의 당협위원장 자격을 박탈하거나 향후 공모대상에서 배제시켰다. 이 상태라면 이들은 2020년 4월 총선 때 재공천에서 원천배제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보수정치의 몰락 이후 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책임을 묻는 조치가 내려진 셈이다.

하지만 국민, 특히 보수유권자의 눈높이엔 모자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물갈이 대상 중 상당수가 이미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거나 각종 위법행위로 기소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내년 2월에 들어설 새 지도부가 당 화합을 명분으로, 혹은 자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살생부를 찢어버릴 수도 있다. 여기다 옥석을 제대로 가려냈는지도 따져볼 대목이다. 조강특위는 2016년 총선 공천파동, 최순실 사태와 국정실패, 보수정당 분열,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 등 네 가지 사안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골라냈다고 밝혔다. 무능과 탐욕으로 보수의 몰락을 부른 이같은 ‘4대 참사’는 서로 연결돼 있다. 20대 총선 패배로 박근혜정부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면서 국정농단 파문에 보수 전체가 휩쓸려갔다. 그 여파가 두 개의 보수정당 체제, 그리고 잇단 선거 참패다.

한국당 현역 국회의원 112명(지역구 95명, 비례대표 17명) 중 이번에 인적청산 대상이 된 21명을 제외하곤 ‘4대 참사 책임론’에서 과연 자유로울까. 참사 별로 무겁고 가벼움은 있지만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인물은 없다.(한국당 밖으로 나간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지만 일단 논외로 친다) 대구·경북의 한국당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총선 때 ‘배신의 정치’를 찍어내고 ‘진박’을 심겠다며 청와대 하명(下命)공천 칼을 휘두른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부터, 참사 때마다 지역의 보수정치 세력이 중심에 있었다. 실제로 조강특위는 책임여부를 어느 시점부터 따질지 논의하다가 2016년 총선 과정의 계파 갈등과 낙하산 논란부터 당 몰락이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대구·경북의 국회의원 25명 중 한국당 소속은 20명이다. 이 중 5명이 당협위원장 자격 박탈(이완영·곽상도·정종섭)과 추후 공모대상 배제(최경환·김재원) 조치를 당했다. TK 물갈이 비율이 25%로, 전국 평균 22%(지역구 95명 중 21명)와 엇비슷하다. 대구에서 3선 국회의원(비례대표 포함 4선)을 지낸 이한구 전 위원장처럼 당을 휘저어 놓고 정치권에서 사라져버린 인물은 어쩔 수 없어도, 현역 TK 의원들에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거란 예상은 일단 빗나갔다. 조강특위는 그동안 기득권이나 당 강세 지역에서 안주해 온 다선 의원들에 대해선 더 엄정한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별로 적용하지 않았든지, 방어막이 워낙 셌든지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살아남은 의원들이 마치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지난 과오들을 망각한 채 다시 정치적 웰빙 생활을 즐기는 상황이 올지 걱정이다. 최근 문재인정부의 잇단 실책 반작용으로 한국당 지지율이 조금 오르자 자기들의 노력 때문이 아님에도 과거의 영화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기에 더욱 그렇다. 김병준 위원장이 대대적 인적청산을 예고했던 모임은 재경 출향인들이 만든 ‘대경 선진화 포럼’이다. 김 위원장이 2차(전당대회), 3차(2020년 총선) 인적청산 필요성을 설파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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