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문제는 선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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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7   |  발행일 2018-12-17 제30면   |  수정 2018-12-17
선거가 밥주냐라고 하지만
경제 살리는 것은 선거제도
소선거구제, 강자의사 관철
빈자와 약자 외면되기 쉬워
민의 반영하는 방향 선택을
[아침을 열며] 문제는 선거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나라의 의제로 등장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면서 국회에서 단식농성한 끝에 여야 5당이 1월까지 선거제도를 개편하겠다고 합의했다. 부디 여야 5당이 당리당략을 버리고 오직 국민을 위해 보다 민주적이고 민의를 잘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도출해내기를 기대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무엇인가. 총선에서 각 정당이 얻은 표에 비례하여 국회의원을 뽑자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고, 유권자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인데도 현행 선거제도는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의 소선거구제에서는 다수 후보가 난립하는 경우 표가 분산되어 심지어 20~30%의 지지율로 당선되는 결과가 나온다. 그러면 70~80%의 민의는 사표(死票)가 되어 연기처럼 공중에 사라진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으나 그 수가 300명 국회의원 정수 중 47명에 불과하여 사실상 비례대표의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47명의 비례대표는 여성, 장애인, 기타 사회적 약자를 최대한 우선 배치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약자를 골고루 대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부자· 강자에게 유리하고 이들은 과잉 대표되는 반면, 빈자·약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과소 대표되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니 국회에서 부자, 강자, 대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법률이나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률이 통과되기는 낙타가 바늘 귀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또한 253개 지역구의 지역이기주의는 잘 관철되는 반면, 그보다 더 중요한 국가적 의제는 소홀히 되는 폐단이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국가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것이 임무이지 지역구의 이익을 챙기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지역에 각종 사업을 유치하고 예산을 많이 따오는 국회의원이 유능한 것으로 치부되고 재선에도 유리한 것이 우리 선거제도의 고질적 병폐다.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정당 득표율과 국회 의석 점유율 사이에 큰 괴리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2016년에 치른 2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민주당은 25.5%의 정당 득표율로 41%(123석)의 의석을 차지했고,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33.5%의 정당 득표율로 40.7%(122석)의 의석을 차지했다. 정당 득표율에 비해 각각 47석, 22석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이런 과잉 대표의 뒷면은 군소 정당의 과소 대표다. 정의당은 정당 득표율(7.2%) 비례라면 21석을 얻어야 했지만, 실제 의석수는 6석에 불과했고, 국민의당도 정당 득표율 26.7% 비례라면 80석을 확보해야 했지만, 실제 의석수는 38석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거대 정당은 과잉 대표되고 군소 정당은 과소 대표되고 있다. 잘못된 선거제도 때문에 민의 무시, 민주주의 훼손이 심각하다. 손학규·이정미 대표가 항의할 만하다.

사람들은 살기 바쁘니 정치를 멀리하고, 정치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선거가 밥 먹여주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선거가 밥 먹여준다. 1992년 미국 대선은 걸프전 승리에 힘입어 공화당의 부시 후보가 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그러나 클린턴 후보의 유명한 공약,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가 판세를 뒤집었다. 그렇다. 문제는 경제이고, 문제는 선거제도다.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 국회의원을 뽑는 미국에 비해 내각책임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유럽을 비교하면 선거제도의 중요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은 강자·부자·대기업의 의사가 잘 관철되고 빈자·약자의 의사는 무시되는 이른바 ‘복지기피국가’인 반면, 유럽은 비교적 빈자·약자의 의사가 존중되는 복지국가다. 이 차이는 다른 요인과 더불어 상당 부분 선거제도의 차이에서 온다. 지금 우리의 경제 상태가 좋지 않고 민생고가 심각하다. 이럴수록 경제와 민생을 해결해줄,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제도가 필요하다. 문제는 경제이고, 경제를 살리는 것은 결국 선거제도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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