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泣斬馬謖(읍참마속)

  • 양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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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8   |  발행일 2018-12-18 제30면   |  수정 2018-12-18
[취재수첩] 泣斬馬謖(읍참마속)
양승진기자<사회부>

서기 228년. 1차 북벌에 나선 제갈량은 가정(街亭)전투에서 패한 마속의 목을 벴다. 당시 마속은 제갈량의 지시를 어기고 산 정상에 진을 쳤다가 대패해 3만명의 병력을 잃었다. 제갈량이 그토록 신임하던 마속의 목을 벤 건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 군율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었다. ‘사사로운 정을 버리고 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뜻의 고사성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유래다.

읍참마속의 실천은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자녀나 제자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훈육하는 부모, 선생님 또한 제갈량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조직의 쇄신과 발전을 위해 잘못된 부분을 도려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고사를 언급한 이유는 대구시체육회가 읍참마속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시체육회는 지난 10월 대구시태권도협회 간부 임원이 단합대회에서 폭행을 행사한 혐의로 입건된 이후 두 달여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시민건강과 체력 증진을 위해 설립된 시체육회는 회원종목 단체 및 구·군체육회의 사업지도와 지원을 담당한다. 관리 주체인 만큼 징계 등 처분을 내려야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후속 조치를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대구시태권도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도 마찬가지다. 공정한 경기진행과 협회 내 각종 의혹에 대해 조사·징계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구임에도 후속처리는 더디기만 하다. 오히려 공정위는 임원들 대신 폭행을 당한 회원의 동료들만 불러 조사하기도 했다.

폭행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뒤에도 대구시태권도협회의 각종 비리 의혹은 꼬리를 물었다. 전국체전 대표선발 경기 개입에서부터 사기, 폭언 등 의혹도 다양하다. 특히 회원 집단폭행을 수사 중인 경찰은 협회 한 관계자가 회원들에게 ‘폭행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거짓 주장을 뒷받침하는 탄원서 작성을 강요한 정황을 확보하기도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 위해 자신들의 권위를 악용한 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 당사자인 대구 강북고 태권도부 학생들은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어른들의 잘못된 행태에 상처 받은 학생들이 직접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선 것. 하지만 학생들이 협회 정상화를 외칠 때도 태권도협회 간부는 학부모, 코치, 협회 회원, 학교 당국 등을 상대로 회유와 협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에게는 일곱 살짜리 쌍둥이 조카가 있다. 최근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한 조카들은 주말마다 배운 발차기 시범을 보여준다. 순수한 조카들이 만약 자기 관장님이 불의를 못 본 척 넘어간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적어도 조카들을 가르치는 분만은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소설 삼국지로 돌아가본다. 마속을 유난히 아낀 제갈량은 마속을 처형하기 전까지 수없이 고민하고 망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속의 목을 베면서 천하통일이라는 대의를 또 한 번 꿈꿨다. 대구시태권도협회와 대구시체육회에 바란다. ‘읍참마속’은 소설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양승진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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