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팝핑 카와올라’ 로스터 최임교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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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8   |  발행일 2018-12-28 제41면   |  수정 2018-12-28
“커피콩 볶는 세월만큼 로스터만의 감각 탄생…숱한 시행착오가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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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 건설, 건축, 부동산, 조명, 실내인테리어, 심지어 고깃집까지 손을 댔다가 모두 거덜난 최임교 대표. 그는 쉰 어름에 만난 캠핑족이 직접 내려먹는 원두커피에 매료돼 커피 콩볶는 사내로 돌아섰다. 지금도 최적의 로스팅 패턴을 알기 위해 일지를 꼬박꼬박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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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핑 카와올라’ 전경

대구불교방송국 뒷골목에 한말 고종이 커피를 마셨던 손탁호텔 같은 포스의 커피숍이 아파트단지 바로 옆에 있다. 한옥커피숍 스타일의 ‘팝핑 카와올라’다. 카와(Qahwah)는 아랍어로 ‘커피’, 올라(Hola)는 스페인어로 ‘안녕’이란 뜻. 그곳을 지키는 최임교 로스터. 그는 중후한 풍채를 앞세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커피 콩을 볶고 있다. 그는 커피를 만나기 위해 숱한 날들을 ‘구겨진 종이’처럼 살았다. 너무 볶아 검게 타버린 커피를 보면 너무 많이 망해 온통 블랙톤으로 변한 자신의 지난날 같았다. 영남일보가 주관한 제2회 대구 커피 & 베이커리 행사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초짜 바리스타한테서 느껴지는 ‘허세’ 같은 게 별로 감지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며칠 전 다시 만났다.

토목·건축·부도…인테리어·고깃집…
절체절명의 순간 강원도서 만난 커피
바리스타 과정…49세까지 커피 여행
콩 갈라지며 타닥∼ 소리‘팝’과 만남
원두로 변하는 비밀, 오직 콩만이 알아

로스팅 전문 커피하우스
서까래 좋아보여 한옥카페식 리모델링
독일제 로스팅기기 길들이는 데만 2년
그가 볶은 원두, 충북 등 15군데서 사용
시간·온도·습도 추적…로스팅 일지
향보다 보디감으로 형성되는 맛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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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커피의 향보다 맛을 중시해 코스타리카 따라주 SHB 등 8종의 생두를 사용한다.

◆ 토목·건축판에서 잔뼈 굵어

삶의 첫 단추는 커피가 아니었다. 커피로 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토목건설현장으로 갔다. 바로 직전 그는 대구의 다방이 커피숍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1980년대 초 대구백화점 근처 사루비아 양화점 건너편에 있었던 ‘탐라다방’과 인연을 맺는다. 아는 선배가 거기 사장이었다. 주방장이 행방불명되는 바람에 40일 정도 땜질 주방장이 된다. 당시는 바리스타 개념이 없었다. 사이펀커피가 ‘늘봄’ 등 좀 유명한 커피숍을 파고들었다. 대다수는 다방이지만 몇몇 감각파 사장은 서울 ‘난다랑’에서 촉발된 커피숍 트렌드에 편승한다. 하지만 그때는 원두커피 시절이 아니었다. 짝퉁커피 시절이었다.

당시 토목현장은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었다. 부실천국이었다. 뇌물이 일상화되었던 시절이라 모든 공사는 하자를 안고 있었다. 더 이상 그런 공간을 지킬 용기가 없어 토목현장을 떠난다. 대구로 들어와 자동차 영업사원이 된다. 조금 여윳돈을 확보한 그는 토목에서 건축업으로 건너간다. 1996년이었다. 대구 수성구 황금동에서 지역에선 선두격으로 원룸을 지어 분양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때 무려 18억원가량 부도를 맞게 된다. 일단 강원도 오대산으로 피신했다. 월정사와 상원사 두 곳을 오가면서 45일간 수행자처럼 지낸다. 다행히 아버지와 형제가 연대보증을 서면서 겨우 빚의 터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작년에야 고단한 빚의 나날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 캠핑장에서 만난 천직

그는 재도약을 위해 갈비집을 차린다. 상호는 ‘최후의 피난처’. 채무자 신세인 자신을 빗댄 건지도 모른다. 난생처음 칼을 잡고 집채만 한 갈비 한 짝을 분리했다. 그때는 자정 영업 제한이 있던 시절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자정 어름 손님을 받는 바람에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설상가상 할머니까지 작고해 조금 있던 돈을 모두 날려버린다. 다시 빈털터리 신세. 팔공산에서 심기일전, 수성못 근처에서 ‘다임램프’란 전구 전문점을 오픈한다. 장사가 괜찮게 돼 교동시장으로 건너가 조명전문가게로 확장했지만 이미 기울기 시작한 교동상권 때문에 결국 다시 빈손이 된다. 부동산업까지 핸들링했지만 모두 그의 천직이 되지 못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도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몰랐다. 강원도 여러 산골을 전전하던 어느날, 그렇게 오래 잊고 있었던 커피와 다시 조우할 수 있었다. 자신이 빚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사이 국내 커피문화는 몰라보게 발전해 있었다. 한 젊은 캠핑족이 생두를 수망에 넣고 볶은 뒤 그라인더로 갈아 즉석에서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었다. 그 광경은 너무나 황홀하고 가슴 벅찼다.

당장 커피 관련 서적을 샀다. 당시 정부에서 마련해준 사회적응교육 일환으로 내놓은 바리스타과정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도 접수했다. 또한 강호의 커피고수를 만나기 위해 커피여행도 했다. 강릉을 전국적 커피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한 한국 1세대 커피숍 보헤미안의 대표 박이추 등을 만났다. 하지만 그건 형식에 불과했다. 커피의 본질은 그렇게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책에 나온 내용은 이론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가이드북일 뿐이었다. 커피 지식 몇 개를 더 증가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커피로 먹고살려는 이에겐 턱없이 부족했다. 커피고수가 자신을 고수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도 절감했다. 고수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 감각과 깨달음을 올챙이에게 제대로 전해줄 수도 전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전국으로 내닫던 커피여행은 49세 때 끝이 났다.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평상심을 안고 학원에 들어갔다. 수강생은 거의 20대였다. 그는 ‘아재’였다. 전문용어부터 독파해 나가야 했다. 생두를 200℃ 이상 고온의 불로 볶으면 콩에 있던 수분이 변화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콩이 갈라지면서 타닥~ 소리를 내는데 그게 ‘팝(POP)’이라는 걸 알았다. 생두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수분 18%를 날리면서 원두로 변신하는 게 누에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신비해 보였다. 갓 볶아 신선한 원두가 1년 정도 기간에는 ‘뉴크롭(New crop)’, 1년이 지나면 ‘패스트크롭(Past crop)’, 2년을 넘기면 ‘올드크롭(Old crop)’으로 이름이 달라진다는 것 등도 메모해뒀다. 이전의 업자시절을 생각하면 격이 다른 나날이었다.

◆ 로스터 이선기와의 만남

일단 콩을 우직하게 잘 볶는 숨어 있는 로스터를 만났다. 방천시장 한편에서 ‘로스터리’란 가게를 운영하는 이선기였다. 그와 1년6개월 동고동락했다. 그도 한때 여러 재즈카페를 론칭했다가 고배를 많이 마신 뒤 결국 커피로 돌아왔다. 그런 로스터리가 자기를 닮은 것 같아 좋아보였다. 그가 콩을 볶는다고 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갔다. 그한테 참 많은 신세를 졌다.

콩을 볶는 데 무슨 시크릿한 법칙이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정답은 시간·온도. 콩이 원두로 변하는 과정에 얽힌 비밀은 오직 콩만이 알고 있었다. 그걸 갈아 추출액을 만드는 과정에는 바리스타의 고도의 감각이 개입된다. 로스터는 재료를 다루는 사람이고 바리스타는 그 재료로 최상의 음식을 만든다. 그 둘을 다 겸하면 좋겠지만 커피산업이 고도화될수록 분업되는 게 바람직하다.

결국 뮤지션의 실력은 연습에서 오듯 로스터도 오직 수많은 생두를 볶으면서 연출되는 숱한 시행착오를 스승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세월 속에서 로스터만의 감각이 탄생하는 것이다. 모든 장인의 스킬이 다 다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로스팅 일지를 적지 않으면 절정의 로스팅 포인트와 어떤 패턴을 찾을 수 없었다. 반복할수록 실패가 잦아질수록 커피가 더 객관적으로 보였다. 비로소 향이 보이기 시작하고 절정의 원두만이 갖고 있는 관상이 뭔지 알 것 같았다.

◆ 최임교의 로스팅 스토리

5년 전 수성구 들안길 네거리 근처 인테리어 사무실 한편을 개조해 생애 첫 커피숍을 차렸다. 초보라서 내린 커피는 거의 무료로 주었다. 그러다가 올인하고 싶어 인테리어도 접었다. 2014년 현재 자리에서 명실상부한 로스팅 전문 커피하우스 팝핑 카와올라를 차렸다. 원래 식당 자리였는데 서까래가 너무 좋아 보여 한옥카페식으로 리모델링했다. 처음에는 하루 5만원만 팔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커피 속에서 편히 잘 수 있게 됐다. 현재 충북 영동에도 그의 브랜드가 진출했고 15군데서 그가 볶은 원두를 사용한다.

그는 나름 명기인 5천만원짜리 로스팅기기 독일제 프로밧을 사용한다. 프로밧을 길들이는 데만 2년이 걸렸다. 기계가 달라지면 기존 조건은 다 버려야 한다. 상황이 모두 달라진 탓이다. 프로밧은 드럼통의 소재인 철의 밀도가 일정해 생두가 일정하게 열을 받는다는 게 특징이다. 그가 선정한 콩볶는 온도의 범주는 217~230℃. 시간은 11~13분. 2일마다 오전 11시쯤 10㎏을 볶는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베이커리커피숍한테 부담을 느낀다. 커피 옆에 너무 푸짐한 빵이 놓이는 걸 좀 염려한다. 빵을 위해 커피를 동원시킨 꼴이기 때문이다. 커피 본연의 맛을 위해선 커피 하나로 승부를 걸어야 된다고 고집한다. 에스프레소, 더치, 아메리카노 등을 라테·카푸치노보다 더 챙기려 하지만 요즘 젊은 커피족은 달달하고 유제품이 섞인 걸 선호한다. 하지만 그는 계속 원형을 고집하려 한다.

콩이 잘 볶이면 파스텔화 같은 분위기가 전해진다. 수분이 덜 빠지면 묵직한 느낌, 가스불이 꺼져 재점화한 뒤 볶으면 콩이 질겨 풋내가 풍긴다.

그는 카페를 오픈한 뒤부터 계속해 로스팅 일지를 적는다. 천체물리학자가 별자리 변화를 추적하는 것과 같다. 첫 팝이 항상 같은 온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게 로스팅의 비밀이다. 습기가 많을 때와 적을 때를 구별하는 건 기본. ‘로스팅 끝’이라고 판단하고 볶은 콩을 기계 밖으로 쏟아내는 그 진실의 순간은 언제나 베일에 가려있다는 사실. 직접 볶아봐야 그 순간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 그 순간에 정확하게 닿았을 때 그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같은 울림을 커피한테서 느낀다. 그 희열이 원두에 그대로 스며 들어가도록 노력한다. 동네 단골도 자꾸 늘고 있다. 그만큼 자신이 단골과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다.

로스팅 제약조건은 알면 알수록 더 불어난다. 사실 초보자에겐 제약조건이 거의 없다. 최소 5년 정도 볶지 않으면 포인트를 잡기 힘들다.

그는 코스타리카 따라주 SHB 등 8종의 생두를 사용한다. 그는 커피의 향보다 보디감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맛을 중시한다. 아메리카노의 경우 브라질, 코스타리카,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 계열을 섞어 사용한다. 대구 중구 명덕로 55길 9. (053)761-4567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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