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민지 작 |
성(聖) 토요일 밤의 세마포
여기 구겨진 울음이 찍혀 있으니
자기 멱살을 잡고 자기를 물 밖으로 끌어내는 사람처럼
끝내 그는 자기 밖으로 새어나갈 수 있을까
아직도 그는 고백이 부끄럽고
고백이 부끄럽다는 이 고백이 누가 될까봐
빨간 얼굴 속에 눈 코 입을 묻어놓고
그는 또 묻는다
물음을 벗어나는 일의 가능성과 의미에 관하여
그의 질문과 상관없이 그의 무덤 안에 떠도는 저 먼지 하나하나까지도
남김없이 등록되는 오늘의 치밀함에 관하여
지금은 작성되고 싶지 않아
실현된 계시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아
답을 바라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이 빨간 망설임 때문에
비로소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소란한
귀먹을 듯한 적요 속에서
끝내 그는 그를 자기 질문에 답으로 내어놓을 수 있을까
그의 얼굴이 그의 입에 먹히기 전에
고백하자면
고백이 그를 그 아닌 것으로 붙박아 놓을까봐
통성(通聲)으로 증언으로 누가 될까봐
먼지는 사람이 되고 사람은 다시 흙이 되지만
아무도 그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없으니
그래서 불러보는
과학자, 시인, 하느님
존경해마지않는
나이가 무지하게 많으신 분들이여
될 수 있으면 그의
수치와 졸렬은 무시하시고
그의 빨간 얼굴에서
그의 골격과 날마다 쇄신하는 죄악의 대략과
그의 영혼의 방사성 동위원소와 탁도(濁度)와
찌그러진 눈 코 입의 윤곽을 어서 발본해내소서
거기 누가 구긴 울음이 음화(陰畵)로 찍혀 있다
자기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하지 않으려고
그는 밤새 자기 지문을 외고 있으나
아무래도 낯선 소용돌이여!
이 정황의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자기도 모르게 신비는 어떻게 유출되는가
이제 곧 성사(聖事)가 시작된다
☞정한아 시인은
1975년생. 울산 출신. 200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는 ‘어른스런 입맞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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