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심사평] 사람과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좋지만 익숙한 주제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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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2   |  발행일 2019-01-02 제27면   |  수정 2019-01-02
[단편소설 심사평] 사람과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좋지만 익숙한 주제 아쉬워

총 202편의 응모작 중 예심을 통과해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8편이었다. 올해의 응모작들은 우선 문학에서 국경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시대적이거나 세대적인 특징을 넘어서, 외국이거나 상상의 공간인 ‘다른 세계’와 사랑하고 투쟁하는 것이 바야흐로 보통의 일상이 되었다. 한편 소재는 뿌리 없는 환상이거나 상상조차 제한된 현실이거나 중간이 없이 극과 극이었다. 주제 또한 모호하거나 아예 없는, ‘왜?’라고 묻지 않는 작품들이 많았다.

‘개기일식 파토스’ ‘환불’ ‘미정’ 그리고 ‘스태추마임’을 집중해 살폈다. ‘개기일식 파토스’는 99년 만의 개기일식을 관측하기 위해 스프링필드로 떠난 주인공의 이야기다. 소재는 신선했지만 낯선 이야기를 끌고 가기에는 해석하는 힘과 구성이 미흡했다. 하필이면 ‘한국인’이 미확인비행물체의 본산 로스웰에서 특별한 일을 겪는 이유가 모호하거나 불충분하게 느껴졌다. ‘환불’은 유학생 부부의 생활고와 소외를 이웃의 개러지 세일(Garage sale)에서 충동 구매한 탁자를 통해 그리고 있는데, ‘탁자’의 상징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맥없이 끝나는 게 무척 아쉬웠다. ‘미정’은 콜 센터 직원 미정을 주인공으로 하여 불안정한 노동과 삶을 그리고 있는데, 구성이 느슨해 긴장감이 떨어졌다.

‘신춘문예’가 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스태추마임’을 앞에 두고 두 심사위원은 한참 고민했다. 신춘문예는 새봄에 새싹 같은 작품을 원한다. 그런데 ‘스태추마임’은 사람과 삶에 대한 태도가 진지한 반면 소재와 주제에서 새롭다기보다 익숙하게 느껴진다. 배를 타고 오다가 사고가 난 딸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은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고, 동물을 안락사 시키는 수의사의 아들이 당하는 ‘학교 폭력’은 바로 어제 뉴스에서 본 듯하다. 하지만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절대 모른다!”는 말씀에 의지하여, 기술보다는 열정과 진정성을 믿고 ‘스태추마임’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작가의 숨결은 훈련만으로 쉽게 습득되는 요소가 아니다.

소설은 인생에 대한 패배의 기록이다. 패배를 얼마나 새롭게 드러내는가에 소설의 성패가 있다. 그러하기에 패배한대도 아주 지는 것은 아니다. 실패의 기록이 한순간이라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문장, 쓸데없는 장면을 지워내고 견고한 문장으로 출발해야 한다. 소설을 쓰는 이유가 그 무엇이든 간에 견고한 언어와 문법만이 이 세상의 무수한 현실과 존재의 행방을 깊은 겨울 속에서 기다리는 신춘의 설렘처럼 새롭게 밝힐 수 있음을 응모자들은 잊지 말기를 간곡히 바란다. 분투한 모두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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