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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시간의 기적을 받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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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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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지만 결코 휴식을 취하지 않는, 시간이라 불리는 사물. 굴러가고 돌진하고 신속하고 조용하게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이것은 말 그대로 영원한 기적이다.’

대자연은 신의 의복이고 모든 상징·형식·제도는 가공의 존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경험론 철학과 공리주의에 도전했던, 영국의 비평가이면서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1795~1881)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기적처럼 어떤 일이 이뤄지기를 소원하지요. 보통의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거나 또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지면 기적이라고 감동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꾸만 먼 곳에서 찾으려 합니다. 모든 생명이 사라져도 생의 저편에서까지 끊임없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은 시간뿐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다고 해서 그 존재를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겠지요.

시인 반칠환은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새해의 첫 기적’ 전문) 누구에게나 빠짐없이 시간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시를 썼습니다.

세속시대의 객관주의 시인인 최승호의 하루라는 시간의 기적을 간접적으로 이렇게 돌려서 말해요. ‘하루로 가는 길은/ 하루를 지나야 하는 법./ 어제에서 오늘로 오기까지/ 나는 스물네 시간을 살아야 했다./ 1분만 안 살아도 끝장나는 인생./ 하루로 가는 길은/ 낮과 밤을 지나야 하는 법. /어제에서 오늘로 오기까지/ 나는 소음을 거쳐야 했다. / 메마른 밤, 오늘의 갈증이/ 내일 해소된다고 믿으면서/ 참아낸 하루, 하지만 물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는 낙타처럼/ 오늘의 짐을 또 내일 짊어져야 한다./ 발걸음은 계속된다, 하루로 가는 길에서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는 법./ 하루에 완성되는 인생도 없지만/ 아무튼 죽음이 모든 하루를 마무리하고/ 무덤 위로 뜨는 해를 보며/ 오늘은 숨 크게 밝은 하루를 누려야 한다.’(‘하루로 가는 길’ 전문)

2019년 새해 첫 월요일의 즐거운 글쓰기가 사뭇 경건해지기조차 한 마음으로 열게 됨은 왜 일까요? 바로 그 시간의 존재를 가장 깊이 생각하게 하는 시기여서 그럴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가장 깊이 들여다보는 것과 다름없거든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무엇이 되려고 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인간인가…. 비록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해마다 통과의례처럼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꽤 오랜 시간 숙고해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겁니다. 분명한 것은 그런 시간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어제와 다른 자신의 모습, 다시 말해서 사유의 깊이와 폭이 점점 확장되고 성숙해 가는 자아를 찾아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시간은 우리에게 객관적인 동시에 주관적인 모습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그것은 때로 곡선이기도 하고 직선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냉철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관념이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연결고리로 끝까지 인간을 장악하는 동사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장엄하고도 한없이 부드러운 그 시간의 기적을 받아 적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글쓰기는 가슴이 벅찰 정도입니다. <시인·전 대구시영재교육원 문학예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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