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산업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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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08   |  발행일 2019-01-08 제31면   |  수정 2019-01-08
[CEO 칼럼] 산업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권 업 대구테크노파크 원장

한국 주력산업 곳곳에 적신호가 켜졌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비율이 36.5%에 달해 네덜란드, 독일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 측면에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수출이 지난해 12월 전년 동기비 1.2% 감소하며 급격한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전체 수출액 비중이 20%에 달하는 반도체 수출은 1년 전보다 8.3%나 감소하고 13대 주력 수출품목 중 무려 10개가 지난달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경제를 지지해온 든든한 버팀목들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경제정책에서 주력산업에 대한 장기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19세기 중엽 세계 공업생산의 40%를 차지했던 빅토리아시대 영국의 산업은 오늘날 3% 미만으로 추락하여 세계 경제의 중심부에서 반주변부로 밀려난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영국 산업의 쇠퇴는 그간 경제사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논의되어 왔으나 1980년대 이후 더욱 논란이 된 것은 이 시기에 영국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산업혁신이 더욱 절실해진 탓이 크다.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월러스틴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산업의 몰락요인은 언제나 번영기의 성공요인 속에서 배태된다. 산업의 성장기에 기여했던 전략에 대한 타성과 이 시기 산업 내에 정립된 잘못된 관행, 이로 인한 채산성 악화의 극복을 위한 단기적 이익목표가 몰락의 악순환으로 이끈다. 기업세계란 경쟁이 본질이고 시장상황에 따라 경쟁방법은 언제나 변할 수밖에 없는데 변화에 굼뜬 산업은 몰락이 운명이다. 글로벌경쟁이 전제된 산업일수록 생존을 위해서는 변화의 폭과 깊이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2005년 S&P가 GM과 포드의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으로 강등한 것은 한때 세계를 선도했던 미국 자동차산업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과 다름없었다. 미국 자동차업계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것은 휘발유-전기 겸용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기술개발과 품질개선에 소홀했고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금융부문과 해외 인수합병에 주력하는 등 자동차산업의 펀더멘털을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관행화된 고임금구조도 추락에 큰 몫을 했다. 당시 GM은 종업원은 물론 퇴직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52억달러의 보험료를 물었고 퇴직자에 대한 연금부채는 630억달러에 달했다. 부채가 많다보니 설계에서 부품까지 저렴한 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결국 품질저하와 시장상실에 이르는 악순환 고리에 걸려든 것이다.

이는 한국 PC업계에도 해당된다. 대만과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채산성 악화에 직면한 한국 업체들은 차별화를 위한 기술개발보다는 손쉬운 사업방법인 유통망 확보와 마케팅을 통한 매출확대에만 주력한 결과,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업체들이 도산 혹은 도산 위기에 몰렸다. PC시장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저가형 모델에 대한 마진폭의 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되어 마침내 좌초하고 만 것이다.

미국 자동차산업이나 우리나라 PC업계는 단기적인 수익을 위해 기술혁신에 소홀히 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마케팅은 기업에서 언제나 중요한 기능이지만 마케팅활동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제품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점을 간과한 결과다. 돈 들고 힘도 들지만 기술혁신이 상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산업은 몰락의 악순환 고리에 걸려들기 마련이다.

경영석학 짐 콜린스는 기업의 발전은 외부적인 환경변화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내부의 역량 강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환경대응형 기업은 시장상황 변화를 먼저 예측하여 길목을 지키다가 재빨리 기회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마케팅 방법만을 연구한다. 반면에 창조형 기업은 경쟁자와 똑같은 방법으로 경쟁하기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고유 역량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창조형 기업의 성장기회는 언제나 널려 있지만 환경대응형 기업은 오로지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 왜냐하면 더 빠른 경쟁자가 기회를 가로채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권 업 대구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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